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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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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6,654회 작성일 22-04-1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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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베다니에서 마리아의 기름으로 기름부음 의식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기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나귀 새끼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사야 62:11와 스가랴 9:9을 통해 왕이신 예수님의 겸손하신 모습의 예언을 성취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저번 주 본문에서 제자들과 사람들은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사건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의 기름부음 의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새끼 나귀를 택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여전히 제자들마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의 관찰력과 이해력이 부족해서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가만보니 예수님께서 스스로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나 로마 황제로 부터 기름부음 받으시지 않으시고 베다니 빈민촌의 마리아로부터 기름부음 받으셨습니다.

최고급 이집트 명마와 마차 대신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예수님의 왕이심과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오늘날 이렇게 전세계에 성경이 두루 퍼졌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아이신 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스스로 감추셨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여러 번 밝히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택하시는 부분이 더욱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묶여있는 어린 나귀를 데려오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나귀 주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하면 즉시 내어주리라는 말씀대로 나귀 주인은 아무런 반대없이 선뜻 나귀 어미와 어린 나귀를 내어주었습니다.

여리서 '주'는 단순한 소유자를 넘어 다스리는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과 나귀 주인 사이에는 분명한 무슨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나귀 주인은 나귀 어미와 새끼가 자신의 것이 아닌 예수님의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이유를 우리들처럼 제자들도 전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어찌된 이유인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에 복음서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 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자기 자신을 '주'라고 밝히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이 '주' 이시며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밝히셨지만 삼 년하고도 반년을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조차 예수님께서 메시아 그리스도시요, '주'이심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봤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경을 읽고 안다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론은 하나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6-9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메시아,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겉옷을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깔아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였습니다.

제자들도 몰랐던 예수님이 주라는 사실을 나귀 주인을 포함, 여러 군중들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군중들은 예수님이 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요?

:10-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군중들은 예수님을 '주'라고 외쳤지만 실은 진짜 '주'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저 사람이 누구냐라고 질문하자 "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 라고 답하였습니다.

'이는 누구냐' 라는 질문에 출생지와 직업으로 답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출생지와 직업이 중요했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구원자 메시아는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이기 때문에 이미 메시아 후보자에서 탈락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예수님은 왕도 아니고 레위 출신의 대제사장도 아닌 일개 선지자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누구냐'라는 이들의 질문 속에 이미 답은 그들의 머리 속에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기껏해야 모세나 사무엘, 이사야 같은 선지자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장차 나라를 구할 선지자의 출현은 대단한 일이며 군중들은 '주'라고 부르며 환호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예수님을 '주'라고 환호했던 군중들 모두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기대하고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의 메시아를 믿었을 뿐 현실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에 예수님은 이들이 원했던 대로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큰 나라, 큰 교회를 세워 엄청난 조직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엿새 후 체포되시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호산나를 외쳤던 군중들의 대부분은 '그럼 그렇지' 하며 예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아니 로마 황제로 태어나셨다면, 최소한 이스라엘 레위지파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주' 되심을 쉽게 믿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일도 없었을 것이구요.

그래도 안 믿는다면 수 많은 군중들 앞에서 하늘을 여시고 땅을 가르셨더라면 사람들을 쉽게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확실한 증거와 함께 강한 공권력을 동원하여 스스로 '주' 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신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이 '주'되심이라는 사실은 우리 인간의 인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주' 되신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머리로 기억한다고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빈다.

히브리어의 '안다' 는 말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하나가 된다' 라는 뜻이며 사랑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강한 공권력이나 기적의 현장을 통해 사람들이 빼도박도 못하게 '예수님은 주이심'을 알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명이라도 제대로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예수님과 뜨겁게 사랑하는 '진짜 앎'을 원하십니다.

한 영혼을 위해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시는 용서와 자비의 사랑은 한 번 배운다고 얻는 지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려면 책으로 공부한다고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일흔 번 일곱 번은 아니더라도 참고 참고 또 참는 인내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생을 통해 철저히 우리의 고정관념과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주 되심'을 직접 밝히셨지만 믿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자기 자신의 우물 속에 갇혀서는 안됩니다.

내가 생각한 예수, 내가 바라는 예수가 아니라 성경말씀이 선포하는 예수님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기 위해 가장 큰 교회, 가장 유명한 설교자, 가장 능력있는 예언자를 찾는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여전히 헛다리 짚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돈 많이 번 사람, 성공한 사람, 높은 권력에 오른 자들 사이에서 나도 예수 믿고 이들처럼 되야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오산입니다.

내 생각, 내 고정관념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한 상황과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흰 옷처럼 빨아야 합니다.

:16-17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은 엄마 아빠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성경 말씀을 어린 아기가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관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읍시다.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은 다시 빈민촌 베다니 마을로 가셨습니다.

화려한 궁궐을 버리고 허름한 빈민촌으로 가신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계십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들 중하나는 '신선한 충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자기 살 길만 찾고 자기 이익만 구하는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다가는 아무런 열매도 감동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신선한 충격들이 너무나 간절한 시대입니다.

성경 말씀이 주는 신선한 충격들이 우리의 머리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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