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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이기는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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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579회 작성일 09-01-0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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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태양은 눈부시게 중천으로 솟아오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경제 한파가 밀려온다고 지례 겁을 먹고 움츠려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련(試鍊)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시련 앞에서 어떤 반응(反應)을 보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탤런트들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소동으로 가슴 쓰라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당할 때 자살까지는 안 해도 대부분 소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길 잃은 아이처럼 슬퍼하고, 구멍 뚫린 배처럼 침몰하고, 짝 잃은 기러기처럼 처량하게 웁니다.
그보다 더 잘못된 반응은 파괴적인 방향으로 빗나가기도 합니다. 원한을 품고 자기의 평생을 망치는 사람, 자기 성질에 못 이겨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 오기를 가지고 훼방꾼이 되는 사람, “두고 보자”는 공연한 경쟁심을 불태우다가 일생을 불평분자로 끝내는 사람 등 시련에 대한 잘못된 반응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오히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떠한 시련도 끝까지 잘 참아내면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성경 속에서 시련을 당했을 때 플러스 반응을 보임으로서 승리한 사례를 통하여 시련을 이기는 처방전을 얻어 봅니다.

1.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바쳐야 할 극단적 시련 앞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히11:17절)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하나뿐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죽여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후사가 될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후 그것도 25년 만에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애지중지 믿음직스럽게 키워놓았더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요구입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때 어떤 반응을 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항의도 할 수 있었고 이것만은 못하겠다고 거절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시련 앞에서 “믿음으로 아들을 바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바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반응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바칠 때 주어지고, 묻힐 때 싹이 트게 한다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이삭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 의로 여기시는 인정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후손은 오히려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불어났고 빛을 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것입니다. 미국의 부자 중에 J. C. penny씨가 있었습니다. 그의 체인 상점은 지금도 미국 전역에 2천여 곳이 넘게 있다고 합니다. 페니는 58세 때 당시 4천만 불 (한화 약 480억 상당)의 전 재산을 파산 당했는데 요즈음 가치로 따진다면 아마 한화로 5,000억 원 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엄청난 시련을 이기고 재기(再起)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돈 버는데만 정신이 없어 신앙생활에 소홀했었는데 실패한 후에야 깨닫고 신앙으로 시련을 이기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페니는 새  출발을 하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자기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하고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교회와 사회사업에 많은 돈을 희사했고, 플로리다 주에 은퇴 목사님들을 위하여 주택 100채를 지어 바치기도 했답니다. 페니는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주는 인생관”이 그를 시련에서 일어서게 하고 성공하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복의 근원입니다. 금년을 출발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고, 기뻐하며, 많은 것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거룩한 고민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빌1:6절) 우리는 시련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굴복당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받을 기회 인 것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합시다. 아브라함처럼 “빼앗기는 시련” 속에서 “바치는” 반응을 보입시다. 페니처럼 실패의 원인을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재도전해야 합니다. 축복과 행복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남에게 베풀므로 더 복을 받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곧 내가 행복해 진다는 사실을 행함으로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시련을 이기는 처방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결단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한 지도자는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몽매에도 그리워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모세가 남긴 일을 계승하여 가나안 정복을 성공시킨 지도자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노쇠하여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잡신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노 지도자의 눈에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심판이 훤히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새 땅에 이민(移民)하여 온 후 원주민인 아모리 사람들의 우상을 받아들임으로서 편리하게 살아가려는 실리적(實利的)인 현실주의를 택하였습니다.
나의 편리와 현재의 유익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버리고, 민족의 정통성도 헌신짝같이 내 던지는 인생관들이었습니다. 일부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그러한 잡신 신앙과 우상 신봉에  휩쓸려 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최후의 호소를 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신을 섬기든 너희 마음대로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나의 가족만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수24:15절)고 결단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큰 시련과 고통을 당했을 때 진리를 고수(固守)하는 확실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민족적 대 회개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어떤 종류의 시련을 만나든지 주님이 가르쳐준 삶의 원칙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진리위에 확고하게 설 때 해결 못할 문제가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은 어떠했습니까? 10남매의 자녀를 두고 동방에 제일가는 부자로 살았던 그가 갑자기 자녀들이 압사하여 한꺼번에 죽고, 재산을 모두 약탈당했으며 자신은 온 몸에 욕창이 생겨 피고름을 흘리며 재위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 욥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욥기서 1:20-21절에 보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드리면서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고 했습니다.
욥은 정신 착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진리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시련을 이기고 노년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욥41:10절) 여러분, 조금 어렵다고 신앙생활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개미도 비가 오면 높은 데로 이동하고 참새도 바람이 불면 숲속으로 숨습니다. 시련이 있을수록 주님 품으로 파고드시기 바랍니다. 금년이 어렵다고 합니까?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여호수아와 같은 신앙의 결단이 더욱 필요할 때입니다. 욥처럼 믿음 줄만 놓지 않으면 시련이 오히려 유익이 되실 것입니다. 이 시련의 시기가 갑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금년을 승리의 해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발판위에 확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면 열매가 떨어지고, 뿌리가 흔들리면 나무 전체가 죽고 맙니다. 신앙만은 결단코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끝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생각 해 보세요.
히브리서 12:2절을 읽어봅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큰 시련을 당할 때 그 고통 뒤에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앞두고도 낙관(樂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개선가를 외치면서 숨을 거두셨던 것입니다. 곧 “예수를 바라보자”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십자가위에서도 사명감에 넘쳐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시련과 싸우셨던 그 모습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을 이기는 처방전은 무엇입니까?
①아브라함처럼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바치는 반응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바칠 때 주어지고, 묻힐 때 싹이 튼다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시련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②여호수아처럼 "나와 나의 가족만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결단하는 신앙으로 시련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③예수님처럼 고통 뒤에 있는 기쁨을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사명감에 넘쳐 승리의 확신을 갖고 시련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독수리는 강풍이 불수록 가슴으로 받으며 오히려 더 높이 날아오른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시련은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오,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십니다.(시18편2절)
그러므로 우리가 못 이길 시련 없고, 감당 못할 시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여도 얼마든지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담대하십시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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