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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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인이 가정 생활을 비관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너무 살기가 힘들고 팍팍해서 빨리 죽고 싶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 살기가 힘이 드는 모양이구나!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소원을 들어 줄 테니 그 전에 몇 가지만 네 말대로 해 보겠니?” 그 부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 했습니다. “얘야! 집안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에 정리를 잘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 청소를 좀 할래?” 그녀는 열심히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3일후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은 “얘야! 애들이 마음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 엄마는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해 볼래?”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애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요리하여 먹였습니다. 3일 후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했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됐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당부하마 그동안 남편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고 그 사람이 많이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3일 동안만 남편에게 최대한으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어 보아라” 그 부인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다시 3일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마지막으로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집을 돌아보니까 깨끗하고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은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갑자기 이 행복이 어디에서 왔지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란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예요? 그러면 여기에서 천국을 만들어 가며 살아 볼래요!!” 불과 9일 동안 이렇게 천국 만들기의 기적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그 기적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희생의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희생의 짐을 지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희생은 부담스럽지만 그 부담을 각오할 때 행복의 신비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그런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을 만나 봅시다.
1. 사랑에 빠진 야곱
야곱은 형에게 장자권을 강탈하듯 그렇게 빼앗은 후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멀리 하란으로 도망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형이 이곳까지는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안도감 속에서 라반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형의 장자권까지 눈먼 아버지를 속여 빼앗은 사람이 아닙니까? 어찌 사랑하는 라헬을 짝사랑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용기내서 외삼촌에게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봉사할 테니 결혼시켜 달라고 제의했습니다.(18절) 흔쾌히 그렇게 노동계약이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말이니까 그렇지 7년이 짧은 세월입니까? 아무리 여자가 예뻐도 나는 그리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야곱에게는 그 7년이 불과 며칠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7년 후에 라헬과 결혼하게 된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 긴 시간들도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자 하나 때문에 젊음을 낭비하는 것 같겠지만 야곱은 오히려 기쁘기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사랑에 빠지시기 바랍니다. 여자를 사랑하던, 남자를 사랑하던 정상적인 사랑을 하는데 누가 탓하겠습니까? 그러나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사랑하십시오. 내일에 꿈을 가지고 그 일에 미쳐 보십시오. 그런 학생은 공부가 싫증나거나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꾼은 일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저도 직장을 버리고 교회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아니 천국까지 가족처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줄까? 오직 이 생각만 하고 살다 보니까 30여년의 세월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몰랐습니다. 일꾼들보다 더 심한 중노동을 해 보았지만 고달픈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우들을 사랑하며 살았더니 어린이집이 세워지고 그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 양로원까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또 네팔에 교회를 세웠고, 회교 지역에 선교사도 파송했습니다. 그래도 기쁘기만 했지 한 번도 힘드니까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기보다 자기들의 권위를 세우려고 하고, 자신의 말 한마디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지나친 탓일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어 앞으로 교회가 어디로 갈까? 걱정하는 노파심 때문일까요? 그래도 죽을 때까지 일만 사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야곱처럼 오직 섬기는 일만 나의 최상의 기쁨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무슨 일에나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피곤합니다. 희생의 짐을 지면 인생의 짐은 가벼워집니다. 희생은 부담스럽지만 그 부담을 각오할 때 행복의 신비가 찾아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월급 한 푼 안 받고 일했지만 피곤하기는커녕 오히려 콧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7년이 불과 며칠 같았던 것입니다. “빼앗는 자, 속이는 자, 도망자”라는 별명이 붙은 야곱의 인생이 이렇게 바뀐 것은 사랑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듣기 원하는 고백은 다름 아닌 사랑의 고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임금을 좋아하신 것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실패한 제자 베드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거나 다짐하지 않으셨지만 유일하게 물으셨던 것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는 다짐이었습니다. 사람도 사랑하세요. 일도 사랑하세요. 공부도 사랑하세요. 그러나 창조주이시며 여러분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매일 기쁘고 여러분이 머무시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2. 야곱은 이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오직 라헬을 사랑했기에, 학수고대 결혼할 그 날만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결혼식 날 첫날밤을 지나고 아침에 보니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아니요, 엉뚱하게 큰 딸 레아였습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했다는 기사를 보면 좀 어리 빌빌하고 얼굴도 못 생겼을 것 같이 상상됩니다. 아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라 7년 고생이 허탕되고 만 것입니다. 신성한 결혼을 가지고 어떻게 이처럼 장난질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야곱은 분노하여 라반에게 찾아가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였나이까”(25절)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은 천연스럽게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의 풍습이 아니라고 하며 네가 꼭 라헬과 결혼하고 싶다면 앞으로 7년 동안을 더 섬기라고 제의 하는 것이었습니다.(27-27절) 그것은 야곱의 노동력을 더 착취하려는 외삼촌의 속임수였습니다. 그때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화난대로 하면 레아도 라헬도 필요 없으니 품삯이나 내 놓으라고 큰소리쳤을 것입니다. 외삼촌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마음을 돌렸습니다. 간교하게 속인 외삼촌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야곱의 목적은 라헬을 사랑하여 그를 아내로 삼고저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화는 났지만 목적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에 라헬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만약 화난대로 분풀이를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외삼촌을 구타했던지, 집에 불을 질러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의 꿈과 목적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좀 더 고생하더라도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계약 위반을 따지지 않고 다시 섬기기로 마음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러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빼앗고, 차지하고, 정복하려는 야곱의 자신의 야망대로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세상과 나누고 자신을 통하여 남이 행복해지고 부요해질 수 있는 복의 통로로 세우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조금씩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좋은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라헬을 위하여 기꺼이 7년을 더 봉사할 것을 결단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전에는 움켜쥐고, 빼앗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땀을 흘리는데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재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비록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14년을 무료 봉사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야곱을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세움 받은 족장이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생동안 붙잡고 흔들어야 할 깃발이 무엇이며, 생명을 바쳐 살아야 할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그곳에서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신앙생활은 결단입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은 사랑으로, 섬김으로, 감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결단입니다. 야곱은 전혀 다른 삶을 결단함으로 그의 인생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신성한 결혼을 가지고 장난치는 현장에서, 인생의 계획이 뒤죽박죽되는 순간에, 야곱은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렇게 살지 않고 되는대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7년 고생이 헛고생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으며 여종 빌하까지 시녀로 따라왔습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열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 그 유명한 요셉이 아닙니까?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공짜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좋은 일을 하려는 결단에서 옵니다. 여러분 썩어져 버릴 것만 위해 살면 그것과 함께 썩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면 영원히 행복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노력하고 예수 믿어 온 삶이 헛고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여러분들도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듯이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얼마든지 천국 만들기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습니다. 야곱처럼 우리도 행복을 만들어갑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빕니다.
1. 사랑에 빠진 야곱
야곱은 형에게 장자권을 강탈하듯 그렇게 빼앗은 후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멀리 하란으로 도망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형이 이곳까지는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안도감 속에서 라반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형의 장자권까지 눈먼 아버지를 속여 빼앗은 사람이 아닙니까? 어찌 사랑하는 라헬을 짝사랑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용기내서 외삼촌에게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봉사할 테니 결혼시켜 달라고 제의했습니다.(18절) 흔쾌히 그렇게 노동계약이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말이니까 그렇지 7년이 짧은 세월입니까? 아무리 여자가 예뻐도 나는 그리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야곱에게는 그 7년이 불과 며칠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7년 후에 라헬과 결혼하게 된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 긴 시간들도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자 하나 때문에 젊음을 낭비하는 것 같겠지만 야곱은 오히려 기쁘기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사랑에 빠지시기 바랍니다. 여자를 사랑하던, 남자를 사랑하던 정상적인 사랑을 하는데 누가 탓하겠습니까? 그러나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사랑하십시오. 내일에 꿈을 가지고 그 일에 미쳐 보십시오. 그런 학생은 공부가 싫증나거나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꾼은 일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저도 직장을 버리고 교회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아니 천국까지 가족처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줄까? 오직 이 생각만 하고 살다 보니까 30여년의 세월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몰랐습니다. 일꾼들보다 더 심한 중노동을 해 보았지만 고달픈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우들을 사랑하며 살았더니 어린이집이 세워지고 그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 양로원까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또 네팔에 교회를 세웠고, 회교 지역에 선교사도 파송했습니다. 그래도 기쁘기만 했지 한 번도 힘드니까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기보다 자기들의 권위를 세우려고 하고, 자신의 말 한마디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지나친 탓일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어 앞으로 교회가 어디로 갈까? 걱정하는 노파심 때문일까요? 그래도 죽을 때까지 일만 사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야곱처럼 오직 섬기는 일만 나의 최상의 기쁨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무슨 일에나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피곤합니다. 희생의 짐을 지면 인생의 짐은 가벼워집니다. 희생은 부담스럽지만 그 부담을 각오할 때 행복의 신비가 찾아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월급 한 푼 안 받고 일했지만 피곤하기는커녕 오히려 콧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7년이 불과 며칠 같았던 것입니다. “빼앗는 자, 속이는 자, 도망자”라는 별명이 붙은 야곱의 인생이 이렇게 바뀐 것은 사랑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듣기 원하는 고백은 다름 아닌 사랑의 고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임금을 좋아하신 것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실패한 제자 베드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거나 다짐하지 않으셨지만 유일하게 물으셨던 것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는 다짐이었습니다. 사람도 사랑하세요. 일도 사랑하세요. 공부도 사랑하세요. 그러나 창조주이시며 여러분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매일 기쁘고 여러분이 머무시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2. 야곱은 이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오직 라헬을 사랑했기에, 학수고대 결혼할 그 날만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결혼식 날 첫날밤을 지나고 아침에 보니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아니요, 엉뚱하게 큰 딸 레아였습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했다는 기사를 보면 좀 어리 빌빌하고 얼굴도 못 생겼을 것 같이 상상됩니다. 아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라 7년 고생이 허탕되고 만 것입니다. 신성한 결혼을 가지고 어떻게 이처럼 장난질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야곱은 분노하여 라반에게 찾아가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였나이까”(25절)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은 천연스럽게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의 풍습이 아니라고 하며 네가 꼭 라헬과 결혼하고 싶다면 앞으로 7년 동안을 더 섬기라고 제의 하는 것이었습니다.(27-27절) 그것은 야곱의 노동력을 더 착취하려는 외삼촌의 속임수였습니다. 그때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화난대로 하면 레아도 라헬도 필요 없으니 품삯이나 내 놓으라고 큰소리쳤을 것입니다. 외삼촌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마음을 돌렸습니다. 간교하게 속인 외삼촌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야곱의 목적은 라헬을 사랑하여 그를 아내로 삼고저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화는 났지만 목적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에 라헬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만약 화난대로 분풀이를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외삼촌을 구타했던지, 집에 불을 질러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의 꿈과 목적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좀 더 고생하더라도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계약 위반을 따지지 않고 다시 섬기기로 마음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러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빼앗고, 차지하고, 정복하려는 야곱의 자신의 야망대로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세상과 나누고 자신을 통하여 남이 행복해지고 부요해질 수 있는 복의 통로로 세우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조금씩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좋은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라헬을 위하여 기꺼이 7년을 더 봉사할 것을 결단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전에는 움켜쥐고, 빼앗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땀을 흘리는데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재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비록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14년을 무료 봉사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야곱을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세움 받은 족장이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생동안 붙잡고 흔들어야 할 깃발이 무엇이며, 생명을 바쳐 살아야 할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그곳에서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신앙생활은 결단입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은 사랑으로, 섬김으로, 감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결단입니다. 야곱은 전혀 다른 삶을 결단함으로 그의 인생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신성한 결혼을 가지고 장난치는 현장에서, 인생의 계획이 뒤죽박죽되는 순간에, 야곱은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렇게 살지 않고 되는대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7년 고생이 헛고생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으며 여종 빌하까지 시녀로 따라왔습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열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 그 유명한 요셉이 아닙니까?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공짜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좋은 일을 하려는 결단에서 옵니다. 여러분 썩어져 버릴 것만 위해 살면 그것과 함께 썩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면 영원히 행복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노력하고 예수 믿어 온 삶이 헛고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여러분들도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듯이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얼마든지 천국 만들기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습니다. 야곱처럼 우리도 행복을 만들어갑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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