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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허우적거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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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3,149회 작성일 09-03-14 13:59

본문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과 신성뿐 아니라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실패한 경험 한 토막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욱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위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사랑과 신성(22-25절)
바로 조금 전에는 빈들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신 후(마14:14절) 어린아이가 가져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오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나 거두었던 기적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뒤에 남으셔서 무리들을 사고 없이 돌아가도록 돌보아주신 후 날이 저물자 혼자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주님을 따르는 한 생명이라도 육신의 배고픈 것까지도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으로 고통 하는 사람의 아픔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셨기에 말끔히 치료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가도록 끝까지 남으셔서 뒷정리를 해 주셨던 자상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제자들이 어두운 밤 풍랑 속에서 위경에 처했을 때 급히 바다위로 걸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사람이시면서 자연 만물을 지배하시는 성자 하나님 이였음을 증명해 보여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 예수님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마28:20)고 약속하신대로 성령님으로 오셔서 지금 이곳에서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생활도 철저하게 돌보아 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순종할 때 일어난 기적
예수님과 헤어져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에게 돌발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돌풍이 불어 파도가 점점 흉용해져서 직업적인 뱃사공들이 네 명이나 있었으나 배를 가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둠속에 한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은 풍랑이 심한 물결위로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유령이 아니고서야 어찌 사람이 물위로 걸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누군가가 놀라 유령이라고 소리 지르자 예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저하지 않고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오라고 응답하셨고 성미 급한 베드로는 즉시 물속으로 뛰어들어 파도 위를 철벅철벅 걸어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체중이  몇 kg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체격이 작았다고 해도 사람이 잔잔한 물결도 아니고 거친 풍랑 위를 그렇게 걸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만큼 위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책임을 져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고 하셨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걸어오는 베드로를 물에 빠지지 않도록 책임져 주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행했던 이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혼인 잔치 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때도 심부름 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연회장에게 그물을 가져다주라고 지시하시자 그대로 의심 없이 순종했을 때 양질의 포도주로 변한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순종할 때 일어났고, 소경도, 문둥병자도 순종할 때 고침 받았습니다.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이유와 조건 없이 순종할 때 약속하신 축복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무조건 강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의 경험과 이성과 지식을 기준삼지 말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전폭적으로 그에게 맡기고 약속을 믿으라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뜻을 받아드리는 것이 곧 순종이고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절대 권위성을 인정하는데 거기에도 두 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신념적 믿음과 신앙적 믿음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가능성이 있을 때 믿는 믿음은 신념적 믿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렇게 될 것을 전폭적으로 믿는 믿음이 신앙적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적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베드로가 “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겁 없이 풍랑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의 믿음대로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갖되 신념적 믿음이 아닌 신앙적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으니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적 믿음으로 기적을 산출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므로 맹물이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했듯이 여러분의 인생이 예수 믿고 그렇게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병마도 고침 받고 풍랑 같은 문제도 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의심한 베드로(30절)
그런데 물결위로 잘 걸어가던 베드로가 왜 갑자기 바다 속에 빠져서 살려 달라고 소리쳤습니까? 그것은 발아래를 내려다보았기 때문입니다. 파도를 보자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왈칵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는 물위로 의젓이 걷다가 사태가 갑자기 전환되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시며 베드로의 손을 잡아 함께 배에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십시다. 믿기는 믿어도 전폭적으로 믿지 않으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물을 내려다보고 두려워한 베드로는 신앙적 믿음이 신념적 믿음으로 변할 때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같은 인간이 물위를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상식, 자기 경험, 자기 이성주의에 빠졌을 때 말씀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마시고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세 가지 인생 경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고 걸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다 위는 걸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발을 옮겨 놓을 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베드로가 물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물에 빠진 원인 두 가지를 말해주고 있는데 하나는 밑을 내려다보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물을 보고 무서워했다는 정신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베드로의 경험은 물속에서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다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구원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서양 격언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발을 멈춘 순간 물속에 빠졌다는 성경의 교훈 그대로입니다. 자전거의 바퀴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는 것처럼 개인의 신앙생활도 굴러가지 않으면 조만간 쓰러지고 교회도 움직이지 않으면 물에 빠집니다. 정철 씨의 시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발을 옮겨 산을 올라가야 합니다. 실패를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부득이 실패한다고 해도 절반은 산을 오른 경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이야기는 비록 물위일망정 발을 계속해서 옮기라는 교훈입니다. 요즈음 다들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호들갑을 떠니까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듭니다. 연일 매스컴에서 어렵고 힘들며 미래가 불안하다는 보도를 하니까 생활인들의 체감 온도가 떨어져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망하려는 경향성이 보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마저 그러한 체면에 빠지면 큰일입니다. 현상유지와 자기 보존이 좋아보여도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과 사회를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 그대로 가져온 주인이 그 종에게 무엇이라고 책망했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호되게 나무랐으며 바깥 어두운데로 쫓아 내 버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오랫동안 걷지 않으면 앉은뱅이가 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기능이 마비됩니다. 사실상 현상유지는 퇴보를 뜻하는 것입니다. 선전비가 아까워서 경쟁에 지는 사업가, 화장품 값을 아끼다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 재료를 아끼다가 망해버리는 음식점이나 공장들, 수많은 인색한 실패를 우리는 봅니다. 과감한 투자 없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듯이 과감하게 자기를 바다에 던지는 정신적 투자 없이 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뛰어내림입니다. 신앙은 달려가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습니다. 부패는 언제나 자기만족과 정지 상태에서 비롯되며 새로운 역사의 창조는 움직임의 소산입니다. “현명한 인간”을 정의한다면 똑같은 실패를 두 번 반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의 실패를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으로 삼고 예수님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자입니다. 베드로의 실패의 경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물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계속 발을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휴식이 있으면 안 되고 늘 새롭게 움직여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물속에 빠지면서 십자가를 붙잡는 그림을 보신 적이 있습니다. 박재봉 목사님이 그린 그림입니다. 인생을 올라갈 때보다도 내려갈 때가 중요합니다. 문제가 잘 풀릴 때보다도 어려울 때가 중요합니다. 침몰될 때 혼자 가라앉지 말고 그리스도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고민이 있을 때가 은혜 받아야 할 때입니다. 몸이 아플 때, 가정에 문제가 있을 때, 고독할 때, 우울할 때, 걱정이 있을 때, 무의미와 허탈 속에 있을 때 결코 혼자서 허우적거리지 맙시다. 사랑의 예수님은 많은 무리 중 한 사람 한 사람 배고픈 것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돌아가는 것까지 돌보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 가운데 고통당하는 것도 다 아시고 찾아오셨습니다.
그 풍랑을 잔잔케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눈동자 같이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살피십니다. 혼자서 허우적거리지 마세요. 물에 빠진 베드로가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했듯이 도움을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자 풍랑과 바람이 잔잔해 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가정 속에 그 예수님을 모시기 사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신념적 신앙에 그치지 마시고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의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은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에게는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밤 사경에 몰아닥친 돌풍이 무섭고 절망적이었지만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그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배에 있던 제자들이 그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바다와 바람도 다스리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으십니까?
어렵습니까? 힘드십니까?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그렇게 사랑하신 그 예수님에게 손을 내 미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마시고 베드로처럼 그 예수님의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밤에 풍랑만나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그 예수님께서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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