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을 찾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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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에는 비유중의 비유라고 볼 수 있는 고귀한 진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①길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과 ②잃어버린 돈을 찾은 여인의 기쁨과 ③방탕한 자식이 돌아온데 대한 아버지의 기쁨의 비유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중요한 교훈은 첫째로 고통 중에 있는 의지할 데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진 죄인에 대한 동정을 표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 것이요, 둘째로는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귀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기쁨이 더하리라고 했습니다.(7절) 또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절) 본문의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1. 먼저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세계는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지난날에 있었던 것이 개량 발달되고 있고 새로운 것들이 놀랄만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시화, 산업화, 기계화, 기술화 내지는 지능화가 되고 모든 것이 첨단화 되어가는 이러한 현대 상황에서 크리스찬들 조차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재고(再考)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잠간 멈추고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범죄 한 아담의 첫 후예인 가인이 “내가 아우를 지키는자이니까?(창4:9)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아상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처럼 자신인 나마저 상실해 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내 대신 죽어 그의 피 공로로 구원받아 현재도 미래도 영원히 새 생명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내가 교회를 지키는자이니까? 엄연히 일꾼의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내가 일꾼입니까?” 전도해야 할 절대적 사명이 있음에도 “내가 전도하는 사람입니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반항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모두 진정한 자아상실의 반응인 것입니다. 물질문명에 도취되어 생의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물질과 돈과 명예와 권력의 꼭두각시 인생이 되어 있다는 여실한 증거임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챤이면서 난 크리스챤(Non christian), 크리스챤이 아닌 모습으로 전략되어 버린 현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양심만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편만하여 인간의 기본 양심마저 둔감해지고 마비되어 개인과 사회가 똑바로 설 수 없는 구루병 환자같은 착각이 들게 합니다. 옛말에도 “방귀뀐놈이 성질낸다” 는 말이 있듯이 요즈음 세상을 보면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먹고, 또 일해야 할 사람이 놀면서 더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양심의 기준은 흔들리고 도적은 말살된지 이미 오래이며 교육계나 종교계마저 썩어가는 냄새가 가을바람처럼 솔솔 코를 찌릅니다. 그래서 서로 무관심한 사회가 되고 고독한 군중을 만들고 결국은 자기 중심주의, 극도의 이기주의로 세상은 변질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잃어버려도 꼭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믿음(faith)입니다. 신앙만은 상실(喪失)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마저 이 불신 풍조에 휩쓸려서 처음 받은 믿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영생의 소망까지도 잃어버린다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곧 우리 자신들의 문제입니다. 행여나 나 자신 속에 이상과 같은 자아와 양심과 신앙이 상실되었다면 잃어버린 나의 본 모습을 확실히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서둘러야 할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2. 본문의 비유에서 양이나 드라크마나 아들을 왜 잊어 버렸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①방임했기 때문에 잃어 버렸습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나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모든 방임, 방시, 방종의 상태와 불순종하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자 되신 주님의 품을 떠나서 자행자지 하며(自行自止)하며 인간의 자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부할 때에 인간의 가장 귀한 가치인 믿음과 순종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②드라크마는 여인의 실수로 잃어 버렸습니다
귀한 보화일수록 조심성 있게 잘 간수해야 할 것이지만 이 여인은 어두운 집에서 부주의로 인한 실수로 잃어버렸습니다.
③제대로 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잃어 버렸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가장 귀중한 보화인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어쩌튼 양은 목자의 곁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양이 목자의 곁에서 멀어질 때 자연히 짐승의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3. 그러면 잃은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①가까이 가야 합니다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가듯이 또한 탕자가 아버지께로 접근해 가듯이 찾아야 할 대상자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상태는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우리는 비록 버려진 영혼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실되어져 가는 형편에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내가 바로 서야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왜 전도를 못합니까? 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잃어버린 신앙, 첫사랑을 찾아 뜨거워져서 길 잃고 헤매이는, 방황하는 심령들에게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해내야 할 줄 믿습니다.
②불을 밝혀야 합니다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다고 했습니다.(8절) 우리말에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집안을 뒤고 맨다”는 말이 있습니다. 샅샅이 찾는다는 말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눈에 띠지 않습니까? 전도할 대상이 주위에 없습니까? 잃어버린 보화를 찾듯 사방을 뒤고 매 보세요. 옆집도 그 옆집도 찾아보세요.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고 소망의 심지를 돋우워서 사랑의 빛을 밝혀 보십시오. 기도로 등불을 준비하세요. 한 생명이라도 더 찾아내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최상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 부흥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목포시내 구석 구석을 뒤지고 잡초 밭을 매듯 찾고 찾아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 버리고 그렇게도 다시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탕자의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한 영혼이 돌아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인도해 드립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시다.
③찾으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찾으려면 말로만은 안 됩니다. 생각만으로는 안 됩니다. 결심만으로도 안 됩니다. 본문에 보면 찾아 다녔다고 했습니다.(4절)
탕자는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갔다고 했습니다.(20절)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여인은 집안을 쓸었다고 했습니다.(8절)
이러한 말씀은 모두 결심한 바를 곧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신앙행위 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데도 시간과 돈과 기술과 힘이 드는데 그보다 더욱 값진 선, 진실, 신의(信義), 사랑, 신령한 은사들, 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을 찾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전도를 만만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적에게 빼앗긴 전략적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필사의 투쟁을 하는 것과 같이 잃은 것을 찾는 일에 인적, 물질, 기술, 시간에다 플러스 알파(α)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영혼 구원 운동에 총력을 다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역군임을 명심합시다. 우리 교회에서 다음 주일 저녁부터 개최하는 전도 엑스포 운동에 이제 팔 걷고 앞장서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하여 집안을 두고 매며 험산 준령 가시밭길을 헤매어 한 영혼이라고 찾아 주님 앞에 인도할 때 기뻐하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산 가시에 찔리며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찾아 어깨에 메고 집에 와 잔치를 벌렸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그 아이를 찾으려고 직장도 버리고 3-5년 전국을 헤매는 부모님들에 관한 기사가 자주 보도되는 것을 봅니다. 그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 해 보세요. 만일 찾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그 이상 애타는 심정으로 한 영혼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런 영혼을 인도 해 오면 너무도 기뻐서 하늘에서 천사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 영혼을 인도 해 온 여러분들에게 어떤 축복이 있겠습니까? 꼭 축복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전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전도는 구원받은 우리들의 마땅한 의무이자 사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해 벌떡 일어납시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찾으시고, 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잃은 영혼 찾기 운동에 총력을 다 쏟으십시다. 찾기 위해 내 집, 내 주위부터 쓸고 뒤지고 매 봅시다.
주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려고 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전도하려고 하면 인도해야 할 생명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애타게 찾고 계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꼭 찾아 주님께 모두 인도해 오시기 바랍니다.
1. 먼저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세계는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지난날에 있었던 것이 개량 발달되고 있고 새로운 것들이 놀랄만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시화, 산업화, 기계화, 기술화 내지는 지능화가 되고 모든 것이 첨단화 되어가는 이러한 현대 상황에서 크리스찬들 조차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재고(再考)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잠간 멈추고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범죄 한 아담의 첫 후예인 가인이 “내가 아우를 지키는자이니까?(창4:9)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아상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처럼 자신인 나마저 상실해 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내 대신 죽어 그의 피 공로로 구원받아 현재도 미래도 영원히 새 생명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내가 교회를 지키는자이니까? 엄연히 일꾼의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내가 일꾼입니까?” 전도해야 할 절대적 사명이 있음에도 “내가 전도하는 사람입니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반항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모두 진정한 자아상실의 반응인 것입니다. 물질문명에 도취되어 생의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물질과 돈과 명예와 권력의 꼭두각시 인생이 되어 있다는 여실한 증거임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챤이면서 난 크리스챤(Non christian), 크리스챤이 아닌 모습으로 전략되어 버린 현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양심만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편만하여 인간의 기본 양심마저 둔감해지고 마비되어 개인과 사회가 똑바로 설 수 없는 구루병 환자같은 착각이 들게 합니다. 옛말에도 “방귀뀐놈이 성질낸다” 는 말이 있듯이 요즈음 세상을 보면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먹고, 또 일해야 할 사람이 놀면서 더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양심의 기준은 흔들리고 도적은 말살된지 이미 오래이며 교육계나 종교계마저 썩어가는 냄새가 가을바람처럼 솔솔 코를 찌릅니다. 그래서 서로 무관심한 사회가 되고 고독한 군중을 만들고 결국은 자기 중심주의, 극도의 이기주의로 세상은 변질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잃어버려도 꼭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믿음(faith)입니다. 신앙만은 상실(喪失)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마저 이 불신 풍조에 휩쓸려서 처음 받은 믿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영생의 소망까지도 잃어버린다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곧 우리 자신들의 문제입니다. 행여나 나 자신 속에 이상과 같은 자아와 양심과 신앙이 상실되었다면 잃어버린 나의 본 모습을 확실히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서둘러야 할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2. 본문의 비유에서 양이나 드라크마나 아들을 왜 잊어 버렸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①방임했기 때문에 잃어 버렸습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나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모든 방임, 방시, 방종의 상태와 불순종하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자 되신 주님의 품을 떠나서 자행자지 하며(自行自止)하며 인간의 자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부할 때에 인간의 가장 귀한 가치인 믿음과 순종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②드라크마는 여인의 실수로 잃어 버렸습니다
귀한 보화일수록 조심성 있게 잘 간수해야 할 것이지만 이 여인은 어두운 집에서 부주의로 인한 실수로 잃어버렸습니다.
③제대로 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잃어 버렸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가장 귀중한 보화인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어쩌튼 양은 목자의 곁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양이 목자의 곁에서 멀어질 때 자연히 짐승의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3. 그러면 잃은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①가까이 가야 합니다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가듯이 또한 탕자가 아버지께로 접근해 가듯이 찾아야 할 대상자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상태는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우리는 비록 버려진 영혼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실되어져 가는 형편에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내가 바로 서야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왜 전도를 못합니까? 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잃어버린 신앙, 첫사랑을 찾아 뜨거워져서 길 잃고 헤매이는, 방황하는 심령들에게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해내야 할 줄 믿습니다.
②불을 밝혀야 합니다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다고 했습니다.(8절) 우리말에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집안을 뒤고 맨다”는 말이 있습니다. 샅샅이 찾는다는 말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눈에 띠지 않습니까? 전도할 대상이 주위에 없습니까? 잃어버린 보화를 찾듯 사방을 뒤고 매 보세요. 옆집도 그 옆집도 찾아보세요.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고 소망의 심지를 돋우워서 사랑의 빛을 밝혀 보십시오. 기도로 등불을 준비하세요. 한 생명이라도 더 찾아내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최상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 부흥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목포시내 구석 구석을 뒤지고 잡초 밭을 매듯 찾고 찾아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 버리고 그렇게도 다시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탕자의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한 영혼이 돌아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인도해 드립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시다.
③찾으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찾으려면 말로만은 안 됩니다. 생각만으로는 안 됩니다. 결심만으로도 안 됩니다. 본문에 보면 찾아 다녔다고 했습니다.(4절)
탕자는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갔다고 했습니다.(20절)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여인은 집안을 쓸었다고 했습니다.(8절)
이러한 말씀은 모두 결심한 바를 곧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신앙행위 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데도 시간과 돈과 기술과 힘이 드는데 그보다 더욱 값진 선, 진실, 신의(信義), 사랑, 신령한 은사들, 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을 찾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전도를 만만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적에게 빼앗긴 전략적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필사의 투쟁을 하는 것과 같이 잃은 것을 찾는 일에 인적, 물질, 기술, 시간에다 플러스 알파(α)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영혼 구원 운동에 총력을 다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역군임을 명심합시다. 우리 교회에서 다음 주일 저녁부터 개최하는 전도 엑스포 운동에 이제 팔 걷고 앞장서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하여 집안을 두고 매며 험산 준령 가시밭길을 헤매어 한 영혼이라고 찾아 주님 앞에 인도할 때 기뻐하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산 가시에 찔리며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찾아 어깨에 메고 집에 와 잔치를 벌렸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그 아이를 찾으려고 직장도 버리고 3-5년 전국을 헤매는 부모님들에 관한 기사가 자주 보도되는 것을 봅니다. 그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 해 보세요. 만일 찾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그 이상 애타는 심정으로 한 영혼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런 영혼을 인도 해 오면 너무도 기뻐서 하늘에서 천사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 영혼을 인도 해 온 여러분들에게 어떤 축복이 있겠습니까? 꼭 축복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전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전도는 구원받은 우리들의 마땅한 의무이자 사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해 벌떡 일어납시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찾으시고, 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잃은 영혼 찾기 운동에 총력을 다 쏟으십시다. 찾기 위해 내 집, 내 주위부터 쓸고 뒤지고 매 봅시다.
주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려고 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전도하려고 하면 인도해야 할 생명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애타게 찾고 계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꼭 찾아 주님께 모두 인도해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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