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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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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6,454회 작성일 22-11-0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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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0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2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사무엘상 19장에서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졌으나 다윗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습니다.

사울의 다윗 암살 계획을 눈치챈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을 몰래 도망시켰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이 있는 라마의 선지자 학교로 도망갔습니다.

사울은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을 체포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전령들이 선지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에 취해 예언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전령들을 보냈지만 그들도 다 하나님의 영에 취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했습니다.

사울이 직접 라마로 갔는데 사울 자신도 하나님의 영에 취해 옷을 발가벗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사울왕의 잇따른 공격이 다 실패로 끝났지만 다윗은 이대로 있다가는 라마의 사무엘과 선지자들이 위태로울 것 같아서 라마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일단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을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왜 사울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부친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라마에 전령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깜짝놀란 요나단은 다윗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매월 1일과 2일에 다윗은 사울왕의 식사자리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가정사를 이유로 불참했을 때 사울왕이 문제 삼지 않는다면 사울왕은 더 이상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이 다윗의 불참에 노하면 사울왕의 다윗을 죽이려는 결심이 확고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이러한 사울왕의 반응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0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문제는 다윗 뿐만 아니라 다윗과 친한 요나단에게도 사울왕의 감시가 엄중할 터인데 요나단이 다윗에게 무슨 수로 사울왕의 반응을 전할 것인가 였습니다.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요나단은 다윗에게 사울왕의 의향을 반드시 있는 사실 그대로 전해주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요나단이 다윗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요나단의 부탁이 언뜻 듣기에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지금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홀홀단신 도망하는 신세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장남이요, 이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적통 적자입니다.

그런 요나단이 자신을 살려주고 자신의 자손들을 살려달라고 다윗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3절에 다윗은 죽음과 자신이 한 걸음 차이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실세 중의 실세 사울왕의 아들인 요나단이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을 잡은 자가 한 사람 쯤 죽이는 것은 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직접 제거하려고 하지 않아도 측근들이 알아서 나서서 공을 세우려고 합니다.

누가 봐도 뻔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늘의 군대가 다윗을 보호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온 세상의 군대가 다윗을 대적하여 죽이려고 하여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철저히 안전한 것을 영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질 못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영적인 눈을 가진 요나단을 비웃습니다.

그냥 다윗을 죽이면 쉽게 해결될 일을 공연히 키워서 아버지 사울왕의 심기를 거슬리냐고 말입니다.

돈과 숫자와 권력에 눈이 먼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쉽게 무시하고 무례히 대합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고 그래도 별 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굽히고 들어갑니다.

앞으로 도움 받을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입니다. 

이제는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특히 다윗처럼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 봐야 합니다.

이들이 지금 당장 어렵다고 함부로 하대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비참한 이유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 사람을 하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돈과 힘, 외모 같은 썩어 없어지는 육적 기준인가 아니면 영적기준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영적인 눈으로 사람을 보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사람 '인' 자는 막대기 두 개가 서로 의지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막대기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바로 인간관계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두 막대기를 잇는 구심점이 돈, 힘, 외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 관계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리스천의 인간관계의 기본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데는 반드시 구심점이 있어야 합니다.

만날 이유가 없는데 만나는 법은 없습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외모든, 쾌락이든, 취미든, 사상이나 철학이든 심지어 혈연과 지연이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교차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통기한이 다 되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끊어지고 맙니다.

심지여 혈연 마저도 물질적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 관계는 영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버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아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인간관계의 핵심을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관계 그 자체이십니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나와 아내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사랑' 이라고 합니다.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은 '사랑' 이시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이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다윗을 사랑했던 이유도 그 둘 사이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랑이 가능해 집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고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옆의 아내를 보십시오.

한 여인이 보입니까?

다시 잘봐야 합니다.

아내를 보면 하나님이 먼저 보여야 합니다.

아내가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양육하고 육적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외로움을 채워주는 사람으로 보이면 안됩니다.

먼저 나와 아내 사이에 계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때로는 바가지를 긁고 미울때도 있지만 내 생명보다도 더 가치있는 하나님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내 아들이 공부를 못하고 속을 썩여도 내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하나님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내 옆 자리의 성도를 볼 때 하나님이 먼저 보여야 합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어서 교회에 별 도움이 안 될 것같아도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누구보다 더 값진 존재들입니다.

나와 저 사람 사이에 계신 하나님이 보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생명조차도 아까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받아야 합니다.

보통의 인간관계가 아니라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 관계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사람을 돈이나 힘이나 외모나 능력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저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가만을 봐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육적인 눈에 보여지는 것보다 영적인 눈으로 봐야하는 의지적인 노력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사랑' 은 '맹세' '언약' '약속' 의 형태로 구체화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언약' 이 세상을 바꾸고 인류를 구원하였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달리 말합니다.

역사는 사랑의 몫입니다.

본문에서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은 여러차례 '맹세' 또는 '언약'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와 언약대로 역사는 실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다윗의 지파인 유다지파와 요나단의 베냐민 지파가 힘을 합쳐 남유다왕국을 구성하고 오늘날 이스라엘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냥 보면 두 남자의 좀 유별난 우정이겠거니 싶지만 오늘 본문의 둘 사이의 맹세는 한 나라의 토대를 이룬 기초가 되었습니다.

성경 66권을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언약이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그 사랑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랑의 관계들이 소박하게 보이겠지만 훗날 역사의 근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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