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건축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와 백성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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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막을 세우기에 앞서 또 다시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1-3절) 곧 성막 건축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규칙적으로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막공사에 바쁜 나머지 하나님과 교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지시키신 것입니다. 4-29절에 보면 드디어 성막 건축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이 총동원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원들이 어떻게 준비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지시는 맹목적인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봉사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말(4-19절)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감동되어 자원하여 예물과 재료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20-29절)
1. 재차 당부하신 안식일 준수 문제(1-3절)
2절 부분은 31:15절의 반복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 준수 문제를 재차 당부하셨을까요? 성막공사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과의 교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일은 먼저 예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어떠한 좋은 일이라도 예배드리는 일보다 우선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12:5)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어떤 일이던지 멈추고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단을 청결히 하고, 크게 소리 내어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설교하는 것은 분명히 일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설교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대하여 율법에서는 죄가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촛불 켜는 일까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방인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고 자기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킨다고 합법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웃긴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3절 참조) 그러나 오늘날도 우리 크리스챤들이 재고(再考) 해 볼 교훈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예배드리는데 필요하지 않는 육체적인 수고나 주일에 계속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일은 유대인들에게는 결단코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찬양하는 일은 옳은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빠져가면서 찬양 연습을 한다거나, 종교 신문 사설을 쓴다고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만든다거나 종교행사와 관련된 어떤 일도 중요성이 어떻든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성결입니다. 주일은 지키는데 대한 우리들이 종사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세속적인 성격을 지닐 때 종교와 관련되어 진행되더라도, 예배의 기본자세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라고 까지 단호하게 선언하신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오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들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출31:12-18절 참고)
2. 성막 건축을 위한 협력(4-29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범하지 말 것을 경고한 모세는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위하여 가져 오도록 명하신 예물에 대하여 낱낱이 열거하고 (4-9절) 그들에게 성막 건축에 요구되는바 봉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10-19절) (출25:3-7절 참조,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순서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 그러나 분명한 단서가 전제(前提)했으니 그것은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5절)라고 했습니다. 32장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기 위하여 금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짓기 위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가져왔으니 자만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주님을 섬기는데 바치려는 의지가 생겼고, 주의 성막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려는 마음이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은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쫒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도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벧전5:2) 즐거운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출35:29절) 하나님의 일은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기쁨과 보람으로서 물질을 부담할 것이요. (26절) 남의 명령이나 체면에 못 이겨 억지로 따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느니라”(고후9:7)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영광된 처소를 짓기 위하여 금, 은, 놋,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5-6절)등을 요구받고 기꺼이 봉헌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가져왔고, 어떤 이는 몸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예물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능히 쓰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으며 백성들도 하나님의 요구가 정당한 것으로 여겨 각기 예물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을 성도는 따지고 보면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변화 받고, 재힘을 얻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들이 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물을 통해 얻은 교훈을 다시 한번 정리 해 봅시다.
①자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21절)
②능력에 따라 드렸습니다.(23-29절)
족장을 값진 예물을 바쳤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은과 놋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로 그것도 바칠 수 없는 사람은 몸으로 봉사했습니다.(25,26절)
③전반적이었습니다.
모든 계승이 헌납했습니다. 족장, 백성, 젊은이, 늙은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④넘쳐흘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열심이었던 만큼 그들의 헌물 또한 풍성했으니 마지막에 가서는 예물을 중지할 정도였습니다.(36:5-7절) 마음으로 원하여 바치면 이처럼 풍성해 집니다.
⑤하나님의 일을 언제나 그의 백성들이 자의로 바치는 예물도 넉넉히 충당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36:7절)
하나님은 해 낼 수 있도록 이미 채워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⑥헌납은 경배의 행위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왔으며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2절)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24절) 이것이 종교적인 예물을 드리는 참 정신입니다. 여기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겸손하게 바칠 때에 하나님은 기쁨으로 받으십니다.(과부의 동전 두닢:막12:41-44절 참조)
3. 성막을 건설한 일꾼들(30-35절)
하나님께서 명령한 성막을 건축하는 데는 유능한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이므로 정교하고 세밀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대로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있는 자라야 했습니다.
이에 합당한 일꾼은 누구입니까?
(1) 지명하여 부른 자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모든 인격적 요소를 잘 갖춘 자라야 하지만 특히 전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자라야 하며 그 일꾼에게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은 다양한 지식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그러한 장점까지 약용할 수 있습니다.
(2) 지혜가 있는 자라야 합니다.
지혜란(호마크) 사물의 외관(外觀)을 통해 본성을 파악하는 능력입니다.(시111:10절 참조)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31절) 했습니다. 성막을 건축하는 일은 공교한 일이므로 특별한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총명이 있는 자라야 합니다.
총명은 사물의 외관에서 차이점을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총명은 금이나 은을 식별하고 화학적 성분을 측정하여 하나님이 지시한 일을 수행해 나가는데 필요한 자질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작품이 내포되어 있는 법칙과 과학적 사실을 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을 짓는데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하고, 성령을 받아 지혜와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케 하셨다고 했습니다.(30-31절)
그런데 이러한 자원들이 어떻게 준비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지시는 맹목적인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봉사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말(4-19절)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감동되어 자원하여 예물과 재료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20-29절)
1. 재차 당부하신 안식일 준수 문제(1-3절)
2절 부분은 31:15절의 반복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 준수 문제를 재차 당부하셨을까요? 성막공사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과의 교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일은 먼저 예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어떠한 좋은 일이라도 예배드리는 일보다 우선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12:5)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어떤 일이던지 멈추고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단을 청결히 하고, 크게 소리 내어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설교하는 것은 분명히 일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설교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대하여 율법에서는 죄가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촛불 켜는 일까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방인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고 자기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킨다고 합법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웃긴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3절 참조) 그러나 오늘날도 우리 크리스챤들이 재고(再考) 해 볼 교훈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예배드리는데 필요하지 않는 육체적인 수고나 주일에 계속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일은 유대인들에게는 결단코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찬양하는 일은 옳은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빠져가면서 찬양 연습을 한다거나, 종교 신문 사설을 쓴다고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만든다거나 종교행사와 관련된 어떤 일도 중요성이 어떻든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성결입니다. 주일은 지키는데 대한 우리들이 종사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세속적인 성격을 지닐 때 종교와 관련되어 진행되더라도, 예배의 기본자세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라고 까지 단호하게 선언하신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오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들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출31:12-18절 참고)
2. 성막 건축을 위한 협력(4-29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범하지 말 것을 경고한 모세는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위하여 가져 오도록 명하신 예물에 대하여 낱낱이 열거하고 (4-9절) 그들에게 성막 건축에 요구되는바 봉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10-19절) (출25:3-7절 참조,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순서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 그러나 분명한 단서가 전제(前提)했으니 그것은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5절)라고 했습니다. 32장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기 위하여 금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짓기 위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가져왔으니 자만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주님을 섬기는데 바치려는 의지가 생겼고, 주의 성막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려는 마음이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은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쫒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도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벧전5:2) 즐거운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출35:29절) 하나님의 일은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기쁨과 보람으로서 물질을 부담할 것이요. (26절) 남의 명령이나 체면에 못 이겨 억지로 따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느니라”(고후9:7)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영광된 처소를 짓기 위하여 금, 은, 놋,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5-6절)등을 요구받고 기꺼이 봉헌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가져왔고, 어떤 이는 몸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예물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능히 쓰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으며 백성들도 하나님의 요구가 정당한 것으로 여겨 각기 예물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을 성도는 따지고 보면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변화 받고, 재힘을 얻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들이 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물을 통해 얻은 교훈을 다시 한번 정리 해 봅시다.
①자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21절)
②능력에 따라 드렸습니다.(23-29절)
족장을 값진 예물을 바쳤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은과 놋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로 그것도 바칠 수 없는 사람은 몸으로 봉사했습니다.(25,26절)
③전반적이었습니다.
모든 계승이 헌납했습니다. 족장, 백성, 젊은이, 늙은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④넘쳐흘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열심이었던 만큼 그들의 헌물 또한 풍성했으니 마지막에 가서는 예물을 중지할 정도였습니다.(36:5-7절) 마음으로 원하여 바치면 이처럼 풍성해 집니다.
⑤하나님의 일을 언제나 그의 백성들이 자의로 바치는 예물도 넉넉히 충당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36:7절)
하나님은 해 낼 수 있도록 이미 채워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⑥헌납은 경배의 행위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왔으며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2절)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24절) 이것이 종교적인 예물을 드리는 참 정신입니다. 여기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겸손하게 바칠 때에 하나님은 기쁨으로 받으십니다.(과부의 동전 두닢:막12:41-44절 참조)
3. 성막을 건설한 일꾼들(30-35절)
하나님께서 명령한 성막을 건축하는 데는 유능한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이므로 정교하고 세밀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대로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있는 자라야 했습니다.
이에 합당한 일꾼은 누구입니까?
(1) 지명하여 부른 자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모든 인격적 요소를 잘 갖춘 자라야 하지만 특히 전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자라야 하며 그 일꾼에게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은 다양한 지식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그러한 장점까지 약용할 수 있습니다.
(2) 지혜가 있는 자라야 합니다.
지혜란(호마크) 사물의 외관(外觀)을 통해 본성을 파악하는 능력입니다.(시111:10절 참조)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31절) 했습니다. 성막을 건축하는 일은 공교한 일이므로 특별한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총명이 있는 자라야 합니다.
총명은 사물의 외관에서 차이점을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총명은 금이나 은을 식별하고 화학적 성분을 측정하여 하나님이 지시한 일을 수행해 나가는데 필요한 자질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작품이 내포되어 있는 법칙과 과학적 사실을 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을 짓는데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하고, 성령을 받아 지혜와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케 하셨다고 했습니다.(30-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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