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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 브릿, 나만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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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7,882회 작성일 22-02-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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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8:21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미디안의 수장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한 기드온은 그들의 우상 장신구를 버리지 않고 가졌습니다.

신명기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상 장신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 알려주셨습니다.

신명기 7:23-2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진멸'은 부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진멸'은 신앙의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열심히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순수하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300명으로 135,000의 대군을 물리치고, 여러 이적을 체험한 기드온이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마음 속의 우상은 진멸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드온의 신앙이 영 시원찮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기드온일지라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장 신앙으로 인정받아 하나님께 쓰임받았음을 기억합시다.

다음은 기드온이 얼마나 순수하고 뛰어난 인격의 소유자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2-23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이 때가 초대 이스라엘왕인 사울왕보다 120여년 앞선 시기로서 만약 기드온이 왕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120여년 일찍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내가 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시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왕이 되어 싶어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스스로 굴러온 왕의 기회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정도 순수했으니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의 순수함은 안타깝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24-26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은 마땅히 불태워 없애버려야 할 이스마엘계 미디안 사람들의 장신구들을 탐내었습니다.

26절에 금의 무게가 천칠백 세겔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약 20kg 정도로 오늘날 시세로 대략 15억내지 16억에 해당합니다.

이 부분에서 기드온이 정권욕은 없는 대신 물욕이 있었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물욕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구절이 이를 증명합니다.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최소 15억원에 상당하는 금으로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는데 이것으로 에봇, 제사장들이 입는 신성한 의복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에봇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배하러 기드온에게 모이도록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원칙적으로 모세의 법궤가 있는 실로에서 예배해야 하는데 기드온은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성읍인 오브라에 모이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행위를 음란하다고 표현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음란'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다른 우상을 숭배하는 혼합주의 신앙을 말합니다.

아예 신앙도 없도 양심도 없는 사람에게 '음란'이라는 말은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

문제는 적당히 신앙도 있고 나름대로 순수하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음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기드온같이 엄청난 체험과 순수한 인경의 소유자마저도 이 음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음란'을 극복할 수 있는 순수한 신앙은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의문이 듭니다.

일년 365일 동안 오직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해야 '음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일년 365일 동안 오직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해도 얼마든지 '음란' 해 질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그가 일으킨 혼합주의 신앙으로 인해 그는 조금씩 타락해갔고 결국엔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30-31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그가 살던 오브라는 세겜과 아주 먼 곳입니다.

이스라엘 전역을 누비며 처첩을 두는 기드온의 적극적인 타락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33-35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한 때는 영적 영웅이었던 기드온이 타락하자 온 이스라엘도 따라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부터 악한 자의 악행보다 나름대로 신앙적인 사람이 저지른 악행으로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고 맙니다.

33절에 이스라엘은 '바알 브릿'을 신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바알 브릿을 우리말 성경에서는 따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나와 계약한 하나님' 이라는 말입니다.

바알 브릿은 향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가장 폐악적이고 악질적인 우상으로 군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언약의 하나님" 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바알 브릿의 예배 방식은 모세오경의 것을 따라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 이 아닌 축복, 형통, 건강, 부귀영화였으며

당연히 삶의 목표도 '하나님' 이 아닌 축복, 형통, 건강, 부귀영화였습니다. 

겉으로 예배하는 것만 보면 진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인지 바알 브릿을 숭배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갑니다.

진짜 하나님과 바알 브릿의 차이점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예배하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구분이 됩니다.

바알 브릿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기드온처럼 조금씩 조금씩 타락해가다고 결국엔 멸망하고 맙니다.

결론)

열심있는 신앙행위와 각종 체험들조차 우리를 음란으로 부터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 대신 바알브릿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하나님'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시작은 '바알 브릿'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바알 브릿'에서 '하나님'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알 브릿'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감히 무모한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나만의 하나님' '내 상상 속의 하나님'으로 정리했습니다.

나만의 하나님! 참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바알 브릿'이 되는 겁니다.

성경말씀을 매일매일 읽고 '내 상상 속의 하나님' 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기계적으로 성경말씀만 읽는다고 '진짜 하나님'을 저절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고민해야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우리의 삶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되어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고통은 술 담배 안하고 절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바알 브릿' 나만의 하나님이 깨어지고 '진리의 하나님'이 별견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삶 전생애에 걸친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진리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행복은 '진리의 하나님'을 알아가기위한 고통 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막대한 것입니다.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성경을 읽는 것은 정말 큰 고통입니다.

더구나 더욱 바빠지고 조급해진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에서 성경묵상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알 브릿'은 더욱 무너져야 하고 '진리의 하나님'은 더욱 발견되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고통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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