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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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던 둘이 살던 내가 사는 집은 행복의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더욱이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은 낙원이어야 하고 행복의 안식처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기쁨이 생산되고, 소망이 넘쳐나야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말씀은 행복의 모든 근원은 무엇에 있다고 했습니까?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적어도 행복한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1.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가정입니다.
본문3:1절 이하에 보면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행실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며 외모로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진실로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머리를 꾸미고 금붙이로 치장을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도 좋지만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예로 들어 지적까지 해 주었습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순종했으니 모든 아내들이 선을 행하며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과연 사라를 본받은 그의 딸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복된 가정이 되고 길이길이 자자손손 그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남편의 흠집만 본다면 어찌 순종하겠습니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고 까불 되는 원숭이도 귀여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살려고 허둥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썩 좋은 남편 노릇은 못하지만 그 나마라도 내 곁에 있어 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집만 문제가 있고 근심 걱정거리가 많은 것만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내 집이나 남의 집이나 문제는 다 있고 그 집 나름대로 근심거리와 걱정거리는 다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지그시 참고 극복해 나갈 때 스릴이 있고, 인생사는 맛이 있으면 서로가 협력하고 이겨 나갈 때 고운 정 미운정이 들면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시리아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사냥 갔던 아버지가 마침 나타난 들소를 쫓아가다 사냥물을 놓친 후 아들이 서 있는 곳에 돌아와 보니 아들은 사라지고 핏자국이 점점이 나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핏자국을 따라 골짜기로 깊이 들어가 보니 마녀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활을 당겨 마녀를 쓰러뜨린 사냥꾼이 굴속에서 아들을 찾긴 했으나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아들의 시체를 마녀의 옷에 싸서 집으로 돌아와 기다리던 아내에게 “오늘은 귀한 짐승을 잡아 왔으니 근심 걱정이 전혀 없었던 집에 가서 냄비를 빌려와 요리를 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근심 걱정이 한 번도 없었던 집을 찾다가 빈손으로 돌아와 “근심 걱정이 없었던 집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냥꾼은 “그 모든 사람이 겪었던 괴로움을 오늘은 우리가 겪을 차례요” 하며 아들의 시체를 내려놓았답니다. 이 전설은 우리들의 인생살이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근심도, 걱정도, 눈물도 없는 개인이나 가정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 때문에, 어떤 사람은 너무 빈곤해서 고통을 받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사람은 돈이 화근이 되어 걱정 근심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부부 사이가 원만치 않아 허다한 비극이 발생되고 있는 것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그밖에도 직장문제, 이성문제, 친척간의 문제 등 인간생활에는 걱정의 씨, 눈물의 씨앗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를 긍정적인 면에서 신앙으로 극복해 나가는 생활을 감사하는 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불신앙의 생활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면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배요, 감사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요, 감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찬송이요, 감사를 생활로 증거 해 보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 같은 것입니다. 정신적 자세가 감사를 향해 있는가? 아니면 불평불만을 향해 있는가? 하는 철학의 방향문제 인 것입니다. 호화로운 왕궁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면서도 분노에 차 있던 헤롯왕 보다 캄캄한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훨씬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로 감사하며 삽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나 혼자만은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며 서로 사랑하고 고마움을 느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의 손을 잡읍시다. 성탄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와 화해하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 위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그 자리에 가장 천민이 목자들과 가장 존경받던 박사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탄은 그렇게 하늘과 땅이, 하나님과 죄인들이, 서로 극과 극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도성인 신인, incarnation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해를 위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직접 오신 사건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원수라도 생각 해 보면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기에 자극이 생기고, 자신을 살펴보며 내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아내와 남편이 서로 감사한 줄 모르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감사할 줄 모르면 그 집은 모래로 지어진 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과 가족간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가정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가정이나 문제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서로 협력하여 극복해 나갈 때 행복의 금자탑이 세워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남편이 잘 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함께 봉독해 봅시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또 잠언서 19:14절에 보면 “집의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아내들이 아무리 큰소리 치고 바가지를 긁어도 잘 살아보자는 호소요, 남편을 사랑하는 표현이니 연약한 그릇처럼 보호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릇은 잘못하면 깨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살살 다루고 보호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기운을 주셨는데 알력으로 누르려 하면 착각입니다. 또 그 기운을 술 마시고 헛된 쾌락을 즐기는데 잘못 사용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부부가 사용하는 용어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아내는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 것처럼 “우리 집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피차 소유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부부를 서로 “my better half"라고 합니다. “나보다 나은 반쪽”이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흐뭇한 용어입니까? 미국 45대 하원 의장을 지낸 John Mekomeak씨는 그렇게 바쁜 정치 생활 속에서도 41년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시간은 꼭 부인과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낮에 근무 하면서도 저녁에 집에 가서 아내와 이야기 할 화제를 잊지 않도록 쪽지에 메모를 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자기 할 나름이다”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사랑받고 싶습니까? 아내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자기가 그만큼 더 아내에게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가정이 화목하고 후에 자녀들에게 효도도 받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들에게 사랑받고 싶습니까? 있을 때 잘 하십시오. 사랑은 정성입니다.
순종입니다. 항상 젊게 살 수만 없습니다. 젊어서 서로 잘 해야 늙어서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밉다는 생각은 추호도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최고의 선물인 서로를 더욱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엡5:28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아내를 사랑하되 자기 몸 같이 할 찌니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은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랑의 원리는 이웃 간에나 교우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나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그만큼 높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격언에 “좋은 남편은 귀머거리가 되어야 하고, 좋은 아내는 장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거기에 소극적인 반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곧 다른 사람에게 반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눈으로 보고 일일이 시비해서는 안 됩니다. 장님들은 보지 못하니까 달라고는 못하고 줄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줄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더 좋은 것을 또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삽시다. 하나님도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을 바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행복한 가정은 생명을 건 부모의 사랑이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오직 주기만 하고 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스럽듯이 부모의 사랑은 거룩한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의 몸은 밥을 먹고 자랐지만 정신과 인격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죄수라도 “어머님의 은혜”를 노래할 때 모두 다 훌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약과 같이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의 정말 좋은 천사이십니다. 자식에게 언제나 최고의 점수를 주는 분은 부모입니다. 언제나 그분들은 나의 편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다소 인기가 없다 손치더라도 부모님만은 우리 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가정은 아직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모님들을 안 모시고 살거나 돌아가셨더라도 그 부모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행복은 꼭 물질이나 세상의 지위가 척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이 있는 가정, 부부가 서로 섬기는 가정,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가정인 것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가정입니다.
본문3:1절 이하에 보면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행실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며 외모로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진실로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머리를 꾸미고 금붙이로 치장을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도 좋지만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예로 들어 지적까지 해 주었습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순종했으니 모든 아내들이 선을 행하며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과연 사라를 본받은 그의 딸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복된 가정이 되고 길이길이 자자손손 그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남편의 흠집만 본다면 어찌 순종하겠습니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고 까불 되는 원숭이도 귀여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살려고 허둥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썩 좋은 남편 노릇은 못하지만 그 나마라도 내 곁에 있어 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집만 문제가 있고 근심 걱정거리가 많은 것만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내 집이나 남의 집이나 문제는 다 있고 그 집 나름대로 근심거리와 걱정거리는 다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지그시 참고 극복해 나갈 때 스릴이 있고, 인생사는 맛이 있으면 서로가 협력하고 이겨 나갈 때 고운 정 미운정이 들면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시리아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사냥 갔던 아버지가 마침 나타난 들소를 쫓아가다 사냥물을 놓친 후 아들이 서 있는 곳에 돌아와 보니 아들은 사라지고 핏자국이 점점이 나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핏자국을 따라 골짜기로 깊이 들어가 보니 마녀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활을 당겨 마녀를 쓰러뜨린 사냥꾼이 굴속에서 아들을 찾긴 했으나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아들의 시체를 마녀의 옷에 싸서 집으로 돌아와 기다리던 아내에게 “오늘은 귀한 짐승을 잡아 왔으니 근심 걱정이 전혀 없었던 집에 가서 냄비를 빌려와 요리를 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근심 걱정이 한 번도 없었던 집을 찾다가 빈손으로 돌아와 “근심 걱정이 없었던 집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냥꾼은 “그 모든 사람이 겪었던 괴로움을 오늘은 우리가 겪을 차례요” 하며 아들의 시체를 내려놓았답니다. 이 전설은 우리들의 인생살이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근심도, 걱정도, 눈물도 없는 개인이나 가정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 때문에, 어떤 사람은 너무 빈곤해서 고통을 받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사람은 돈이 화근이 되어 걱정 근심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부부 사이가 원만치 않아 허다한 비극이 발생되고 있는 것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그밖에도 직장문제, 이성문제, 친척간의 문제 등 인간생활에는 걱정의 씨, 눈물의 씨앗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를 긍정적인 면에서 신앙으로 극복해 나가는 생활을 감사하는 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불신앙의 생활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면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배요, 감사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요, 감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찬송이요, 감사를 생활로 증거 해 보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 같은 것입니다. 정신적 자세가 감사를 향해 있는가? 아니면 불평불만을 향해 있는가? 하는 철학의 방향문제 인 것입니다. 호화로운 왕궁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면서도 분노에 차 있던 헤롯왕 보다 캄캄한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훨씬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로 감사하며 삽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나 혼자만은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며 서로 사랑하고 고마움을 느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의 손을 잡읍시다. 성탄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와 화해하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 위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그 자리에 가장 천민이 목자들과 가장 존경받던 박사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탄은 그렇게 하늘과 땅이, 하나님과 죄인들이, 서로 극과 극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도성인 신인, incarnation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해를 위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직접 오신 사건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원수라도 생각 해 보면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기에 자극이 생기고, 자신을 살펴보며 내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아내와 남편이 서로 감사한 줄 모르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감사할 줄 모르면 그 집은 모래로 지어진 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과 가족간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가정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가정이나 문제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서로 협력하여 극복해 나갈 때 행복의 금자탑이 세워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남편이 잘 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함께 봉독해 봅시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또 잠언서 19:14절에 보면 “집의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아내들이 아무리 큰소리 치고 바가지를 긁어도 잘 살아보자는 호소요, 남편을 사랑하는 표현이니 연약한 그릇처럼 보호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릇은 잘못하면 깨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살살 다루고 보호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기운을 주셨는데 알력으로 누르려 하면 착각입니다. 또 그 기운을 술 마시고 헛된 쾌락을 즐기는데 잘못 사용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부부가 사용하는 용어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아내는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 것처럼 “우리 집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피차 소유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부부를 서로 “my better half"라고 합니다. “나보다 나은 반쪽”이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흐뭇한 용어입니까? 미국 45대 하원 의장을 지낸 John Mekomeak씨는 그렇게 바쁜 정치 생활 속에서도 41년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시간은 꼭 부인과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낮에 근무 하면서도 저녁에 집에 가서 아내와 이야기 할 화제를 잊지 않도록 쪽지에 메모를 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자기 할 나름이다”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사랑받고 싶습니까? 아내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자기가 그만큼 더 아내에게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가정이 화목하고 후에 자녀들에게 효도도 받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들에게 사랑받고 싶습니까? 있을 때 잘 하십시오. 사랑은 정성입니다.
순종입니다. 항상 젊게 살 수만 없습니다. 젊어서 서로 잘 해야 늙어서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밉다는 생각은 추호도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최고의 선물인 서로를 더욱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엡5:28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아내를 사랑하되 자기 몸 같이 할 찌니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은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랑의 원리는 이웃 간에나 교우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나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그만큼 높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격언에 “좋은 남편은 귀머거리가 되어야 하고, 좋은 아내는 장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거기에 소극적인 반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곧 다른 사람에게 반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눈으로 보고 일일이 시비해서는 안 됩니다. 장님들은 보지 못하니까 달라고는 못하고 줄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줄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더 좋은 것을 또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삽시다. 하나님도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을 바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행복한 가정은 생명을 건 부모의 사랑이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오직 주기만 하고 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스럽듯이 부모의 사랑은 거룩한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의 몸은 밥을 먹고 자랐지만 정신과 인격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죄수라도 “어머님의 은혜”를 노래할 때 모두 다 훌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약과 같이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의 정말 좋은 천사이십니다. 자식에게 언제나 최고의 점수를 주는 분은 부모입니다. 언제나 그분들은 나의 편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다소 인기가 없다 손치더라도 부모님만은 우리 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가정은 아직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모님들을 안 모시고 살거나 돌아가셨더라도 그 부모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행복은 꼭 물질이나 세상의 지위가 척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이 있는 가정, 부부가 서로 섬기는 가정,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가정인 것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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