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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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1-5
오늘은 제 의견으로 성경 66권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된 본문을 맞이하였습니다.
티비 프로그램의 '세상이 이런 일이' '서프라이즈' 같은 뻥이 가미된 사건사고들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 본문에 나옵니다.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오늘 본문의 레위인도 전장의 레위인 모세의 손자 요나단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에브라임 산지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인은 지정된 장소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레위인은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의 레위인은 첩을 들였다는 사실을 보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총체적 타락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그 첩도 행음을 행하고 친정집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레위인은 첩의 친정집인 베들레헴으로가서 첩을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첩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5일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첩의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첩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14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베냐민의 땅 기브아의 인심이 아주 흉흉하여 아무도 레위인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 노인이 그들을 발견하고 자기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이 노인도 원래는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었지만 베냐민 사람들의 지역인 기브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베냐민 기브아 땅의 인심이 흉흉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바로 못된 불량배들이 기브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레위인을 겁탈하려고 노인의 집 문을 두들겼습니다.
창세기 19장에서 롯의 집에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들을 겁탈하려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베냐님 기브아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롯이 천사들을 겁탈하려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딸들을 내어주려고 했던 장면이 다시 재현되었습니다.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이 상황에서 레위인인 자신의 첩을 밖으로 끌어내어 겁탈당하게하고 자신은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첩을 위기로 내모는 레위인의 비정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레위인은 도망간 첩을 데리러왔지만 실상 진심으로 그 첩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베냐민 불량배들은 천부당 만부당한 몹쓸 짓을 레위인의 첩에게 저지르고 마침내 첩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레위인의 비정함을 또 한번 드러내는 부분은 27절에서 '일찍이 일어나' 입니다.
첩이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있는데도 잠을 자긴 잤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은 얄팍하긴 하지만 그도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레위인이 자기 첩의 시체를 열 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낸 엽기적인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그가 진실로 자기 첩을 사랑해서 그런 짓을 벌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밀었던 비겁함은 이제는 베냐민을 향한 의로운 분노로 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엽기적인 충격요법이 통했는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베냐민을 향해 일제히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위인의 첩을 겁탈하여 죽인 베냐민 불량배들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베냐민 지파는 오히려 그들을 비호하고 이스라엘 지파들의 요구를 무시하였습니다.
열 두 지파는 각 지파 군대의 십분의 일을 모아 베냐민을 공격하였습니다.
중과부적이었던 베냐민 지파는 오히려 이스라엘 연합군을 상대로 두 번이나 크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이스라엘 연합군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그제서야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0: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0: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세번째 전투에서 비로소 이스라엘 연합군을 베냐민 지파를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전투에서 베냐민의 이만 오천 군대가 다 전멸당하고 겨우 600명만이 광야로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연합군들은 베냐민의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전부를 모조리 몰살시키는 참상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어느 누구도 베냐민 사람에게 자신의 딸을 주지 않겠노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것임을 안타까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못된 편법을 동원하였습니다.
미스바 모입에 나오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를 구실삼아 야베스 길르앗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길르앗 여인들을 도망친 베냐민의 600명의 패잔병들로 하여금 억지로 붙잡히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마음대로 맺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베냐민 지파는 살리는 편법을 동원하였기에 무고한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은 또 애꿎게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총체적인 난국을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결론)
사사기 당시에 '선'의 기준은 없었습니다.
아니 각자 자기 자신이 '선'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무법 천지가 되고 총체적 난국에 빠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과연 '선'의 기준이 있을까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해주는 '선'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바름' '상황 윤리' 등의 거창하고 복잡한 용어들로 온통 요지경 세상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일이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나는 레위인 같은 비겁하고 타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위안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베냐민 불량배들과는 다르게 착한 사람이라고 다행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총체적 난국인 이 시대에 우리는 각자가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어 각자의 소견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이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다윗왕을 통해 예루살렘 중심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각자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주관적인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시요 절대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에 지구 상의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또 다시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 속에 형성된 자신만의 하나님을 내세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기준으로 통일된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 이스라엘이 통일된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산지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중구난방 여러 산당에서 흩어져서 각자 제사를 행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물량법칙으로 향한다면 이는 중구난방 에브라임 산지 신앙이 되버립니다.
성도들은 하나로 묶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각종 프로그램이나 행사나, 여러가지 사역들이 이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교회는 행위중심의 미개한 개인적 구복신앙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건강을 위한 운동은 고통스러운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죄악의 육체로 인해 읽고 듣고 묵상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그 길만이 살 길이라면 싫어도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세상과 나라를 소돔과 고모라로부터 구별해 냅니다.
우리는 각자의 하나님이 아닌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삽시다. 아멘.
오늘은 제 의견으로 성경 66권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된 본문을 맞이하였습니다.
티비 프로그램의 '세상이 이런 일이' '서프라이즈' 같은 뻥이 가미된 사건사고들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 본문에 나옵니다.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오늘 본문의 레위인도 전장의 레위인 모세의 손자 요나단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에브라임 산지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인은 지정된 장소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레위인은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의 레위인은 첩을 들였다는 사실을 보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총체적 타락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그 첩도 행음을 행하고 친정집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레위인은 첩의 친정집인 베들레헴으로가서 첩을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첩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5일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첩의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첩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14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베냐민의 땅 기브아의 인심이 아주 흉흉하여 아무도 레위인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 노인이 그들을 발견하고 자기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이 노인도 원래는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었지만 베냐민 사람들의 지역인 기브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베냐민 기브아 땅의 인심이 흉흉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바로 못된 불량배들이 기브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레위인을 겁탈하려고 노인의 집 문을 두들겼습니다.
창세기 19장에서 롯의 집에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들을 겁탈하려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베냐님 기브아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롯이 천사들을 겁탈하려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딸들을 내어주려고 했던 장면이 다시 재현되었습니다.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이 상황에서 레위인인 자신의 첩을 밖으로 끌어내어 겁탈당하게하고 자신은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첩을 위기로 내모는 레위인의 비정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레위인은 도망간 첩을 데리러왔지만 실상 진심으로 그 첩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베냐민 불량배들은 천부당 만부당한 몹쓸 짓을 레위인의 첩에게 저지르고 마침내 첩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레위인의 비정함을 또 한번 드러내는 부분은 27절에서 '일찍이 일어나' 입니다.
첩이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있는데도 잠을 자긴 잤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은 얄팍하긴 하지만 그도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레위인이 자기 첩의 시체를 열 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낸 엽기적인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그가 진실로 자기 첩을 사랑해서 그런 짓을 벌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밀었던 비겁함은 이제는 베냐민을 향한 의로운 분노로 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엽기적인 충격요법이 통했는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베냐민을 향해 일제히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위인의 첩을 겁탈하여 죽인 베냐민 불량배들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베냐민 지파는 오히려 그들을 비호하고 이스라엘 지파들의 요구를 무시하였습니다.
열 두 지파는 각 지파 군대의 십분의 일을 모아 베냐민을 공격하였습니다.
중과부적이었던 베냐민 지파는 오히려 이스라엘 연합군을 상대로 두 번이나 크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이스라엘 연합군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그제서야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0: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0: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세번째 전투에서 비로소 이스라엘 연합군을 베냐민 지파를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전투에서 베냐민의 이만 오천 군대가 다 전멸당하고 겨우 600명만이 광야로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연합군들은 베냐민의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전부를 모조리 몰살시키는 참상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어느 누구도 베냐민 사람에게 자신의 딸을 주지 않겠노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것임을 안타까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못된 편법을 동원하였습니다.
미스바 모입에 나오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를 구실삼아 야베스 길르앗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길르앗 여인들을 도망친 베냐민의 600명의 패잔병들로 하여금 억지로 붙잡히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마음대로 맺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베냐민 지파는 살리는 편법을 동원하였기에 무고한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은 또 애꿎게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총체적인 난국을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결론)
사사기 당시에 '선'의 기준은 없었습니다.
아니 각자 자기 자신이 '선'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무법 천지가 되고 총체적 난국에 빠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과연 '선'의 기준이 있을까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해주는 '선'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바름' '상황 윤리' 등의 거창하고 복잡한 용어들로 온통 요지경 세상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일이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나는 레위인 같은 비겁하고 타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위안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베냐민 불량배들과는 다르게 착한 사람이라고 다행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총체적 난국인 이 시대에 우리는 각자가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어 각자의 소견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이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다윗왕을 통해 예루살렘 중심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각자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주관적인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시요 절대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에 지구 상의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또 다시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 속에 형성된 자신만의 하나님을 내세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기준으로 통일된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 이스라엘이 통일된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산지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중구난방 여러 산당에서 흩어져서 각자 제사를 행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물량법칙으로 향한다면 이는 중구난방 에브라임 산지 신앙이 되버립니다.
성도들은 하나로 묶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각종 프로그램이나 행사나, 여러가지 사역들이 이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교회는 행위중심의 미개한 개인적 구복신앙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건강을 위한 운동은 고통스러운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죄악의 육체로 인해 읽고 듣고 묵상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그 길만이 살 길이라면 싫어도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세상과 나라를 소돔과 고모라로부터 구별해 냅니다.
우리는 각자의 하나님이 아닌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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