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찾아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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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예수님께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자기들을 높은 벼슬자리에 앉혀 큰소리치며 살게 해 줄 것이라는 아련한 꿈을 가지고 3년간이나 죽자 살자 따라다녔던 제자들에게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나자 그 환상적인 꿈은 허무하게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일도 없어졌고 또 잘못하다가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죄로 연좌되어 자기들도 잡혀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쓰라린 패배감을 느끼며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했고, 또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절)는 당부까지 들었으면서도 그때까지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안 배운 도둑질은 할 수 없고 본업을 찾아 갈릴리로 왔던 것입니다. 디베랴는 예루살렘에서 약 240리(96km)나 떨어져 있는 갈릴리 바다 오른쪽 편이며 베드로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부랴부랴 어구를 챙겨 고기잡이에 나섰으나 이상하게도 저녁 내내 피라미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기운이 빠지고 허탈했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스러웠겠습니까?
1. 그 새벽에 그들에게 찾아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실패와 절망의 밤이 지나가고 날이 새려는 새벽이었습니다. 가장 추울 때였습니다. 가장 배고플 때 였습니다. 저녁 내내 허탕치고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그물을 던질 수 없어 바닷가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말씀하시자 순종하며 다시 던져 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더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몇 년 동안이나 믿으셨습니까?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봉사생활을 하셨습니까?
그러나 별로 마음과 손에 잡히신 것이 없습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뭐가 뭔지 모르시겠습니까?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으십니까?
혹 실패 하셨습니까? 고달프십니까? 인생이 허무하고 허탈하십니까?
별로 되는 일이 없습니까? 그물에 고기가 안 잡힙니까? 그래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헛수고를 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들을 보고서 안쓰러이 여기시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씻고 있는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다시 한번 그물을 던져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안 잡히는 그물질을 이제 때려치우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다시 던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헛군데다 던지지 말고 꼭 고기가 있을 곳에 던지라는 뜻도 있겠지만 무엇을 하든지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시 해 봅시다. 또 한번 더 던져 봅시다.
이것 할까? 저것 할 까? 망설이기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대로, 내가 익힌 재능대로, 실패했지만 그래도 해 보았던 경험을 살려 다시 인생의 그물을 던져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넘어졌을 때가 다시 일어날 기회입니다. 제 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서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하려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다시 던지라고 명령하셨고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의 그물, 인생의 그물, 신앙의 그물을 다시 던지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왜 찾아 오셨습니까?
(1)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을 그냥 방관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의 문제를 예수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셨습니다. 허탈감과 절망감속에서 방황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팽개쳐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18절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바로 그 약속의 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인자(人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민23:19)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240리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오셨습니다. 출렁거리는 파도소리만 들리는 갈릴리 바다까지 오셨습니다. 절망감에 떨고 있는 외로운 제자들을 버려둘 수 없어서 오셨습니다. 오늘도 외로운 분들이 계십니까??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니 여러분 곁에 이미 와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독과 절망과 좌절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이미 오셔서 내 곁에 계심을 믿으시는 확신뿐입니다. 아무리 배가 크고 좋아도 닻이 없으면 창파에 떠밀려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만이 우리 인생의 닻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니라”(요1서 5:4)고 했습니다. 아무리 함께 사는 부부간도 믿음이 없으면 그 가정은 지옥생활입니다. 하물며 거친 바다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인생은 표류하는 배처럼 무슨 희망과 평안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이 예배당에 찾아오신 그 예수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2) 또 예수님께서 그 갈릴리 해변까지 제자들을 찾아오신 특별한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제자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갈릴리 바닷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 그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앞세워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는데도 조금만 고생스러우면 노예 생활하던 애굽을 동경하며 돌아가려고 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우리들도 옛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나비가 구데기 껍질을 벗고 꽃향기를 맡으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들도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맡으며 나비가 꽃가루를 옮겨 주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기도하고 성령 받아 거기서부터 복음운동을 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작은 호수에서 물고기나 잡을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죄가 많고 타락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환멸의 도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죽음의 도이시기 때문에 더욱 생명의 말씀이 필요했고, 죄악으로 어둡고 썩은 도시이기 때문에 그들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투표하여 갈아보고 기대하며 뽑아 준 그 지도자 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속이고 부정하고 부패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선창가 비린내처럼 고리케케한 냄새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낚아야 할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예루살렘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데리려 오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기를 원합니다.
길 잃고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길을 제시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방황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가 전도하고 있을 때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잠시 떠나 피해 있으려고 시외(市外)로 나가고 있을 때 다시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묵묵히 베드로와 반대방향인 죽음의 도시 로마를 향해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깜짝 놀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하고 묻자 “네가 사명을 버리고 떠나니 내가 대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챤들이여!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갈릴리 바닷가입니까? 쾌락과 환락의 도시입니까? 아니 죽음의 도시, 부패한 도시를 떠나 한가로운 시외로 나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실을 도피하려는 비겁자는 아닙니까? 이 시대를 바꾸어야 할 사명을 버리고 엉뚱한 곳에 있거나 엉뚱한 곳에서 육신의 쾌락과 안일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의 사명을 회피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늘도 찾아오십니다.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룻밤의 헛수고가 끝났습니다. 그들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오른편은 언제나 올바른 방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깨닫고 믿고 순종하면 헛수고가 변하여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내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절망과 고독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것을 믿습니다. 영의 눈을 크게 뜨고 그 주님을 바라보시고 영의 귀가 활짝 열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오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춥고 배고픈 그들을 위해 육지에다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구워놓고 떡까지 준비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들보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더 잘 아십니다. 무엇이 먼저 필요한 것도 다 아십니다. 굶주린 제자들에게는 옷보다도 먹을 것이 더 필요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올리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물에 고기가 잡힌 것은 전도를 의미합니다. 그 고기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또 종류도 여러 가지 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누구를 막론하고 다 전도할 것을 영적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음식을 충분히 먹게 하고 제자들의 허기가 사라지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네 양을 먹이라, 네 양을 치라” 고 세 번이나 다짐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충분히 보장을 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 주시고 예루살렘거리로 뛰쳐나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 그들에게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고 강권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합시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립시다. 복음의 횃불을 들고 거리고 나갑시다. 샅샅이 뒤져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려내는 총력전도운동에 모두 참여합시다. 사명을 잘 감당하시므로 축복의 고지에 올라가 승리의 깃발을 꽂읍시다.
그래서 그들은 할 일도 없어졌고 또 잘못하다가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죄로 연좌되어 자기들도 잡혀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쓰라린 패배감을 느끼며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했고, 또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절)는 당부까지 들었으면서도 그때까지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안 배운 도둑질은 할 수 없고 본업을 찾아 갈릴리로 왔던 것입니다. 디베랴는 예루살렘에서 약 240리(96km)나 떨어져 있는 갈릴리 바다 오른쪽 편이며 베드로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부랴부랴 어구를 챙겨 고기잡이에 나섰으나 이상하게도 저녁 내내 피라미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기운이 빠지고 허탈했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스러웠겠습니까?
1. 그 새벽에 그들에게 찾아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실패와 절망의 밤이 지나가고 날이 새려는 새벽이었습니다. 가장 추울 때였습니다. 가장 배고플 때 였습니다. 저녁 내내 허탕치고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그물을 던질 수 없어 바닷가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말씀하시자 순종하며 다시 던져 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더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몇 년 동안이나 믿으셨습니까?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봉사생활을 하셨습니까?
그러나 별로 마음과 손에 잡히신 것이 없습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뭐가 뭔지 모르시겠습니까?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으십니까?
혹 실패 하셨습니까? 고달프십니까? 인생이 허무하고 허탈하십니까?
별로 되는 일이 없습니까? 그물에 고기가 안 잡힙니까? 그래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헛수고를 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들을 보고서 안쓰러이 여기시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씻고 있는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다시 한번 그물을 던져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안 잡히는 그물질을 이제 때려치우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다시 던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헛군데다 던지지 말고 꼭 고기가 있을 곳에 던지라는 뜻도 있겠지만 무엇을 하든지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시 해 봅시다. 또 한번 더 던져 봅시다.
이것 할까? 저것 할 까? 망설이기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대로, 내가 익힌 재능대로, 실패했지만 그래도 해 보았던 경험을 살려 다시 인생의 그물을 던져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넘어졌을 때가 다시 일어날 기회입니다. 제 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서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하려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다시 던지라고 명령하셨고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의 그물, 인생의 그물, 신앙의 그물을 다시 던지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왜 찾아 오셨습니까?
(1)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을 그냥 방관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의 문제를 예수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셨습니다. 허탈감과 절망감속에서 방황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팽개쳐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18절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바로 그 약속의 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인자(人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민23:19)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240리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오셨습니다. 출렁거리는 파도소리만 들리는 갈릴리 바다까지 오셨습니다. 절망감에 떨고 있는 외로운 제자들을 버려둘 수 없어서 오셨습니다. 오늘도 외로운 분들이 계십니까??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니 여러분 곁에 이미 와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독과 절망과 좌절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이미 오셔서 내 곁에 계심을 믿으시는 확신뿐입니다. 아무리 배가 크고 좋아도 닻이 없으면 창파에 떠밀려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만이 우리 인생의 닻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니라”(요1서 5:4)고 했습니다. 아무리 함께 사는 부부간도 믿음이 없으면 그 가정은 지옥생활입니다. 하물며 거친 바다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인생은 표류하는 배처럼 무슨 희망과 평안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이 예배당에 찾아오신 그 예수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2) 또 예수님께서 그 갈릴리 해변까지 제자들을 찾아오신 특별한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제자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갈릴리 바닷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 그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앞세워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는데도 조금만 고생스러우면 노예 생활하던 애굽을 동경하며 돌아가려고 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우리들도 옛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나비가 구데기 껍질을 벗고 꽃향기를 맡으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들도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맡으며 나비가 꽃가루를 옮겨 주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기도하고 성령 받아 거기서부터 복음운동을 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작은 호수에서 물고기나 잡을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죄가 많고 타락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환멸의 도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죽음의 도이시기 때문에 더욱 생명의 말씀이 필요했고, 죄악으로 어둡고 썩은 도시이기 때문에 그들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투표하여 갈아보고 기대하며 뽑아 준 그 지도자 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속이고 부정하고 부패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선창가 비린내처럼 고리케케한 냄새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낚아야 할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예루살렘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데리려 오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기를 원합니다.
길 잃고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길을 제시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방황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가 전도하고 있을 때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잠시 떠나 피해 있으려고 시외(市外)로 나가고 있을 때 다시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묵묵히 베드로와 반대방향인 죽음의 도시 로마를 향해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깜짝 놀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하고 묻자 “네가 사명을 버리고 떠나니 내가 대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챤들이여!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갈릴리 바닷가입니까? 쾌락과 환락의 도시입니까? 아니 죽음의 도시, 부패한 도시를 떠나 한가로운 시외로 나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실을 도피하려는 비겁자는 아닙니까? 이 시대를 바꾸어야 할 사명을 버리고 엉뚱한 곳에 있거나 엉뚱한 곳에서 육신의 쾌락과 안일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의 사명을 회피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늘도 찾아오십니다.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룻밤의 헛수고가 끝났습니다. 그들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오른편은 언제나 올바른 방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깨닫고 믿고 순종하면 헛수고가 변하여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내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절망과 고독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것을 믿습니다. 영의 눈을 크게 뜨고 그 주님을 바라보시고 영의 귀가 활짝 열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오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춥고 배고픈 그들을 위해 육지에다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구워놓고 떡까지 준비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들보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더 잘 아십니다. 무엇이 먼저 필요한 것도 다 아십니다. 굶주린 제자들에게는 옷보다도 먹을 것이 더 필요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올리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물에 고기가 잡힌 것은 전도를 의미합니다. 그 고기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또 종류도 여러 가지 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누구를 막론하고 다 전도할 것을 영적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음식을 충분히 먹게 하고 제자들의 허기가 사라지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네 양을 먹이라, 네 양을 치라” 고 세 번이나 다짐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충분히 보장을 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 주시고 예루살렘거리로 뛰쳐나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 그들에게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고 강권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합시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립시다. 복음의 횃불을 들고 거리고 나갑시다. 샅샅이 뒤져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려내는 총력전도운동에 모두 참여합시다. 사명을 잘 감당하시므로 축복의 고지에 올라가 승리의 깃발을 꽂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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