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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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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845회 작성일 08-02-20 01:17

본문

아마 오늘 본문 말씀에 관한 설교나 이야기를 안 들어 보신 분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본문 기사는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도하신 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던 바로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 뒤에 일어난 또 하나의 신비한 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저물녘에 제자들을 배에 태워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게 하시고 자신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났을 때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강풍이 몰아 닥쳤고 밤은 날 새기 직전 가장 어두운 사경(四更)이어서 그야말로 천지를 분간 할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같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설상가상으로 희끄무레하게 사람이 물위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무섭고 놀랐겠습니까? 아마 오금이 절여서 넋을 잃었을 것입니다. 어떤 제자는 유령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도 빨리 제 정신 차린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얼떨결에 “주여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하고 애처롭게 하소연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라” 하시자 베드로는 바다인지 땅인지 분간도 않고 우선 전복될 것 같은 배안에 있는 것이 무서워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한참 걷다보니 자신이 바람에 출렁이는 파도 위를 걷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라 무서워하자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30절)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고 몹시 아쉬워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풍랑에 밀려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위경속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엇을 원하셨습니까?  큰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큰 믿음을 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기는 믿되 적은 믿음, 의심하는 믿음은 인생의 풍랑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강풍이 불 줄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로 나가게 하셨던 것은 큰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한 시험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기독교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선 중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을 갖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고 했습니다. 믿기는 믿되 확실히 믿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슬슬 눈치나 보고 하나님이 나를 좋아 하실까 안 하실까? 진짜 구원해 주실까? 기도하면 응답해 주실까? 진짜 축복해 주실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속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수룩하실까요? 그 정도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를 창조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은 겨우 우리 앞에서 쇼를 하셨단 말입니까? 나의 한 생명을 천하보다도 더 귀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을 요리 저리 달아보는 그 정도 믿음을 하나님께서 어찌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위경에 처했을 때 급히 물위로 걸어오시어 구원해 주려는 예수님이 앞에 계신 것을 보면서도 의심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고 심히 안타까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을 사랑하고, 교회 걱정으로 애통하는 목회자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려 주지 않고 하찮은 문제로 찌국짜국 하는 것을 볼 때 너희의 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겨우 그 정도냐는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게 좋던, 못마땅하던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서 온갖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은 교역자의 심중을 헤아리고 좀 참아주면 안 되겠습니까? 꼭 그 교역자가 보는 앞에서 큰 소리 내며 싸우는 꼴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얼마나 희생했고 교회를 사랑하신 것 누가 모르겠습니까? 부모가 자식들 성질 몰라서 큰 아이들 보고만 나무라시고 때리는 것입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고전2:14) 아직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목회자들의 깊은 속을 다 모릅니다. 마음 상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위로하여 주고 싶어도 멀리 내다보며 말 한마디 못하고 참아야 할 때가 있고, 본의 아니게 야단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금방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혼자서 탄식하셨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되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적은 자가 되시지 말고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 속에서 사시면서 창조주를 의심하십니까? 그만큼 성경에서 배웠고 예배 드리셨으면서 아직도 예수님 사랑을 모르십니까? 저하고 수십 년을 사셨으면서도 아직도 목회자의 마음을 모르십니까? 내가 섭섭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을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은 운전 기술만 봅니다. 영어 통역시험은 영어실력만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는 믿음만 보시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허물과 죄는 보시지 않습니다. 돈도, 학벌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중풍병자들 고쳐 주실 때도 저희의 돈을 보고, 학벌을 보고 고쳐주셨습니까? 저희의 믿음을 보고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막2:5) 왜 예수님은 나사렛에서만은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곳은 예수님이 자랐고 30살까지 생활하셨던 고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그곳에서만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교회에서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똑같은 직분을 받았지만 왜 어떤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습니까? 그들속에 있는 믿음의 깊이 때문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요소입니다. 바로 된 믿음만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놓고 보면 그 사람을 압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어떤 때문 오해 하다가도 시간이 가면 그 오해 때문에 더 깊은 진실을 알게 되고 깜짝 사랑하고 좋아했다가도 얼마 안 가서 원수야 악수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끝까지 잘 믿읍시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믿음이 적은 자라고 책망 받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러면 어떤 믿음이 큰 믿음입니까?
(1) 예수님을 주(主)로 모신 믿음입니다.
주로 모신다는 말은 나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고집과 아집, 교만은 다 버리고, 자존심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는 몇 번이나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까? 28절에서 주여! 주시어든 이라고 두 번 불렀고 30절에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세 번 불렀습니다. 미국 신시네티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와렌 베니스 박사는 미국 최고의 기업인 500명을 선택하여 그 중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 경영자 90명을 골라 3년간 직접 방문하며 사례를 알아보았답니다. 그 결과 얻은 공통점은 첫째 큰 비전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둘째 찰거머리 같은 끈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이었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경영하였고, 주님의 뜻대로 돈을 썼습니다. 또 주님을 사랑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으로 모신 믿음이 큰 믿음인 줄 믿습니다.
(2)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는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두 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한 가지는 물위로 걷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물에 빠졌을 때 구원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다 응답 받았습니다. 나머지 11제자들은 기도가 없었기에 응답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기도할 줄 알고, 응답받을 줄 아는 믿음이 큰 믿음인 줄 믿습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된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는 물위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오라” 하시는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바다에 뛰어 들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파도 속을 유유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곧 자기의식으로 돌아와 “내가 어떻게 물위를 걷고 있지!” 라는 의심을 했을 때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 “주여! 나를 구원해 주소서” 재차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 손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붙잡아 건져 주셨습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믿음의 초보단계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믿어져서 내가 구원해 달라고 손을 내밀 때가 중간단계요,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아 주실 때가 참 믿음의 단계입니다. 곧 예수님이 나를 인정해 주고 믿어주는 단계입니다. 그 예수님 손에 붙잡힐 때 나의 의지는 무시됩니다. 나의 아집과 교만은 아무 소용없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예수님께 붙잡힌 후 자기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겼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붙잡히면 나의 학식과 물질과 재주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사용되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작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에게 손을 내미는 단계에서 이제 예수님께 붙잡힌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곧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오직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고 순종하는 신앙의 단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붙잡힐 때 주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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