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가 된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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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1절에 보면 “야곱이 들은 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야곱은 자칭 부자가 아니라 분명 외삼촌 라반의 아들들이 시기 할 정도로 보통 부자가 아닌 큰 부자가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여기 부자 되기 싫은 분 계십니까? 말로는 돈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누구나 속으로는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나도 기왕이면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심방하다가 궁색하게 사는 교인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선교하는데도 넉넉히 도와주고 개척교회 목사님들 보면 다 돕고 싶습니다. 죽게 노력하는 사람들 사업비도 밀어주고 싶어요. 어려운 신학교에도 후원하고 싶고, 교인들 단합을 위하여 회식도 자주하고 싶습니다. 영성 훈련시키는데도 물질 때문에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도 많이 써서 출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돈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쳐도 돈이 없으면 별 수 없습니다. 흔히 돈을 잘못 버는 사람들이 자기는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말하면서 성경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절)고 했지 않느냐고 돈 없는 것이 오히려 믿음이 있고, 축복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잘라 먹으면 안 됩니다. 한절이라도 끝까지 읽어 보세요.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절하). 이 말씀을 깊이 생각 해 보면 지나치게 돈을 탐(貪 )내지 말라는 것이지 돈이 많은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창1:28절 참조) 그 말씀은 관리도 잘하고 더불어 충분히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다고 꿀릴 것은 없지만, 벌어서 많이 모아 좋은데 쓰기 위하여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최상의 노력은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성도 풍성하고, 마음도 넉넉하며, 물질적으로도 충분히 누리고 베풀 수 있도록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왜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요셉 등에 관한 기록들을 해 두었을까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부자가 되어 축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야곱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를 생각 해 봅시다. 기왕이면 물질적으로 부요해지는 비결을 배워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나아가서 물질적으로도 선한 사업을 많이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야곱은 축복 받을 조건이 나빴던 사람입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에서보다 먼저 나오려고 용을 써 보았지만 에서의 뒷발에 채이면서 겨우 쌍둥이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기에 장자의 축복 권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의 축복 권은 대단했습니다.
① 그 족속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창43:33절)
② 부모의 유산 중 두 몫을 받게 됩니다.(신21:15-17절)
③ 왕위 계승권이 있습니다.(대하21:3절)
이와 같이 장자 권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 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장자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또 성격적으로는 형 에서는 건장하고 활달하고 익숙한 사냥꾼이었다고 했고, 야곱은 종용한 농사꾼으로 어머니 치마폭에 감싸여 살았던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서열로나 체격으로나 성격적으로 거부가 될 만한 외부적 조건이 여러모로 형 에서에 비교하면 상대가 못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조건이 아니라 끈질긴 집념과 믿음이 가져다주는 선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야곱은 끈질긴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운명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둘째로 나왔기에 장자 권을 포기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장자권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의 장자 권을 빼앗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포기 하지 않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기회를 노리는 사람만이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갔다가 심히 곤비하여 돌아왔을 때 야곱은 집에서 구수한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서는 배가 고파 헐떡거리며 야곱에게 팥죽을 먹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며 형의 장자의 직분을 내게 팔라고 흥정했고 에서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장자의 명분이 문제냐? 맹서 할테니 우선 팥죽부터 먹고 보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에서의 장자의 명분은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려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은 형제간에 팥죽 한 그릇 가지고 형의 장자 권을 욕심냈다는 것이 매우 야비한 사람 같습니다. 우리 동양 사상으로 보면 형이 배고플 때 동생의 입장에서 팥죽을 순순히 대접했어야 하나님이 야곱을 선하게 보고 복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문서보다도 입으로 나오는 양심의 약속을 더 중요시 합니다. 성경말씀은 자체가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절)고 예수님께서도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섣불리 말하거나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성질난다고 “예수 안 믿는다거나, 나는 지옥에 가도 좋다” 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좋은 말, 축복의 말,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에서처럼 자기의 축복 권을 경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구원받는 놀라운 은혜의 복을 돈 몇 푼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고귀한 직분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집사, 구역장, 인도자, 권사, 장로의 직분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 에서처럼 자기의 축복 권을 포기 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에돔의 후손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삽니까?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펑펑 포를 쏘아 되도 팔라스타인 사람들이 찍 소리도 못하고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을 뺏긴 자의 설움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끈질긴 집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겠다고 악착같이 덤벼드는 것은 나쁜 욕심이 아닙니다. 선한 일에 욕심과 집념이 있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런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득권마저 귀한 줄 모르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빼앗아 양도 해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받은 구원의 복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끈질긴 집념을 가지면 얼마든지 불리한 조건에서도 승리하고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절)고 촉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에서와 야곱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이야기는 곧 실패자와 성공자의 차이점을 의미합니다. 받은 복도 빼앗겨 버린 자와 불리한 조건에서도 축복을 쟁취 한 자의 차이점입니다.
(1) 에서는 자기가 받은 복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장자의 축복 권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기득권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큰 복을 팥죽 한 그릇보다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당장만 생각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우선 먹고 보자, 배부르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망정 놀고 보자 이와 같이 에서는 막가파 기질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지금 잘 해야 합니다. 빼앗긴 후에 에서는 얼마나 원통 해했습니까?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악심을 품어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더 큰 실패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실패자는 더 큰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패하면 마음이 좁아집니다. 잘 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설령 뜻대로 안된다고 하여 좁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성경은 충고하고 있습니다.
(2) 야곱은 기도하며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안 될 것도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앞에서도 누누이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에서와 판이하게 다른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영성의 차이입니다. 성경 어느 부분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에서가 기도했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야곱은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복할 줄 알았고, 악착같이 매달려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약복강가에서는 밤이 맞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환도뼈가 위골되었어도 날이 샐 때까지 응답해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창32:25절)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하나님과 레슬링 경기 같은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그런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야곱이었기에 벧엘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야곱이 누운 곳에 사닥다리를 걸쳐 놓으시고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또 야곱은 자기 일에 충실하고 뼈골 빠지게 노력한 사람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할 때도 그는 외삼촌의 집이요, 처가(妻家)가 되는 집이었지만 외삼촌의 양(羊)을 돌보다가 자기 과실로 양을 도적맞으면 남이 보든 안 보든 자기 양으로 물어 내 주었고, 외삼촌의 양한마리도 몰래 잡아먹은 일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창31:38-39절) 또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 했습니다.(창31:40절) 외삼촌이 자기 품값을 열 번이나 이랬다저랬다 바꾸고 속였지만 야곱은 묵묵히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끈질긴 집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또 그런 사람의 복을 보장해 주십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추격하여 재산을 빼앗아 가려고 했지만 창3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외삼촌 라반을 책망하시고 야곱을 지켜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이러한 기록을 생각하면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감(feeling)이 잡히실 것입니다. 누구나 야곱처럼 살면 야곱처럼 축복받고 거부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야곱은 축복 받을 조건이 나빴던 사람입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에서보다 먼저 나오려고 용을 써 보았지만 에서의 뒷발에 채이면서 겨우 쌍둥이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기에 장자의 축복 권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의 축복 권은 대단했습니다.
① 그 족속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창43:33절)
② 부모의 유산 중 두 몫을 받게 됩니다.(신21:15-17절)
③ 왕위 계승권이 있습니다.(대하21:3절)
이와 같이 장자 권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 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장자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또 성격적으로는 형 에서는 건장하고 활달하고 익숙한 사냥꾼이었다고 했고, 야곱은 종용한 농사꾼으로 어머니 치마폭에 감싸여 살았던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서열로나 체격으로나 성격적으로 거부가 될 만한 외부적 조건이 여러모로 형 에서에 비교하면 상대가 못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조건이 아니라 끈질긴 집념과 믿음이 가져다주는 선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야곱은 끈질긴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운명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둘째로 나왔기에 장자 권을 포기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장자권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의 장자 권을 빼앗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포기 하지 않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기회를 노리는 사람만이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갔다가 심히 곤비하여 돌아왔을 때 야곱은 집에서 구수한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서는 배가 고파 헐떡거리며 야곱에게 팥죽을 먹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며 형의 장자의 직분을 내게 팔라고 흥정했고 에서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장자의 명분이 문제냐? 맹서 할테니 우선 팥죽부터 먹고 보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에서의 장자의 명분은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려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은 형제간에 팥죽 한 그릇 가지고 형의 장자 권을 욕심냈다는 것이 매우 야비한 사람 같습니다. 우리 동양 사상으로 보면 형이 배고플 때 동생의 입장에서 팥죽을 순순히 대접했어야 하나님이 야곱을 선하게 보고 복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문서보다도 입으로 나오는 양심의 약속을 더 중요시 합니다. 성경말씀은 자체가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절)고 예수님께서도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섣불리 말하거나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성질난다고 “예수 안 믿는다거나, 나는 지옥에 가도 좋다” 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좋은 말, 축복의 말,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에서처럼 자기의 축복 권을 경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구원받는 놀라운 은혜의 복을 돈 몇 푼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고귀한 직분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집사, 구역장, 인도자, 권사, 장로의 직분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 에서처럼 자기의 축복 권을 포기 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에돔의 후손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삽니까?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펑펑 포를 쏘아 되도 팔라스타인 사람들이 찍 소리도 못하고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을 뺏긴 자의 설움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끈질긴 집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겠다고 악착같이 덤벼드는 것은 나쁜 욕심이 아닙니다. 선한 일에 욕심과 집념이 있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런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득권마저 귀한 줄 모르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빼앗아 양도 해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받은 구원의 복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끈질긴 집념을 가지면 얼마든지 불리한 조건에서도 승리하고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절)고 촉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에서와 야곱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이야기는 곧 실패자와 성공자의 차이점을 의미합니다. 받은 복도 빼앗겨 버린 자와 불리한 조건에서도 축복을 쟁취 한 자의 차이점입니다.
(1) 에서는 자기가 받은 복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장자의 축복 권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기득권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큰 복을 팥죽 한 그릇보다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당장만 생각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우선 먹고 보자, 배부르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망정 놀고 보자 이와 같이 에서는 막가파 기질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지금 잘 해야 합니다. 빼앗긴 후에 에서는 얼마나 원통 해했습니까?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악심을 품어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더 큰 실패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실패자는 더 큰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패하면 마음이 좁아집니다. 잘 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설령 뜻대로 안된다고 하여 좁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성경은 충고하고 있습니다.
(2) 야곱은 기도하며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안 될 것도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앞에서도 누누이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에서와 판이하게 다른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영성의 차이입니다. 성경 어느 부분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에서가 기도했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야곱은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복할 줄 알았고, 악착같이 매달려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약복강가에서는 밤이 맞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환도뼈가 위골되었어도 날이 샐 때까지 응답해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창32:25절)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하나님과 레슬링 경기 같은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그런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야곱이었기에 벧엘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야곱이 누운 곳에 사닥다리를 걸쳐 놓으시고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또 야곱은 자기 일에 충실하고 뼈골 빠지게 노력한 사람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할 때도 그는 외삼촌의 집이요, 처가(妻家)가 되는 집이었지만 외삼촌의 양(羊)을 돌보다가 자기 과실로 양을 도적맞으면 남이 보든 안 보든 자기 양으로 물어 내 주었고, 외삼촌의 양한마리도 몰래 잡아먹은 일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창31:38-39절) 또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 했습니다.(창31:40절) 외삼촌이 자기 품값을 열 번이나 이랬다저랬다 바꾸고 속였지만 야곱은 묵묵히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끈질긴 집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또 그런 사람의 복을 보장해 주십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추격하여 재산을 빼앗아 가려고 했지만 창3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외삼촌 라반을 책망하시고 야곱을 지켜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이러한 기록을 생각하면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감(feeling)이 잡히실 것입니다. 누구나 야곱처럼 살면 야곱처럼 축복받고 거부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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