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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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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6,344회 작성일 22-08-07 09:35

본문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 사사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달리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을 행하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찾아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3권이 독립되어 나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옛날 고려시대 조선시대는 왕이 나라를 다스렸는데 위의 3권을 왕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12지파가 자치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지파 내에 해결할 수 없는 송사가 발생하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한 답은 이전 장에 나옵니다.

사무엘 사사 이전에는 성막과 법궤가 있던 실로에 사람들이 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법궤가 변방 기럇여야림에 방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실로에 올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사무엘 사사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이스라엘을 순회하며 지파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송사나 지파와 다른 지파 사이의 분쟁들을 판결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무엘의 순회 재판 방식은 큰 성공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7: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7: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어찌보면 행정부 입법부가 따로 없이 사법부 역할만 존재했던 사무엘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잘 살아가면 좋을텐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자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세워 더욱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실은 이러한 왕위 옹립 여론은 이스라엘의 악한 마음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0절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는 대표적인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같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처럼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들과 같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같아진다고 해도 얼마 안가 또 다시 불행해 질 것입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 우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쳐 주시고 아모리족속을 막아주셔서 전에 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른 나라들처럼 강성해지기를 원했습니다.

현재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못하면 큰 위기가 다가옵니다.

바로 '환상과 허영' 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이스라엘은 '왕' 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왕이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 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왕은 맨 뒤에서 백성들을 적들에게 내모는 역할을 차지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환상과 허영' 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왕' 이라는 인생의 만능키가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과 허영' 말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나 대신 싸워주고 나 대신 수고해 줄 '왕'은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능키' 나 '지름길' 은 없습니다.

돈이 우리의 만능키가 될 수 없습니다.

뛰어난 두뇌나 기술, 잘생긴 외모, 많은 유산, 강남 아파트나 빌딩, 주식, 연금 이런 것들이 결코 우리 인생의 '왕' 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돈과 능력으로 인해 더 많은 문제를 만들고 우리는 노예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앞서 나가야 하고 스스로 싸워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고 해도 우리가 나서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장로들의 악한 요구에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반응하였습니다.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요구에 대한 사무엘 사사의 반응은 '기뻐하지 아니하여' 라고 나옵니다.

왕을 세우자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는 사무엘 사사의 신정통치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키고자하는 하나의 정권교체 시도였습니다.

그간 재판권을 행사해 온 사무엘 사사에게는 판 자체를 바꾸는 큰 도전인 것입니다.

중세 유럽의 신정통치를 행사했던 로마교황체제는 왕권을 강화하려했던 세력들의 수많은 도전들을 무력으로 대응하며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했었습니다.

1077년 1월경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파문을 취소해 달라고 관용을 구한 카노사의 굴욕 사건은 신정체제와 왕정체제의 알력다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사무엘 사사는 로마교황들처럼 친위부대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열 두 지파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자금을 마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사무엘 사사의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야속할만 합니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자금을 조성하여 군대를 조직하여 새로운 왕정을 출범시키고자하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힘으로 굴복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사사의 위대한 순수함은 '하나님께 기도함' 을 통해 드러납니다.

6절에 보면 사무엘 사사는 장로들의 주장에 기뻐하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되 왕의 제도를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본문은 신정통치의 모범 답안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는 자신의 뜻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신정통치인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행할 여러 패악질들과 해악들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을 독재자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무소불휘한 주권은 엄연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리심은 인간의 독재정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시고 강압적으로 통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인간들을 너무 풀어주셔서 인간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게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범신론' 또는 '방관하는 초월자' 라며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자고하는 잘못된 요구까지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 유우부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오만방자함까지도 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결국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바로 우리가 소속된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속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이 곳에는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따로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통치는 세상의 독재자들의 통치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 무력으로 다스리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습니다.

당장 거역하더라도 별 큰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솔직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확실한 느낌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건성으로 넘어가버립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내버리지 않으십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옳았음을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참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억지와 무력으로 깨닫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주심으로 불순종하게 용인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이 과정은 결코 억압과 무력이 아닙니다.

오랜 참으심과 한없는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받는 백성이므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행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사무엘 사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하심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책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구부리고 악용한다면 엄청난 파장이 생깁니다.

로마 교황들처럼, 러시아의 그레고리 라스푸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들의 야욕을 이루고자 했던 패악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설령 사람들이 너무나 뻔한 잘못을 저지를 것 같기에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로마 교황이나 라스푸틴과 똑같은 생각입니다.

교회의 역할은 사람들의 잘못을 무력으로 막는 것이 아닙니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교회는 사람들의 잘못을 무력으로 막고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는 명령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역할은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일 뿐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서는 안됩니다.

다만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는 명령에 조금의 부족함 없이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는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는 명령 대신 다른 것들에 자원을 허비했습니다.

건축에 올인하고

조직을 만들어 수세를 확장하고

목사의 권한을 강화시켜 통제를 행사하고

각종 프로그램들과 수많은 예배들로 성도들을 통제하려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더 오래 지속 가능하고 확장성 있는 조직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업체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그대로 실현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 사업체들 처럼 그들과 같아져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99 마리 양을 위해 한 마리 양을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교회는 한 마리 양을 위해 99마리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같아져서는 안됩니다.

그들에게 왕이 있다고 우리도 왕을 세워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는 명령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봐도 진짜 아닌 것 같고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역할은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땀과 눈물과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굴복시켜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돌이킬 때까지 가르치고 기다리고 사랑해 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며 나의 역할이며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 스승의 역할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무엘 사사처럼 하나님 나라의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여러분의 동료들을 사무엘 처럼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엄히 경고하고 가르치라' 에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사들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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