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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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8장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사울왕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을 궁정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루만에 바닦에서 정상에 오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갑작스런 출세는 대부분 복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었지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었던 비결을 본문을 통해 알아봅시다.
지혜롭게 행했다는 표현이 본문에 4번 나오면 이는 모두 다윗을 가리킵니다.
그에 반해 두려워하다 라는 단어는 3번 나오는데 모두 사울왕을 가리킵니다.
5절에서 다윗이 지혜롭게 행했다고 하는데 히브리 원어로는 신중하고 겸손하게 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신중하고 겸손하게 행했다면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다라는 단어의 어원은 '존경과 감탄'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말입니다.
두려움 없이 경거망동 날뛰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신중하고 겸손했던 다윗도 그 출발은 '두려움' 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신중하고 겸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윗도 사울왕도 모두 두려움의 감정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극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하나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은 두려움에서 출발하였지만 한 사람은 지혜롭고 신중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두려움과 공포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지혜롭게 행했고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사건으로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하나님이 없는 사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입니다.
사울왕은 언제나 사람의 숫자와 사람의 반응이 하나님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울왕은 변덕스러운 여론과 인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 다윗은 사람들의 반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한 날 왕처럼 떠받들다가 바로 그 날 죽이라고 삿대질 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사람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게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쓰느라 하나님의 반응을 놓치지 않을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의 모습의 차이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다윗을 두려워하게된 사울왕은 다윗을 궁정에서 내쫓고 천부장으로 삼아 일선 현장에 보냈습니다.
국민적인 스타가 중앙 본부에서 쫓겨나 변방으로 좌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머리를 씁니다.
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므로 사람을 공격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씁니다.
여기에 다양한 모습의 권모술수와 비난과 모함과 당짓기 등등이 동원됩니다.
갈5:19-23절에 나쁜 열매, '음행, 더러움,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등과 놀랍게 들어맞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기에 자동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다윗도 사울왕의 치졸한 인사행정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다윗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일선의 병사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말이 쉽지 억울한 상황에서 여유를 잃지 않고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속으로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할 수 있겠지만 별 도움은 안됩니다.
어느 순간에 표정에서 드러나기 십상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다윗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변방으로 좌천된 다윗이지만 오히려 궁정에 갇혀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궁정을 벗어나 현장에서 뛰다보니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장의 억울한 일도 지나고 보면 우리를 이롭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모술수와 치밀한 작전도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는 그저 역이용되는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를 해하려 하던 세상의 계획들이 오히려 우리를 이롭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역전됩니다.
그걸 못 기다려서 말로 원망하면 세상에게 지고 맙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바보같이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본문 15절은 그냥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크게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운다고 성질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참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사람이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에 하나님이 있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던 다윗처럼 우리에게도 성령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있는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왕 당하는 것은 기왕 사실인데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하루 아침에 얻은 출세와 횡재가 사울왕에게는 화가 되었고 다윗에게는 복이 되었던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있을 갑작스런 성공에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경우를 미리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성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김칫국이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준비하는 것과 모르고 당황하는 것의 차이는 성공의 유무보다 더 중요합니다.
갑작스런 성공과 억울한 일 둘 다 우리에게 크나큰 도전이며 리스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다윗이 지혜롭게 행할 수 있었던 키포인트는 바로 '하나님이 있는 성령 충만함' 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해 기고만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당황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의 권모술수로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성령 충만' 이라는 키포인트가 있습니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①사랑과 ②희락과 ③화평과 ④오래 참음과 ⑤자비와 ⑥양선과 ⑦충성과 ⑧온유와 ⑨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5:22~23)
우리의 역할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강함을 보고 두려워할 것도 없고
상대의 권모술수를 보고 머리 쓸 것도 없습니다.
상대의 치졸한 대응에 반응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구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사랑을 저절로 얻게 됩니다.
28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열심히 구하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는데 형통하고 사랑받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더욱더욱 그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싸울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의 반응을 마음에 두는가, 하나님의 반응을 마음에 두는가 선택해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육신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인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욱 신중하고 겸손히 지혜롭게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멘.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사울왕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을 궁정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루만에 바닦에서 정상에 오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갑작스런 출세는 대부분 복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었지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었던 비결을 본문을 통해 알아봅시다.
지혜롭게 행했다는 표현이 본문에 4번 나오면 이는 모두 다윗을 가리킵니다.
그에 반해 두려워하다 라는 단어는 3번 나오는데 모두 사울왕을 가리킵니다.
5절에서 다윗이 지혜롭게 행했다고 하는데 히브리 원어로는 신중하고 겸손하게 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신중하고 겸손하게 행했다면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다라는 단어의 어원은 '존경과 감탄'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말입니다.
두려움 없이 경거망동 날뛰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신중하고 겸손했던 다윗도 그 출발은 '두려움' 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신중하고 겸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윗도 사울왕도 모두 두려움의 감정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극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하나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은 두려움에서 출발하였지만 한 사람은 지혜롭고 신중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두려움과 공포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지혜롭게 행했고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사건으로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하나님이 없는 사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입니다.
사울왕은 언제나 사람의 숫자와 사람의 반응이 하나님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울왕은 변덕스러운 여론과 인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 다윗은 사람들의 반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한 날 왕처럼 떠받들다가 바로 그 날 죽이라고 삿대질 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사람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게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쓰느라 하나님의 반응을 놓치지 않을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의 모습의 차이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다윗을 두려워하게된 사울왕은 다윗을 궁정에서 내쫓고 천부장으로 삼아 일선 현장에 보냈습니다.
국민적인 스타가 중앙 본부에서 쫓겨나 변방으로 좌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머리를 씁니다.
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므로 사람을 공격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씁니다.
여기에 다양한 모습의 권모술수와 비난과 모함과 당짓기 등등이 동원됩니다.
갈5:19-23절에 나쁜 열매, '음행, 더러움,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등과 놀랍게 들어맞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기에 자동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다윗도 사울왕의 치졸한 인사행정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다윗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일선의 병사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말이 쉽지 억울한 상황에서 여유를 잃지 않고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속으로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할 수 있겠지만 별 도움은 안됩니다.
어느 순간에 표정에서 드러나기 십상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다윗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변방으로 좌천된 다윗이지만 오히려 궁정에 갇혀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궁정을 벗어나 현장에서 뛰다보니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장의 억울한 일도 지나고 보면 우리를 이롭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모술수와 치밀한 작전도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는 그저 역이용되는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를 해하려 하던 세상의 계획들이 오히려 우리를 이롭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역전됩니다.
그걸 못 기다려서 말로 원망하면 세상에게 지고 맙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바보같이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본문 15절은 그냥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크게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운다고 성질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참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사람이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에 하나님이 있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던 다윗처럼 우리에게도 성령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있는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왕 당하는 것은 기왕 사실인데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하루 아침에 얻은 출세와 횡재가 사울왕에게는 화가 되었고 다윗에게는 복이 되었던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있을 갑작스런 성공에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경우를 미리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성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김칫국이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준비하는 것과 모르고 당황하는 것의 차이는 성공의 유무보다 더 중요합니다.
갑작스런 성공과 억울한 일 둘 다 우리에게 크나큰 도전이며 리스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다윗이 지혜롭게 행할 수 있었던 키포인트는 바로 '하나님이 있는 성령 충만함' 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해 기고만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당황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의 권모술수로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성령 충만' 이라는 키포인트가 있습니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①사랑과 ②희락과 ③화평과 ④오래 참음과 ⑤자비와 ⑥양선과 ⑦충성과 ⑧온유와 ⑨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5:22~23)
우리의 역할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강함을 보고 두려워할 것도 없고
상대의 권모술수를 보고 머리 쓸 것도 없습니다.
상대의 치졸한 대응에 반응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구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사랑을 저절로 얻게 됩니다.
28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열심히 구하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는데 형통하고 사랑받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더욱더욱 그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싸울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의 반응을 마음에 두는가, 하나님의 반응을 마음에 두는가 선택해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육신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인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욱 신중하고 겸손히 지혜롭게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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