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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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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7,096회 작성일 22-06-05 09:01

본문

[사도행전 2: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은 첫 열매가 맺는 초실절로부터 50일이 되는 날이며 본격적인 수확의 시작을 뜻합니다.
오순절은 맥추절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에서 보리 추수가 한 해 수확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은 단순히 한 해 농사의 과정을 뜻하는 절기가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날이 부활절이며 구약 절기로는 초실절에 해당합니다.

그로부터 오십일 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으니 이는 성령강림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보리 추수라는 한 해의 첫 수확은 이제 사람들의 영혼을 수확하는 영적인 의미를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오순절, 또는 맥추절로 부르지 않고 성령강림절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령강림절의 의미를 강조하기위해 7월 첫 째 주일을 맥추절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더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오늘 성령강림절과 동일한 것으로서 성령강림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위해 지정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성령강림의 시작은 새로운 인류 역사의 시작과 동일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 전에도 성령님은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시간과 장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3대 절기인 맥추절, 즉 오순절을 성령강림의 시작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장소입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을 따르던 120명의 제자들과 무리들이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한 장소에서 모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성령강림의 시간과 장소를 분석해보니 성령강림의 사건은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의 개인적 차원의 영적인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과 한 공간에서 단체로 경험한 집단적 차원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시작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 구원받는 일은 굳이 여러 사람을 동원할 필요없이 혼자서도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구원의 과정은 죄인인 한 사람이 의인으로 거듭난다는 개인적인 변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혼자서 도를 닦거나 통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구원은 한 사람이 여러 사람과 성령님을 통해 통합되고 연결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교회를 예수님이 머리이시고 모든 사람들이 각각의 부위를 구성하는 유기적 집합체로 설명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가지 방언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은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 이 후 뿔뿔히 흩어지고 갈라졌던 사람들이 성령님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통합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죄인이 의인되는 나 한 사람 개인의 변화 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집단에 속하는 소속의 변화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를 받고 구원 받은 사람은 나 자신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령님의 임재가 사람들을 획일화 집단화 시킨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한 교회 안에서 여러 다양한 은사들을 각 사람에게 주심으로 오히려 개개인들의 개성과 역량이 더욱 드러나게 하십니다.

본문을 통해 성령강림은 개인들을 교회로 묶는 통합의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개인들의 역량을 강화시킨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뒤를 이어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요엘서 2장의 성령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시간관계상 본문의 베드로의 설교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지만 이는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갈릴리 어부인 베드로가 요엘서를 그대로 인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더우기 시편 110장은 당시 유대교 학자들에게 최고의 난제였습니다.

34절에 시편 110장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나옵니다.

도대체 여호와 말고 주님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 주님은 누구신가, 모세인가 엘리야인가 등등의 추측과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입은 갈릴리 어부 베드로가 시편 110편의 '내 주'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명쾌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일자무식 갈릴리 어부 출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유창하게 방언한 것도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성령강림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과학과 이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말이지만 이 세상은 보이는 현상과 물질을 초월하는 영적인 차원이 존재하며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여러 이적들, 사도들의 이적들은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일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다만 믿기가 힘들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하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불가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자무식이었던 할머니가 성령 충만을 입어 성경을 좔좔 읽고 외우는 사건,

나약하고 비겁했던 사람이 책임감있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는 사건,

성령 충만을 통해 음악이나 미술, 예체능 분야에서 놀라운 향상을 보여주는 사건,

이러한 다양한 성령충만의 증거들은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서 넘쳐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이유들을 들어 설명하겠지만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심지어 먹든지 입든지 자든지 모든 것을 다 성령님에 힘입어 살며 성령님을 통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강림을 통해 도덕적 윤리적 진보를 이루어 냈습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 충만을 입은 사람들은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고 아무런 조건없이 자신의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면면은 이스라엘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랴안(Trajan)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는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본 후 '그들은 법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이 칭송받을 만했음을 로마의 정치가로서 입증시켜 준 것입니다.

물론 오늘 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교회에 기부하는 일은 아주 드물며 있더라도 여러 사회적 파장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기부했던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은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오늘날 현실 세계에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도 초대교회 성도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물질에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과 이론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최고이자 전부인 세상에서 돈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도의 방법입니다.

이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우리를 살리시기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내놓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의 소유를 교회에 전부 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소유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마음만큼은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맡겨주신 돈으로 돈만 불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로서 직분자로서 돈에 대해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탁월하고 윤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그들과 똑같거나 오히려 더 부정하다면 이는 복음을 전하기는 커녕 복음을 가리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받을 것 이상 바라지 말고 줄 것 이하로 깎지 말아야 합니다.

계산은 분명히 하되 상대방의 형편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 개인이 교회로 통합되고, 각 사람의 역량이 강화되며, 윤리 도덕적인 진보가 이루어짐을 보게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추구되어져야 하는 변함없는 가치이며 오늘날에도 성령강림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는 우리가 반드시 경험해야할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성령충만은 끝나지 않는 우리의 목표이자 숙제이며 씨름의 대상입니다.

도를 닦고 수련을 하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성령충만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성령강림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사건입니다.

성령충만은 나 혼자서 노력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개인의 영적인 상태가 아니라 교회의 단합과 일치를 위해 모여서 배우고 가르치고 기도하는 교회의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는 불과 바람처럼 임했습니다.

성냥개비 하나, 나뭇가지 하나가 타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나 서로 모였을 때 들불처럼 번져 세상을 덥히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나누는 희생의 마음가짐을 가지는 성령충만을 사모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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