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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과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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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704회 작성일 08-12-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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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일만 있으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신 성탄일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신 것처럼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이 잉태되는 성탄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구세주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누우실 곳이 없어 말구유에 낳으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만큼 세상이 죄로 오염되었고 사람들의 마음도 짐승의 외양간보다 더 더러워져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의 혀로 햝아진 구유가 깨끗하여 그곳에 태어났습니다. 또 예수님이 호사한 궁중이나 부자집 안방에 태어나지 않으셨던 것은 가장 낮고 천한 죄인들과 함께 하시려고 우리 곁에 겸비한 모습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성탄일을 앞두고 우리도 준비를 잘하여 우리들의 마음 방에 예수님이 오시게 합시다. 여러 가지 세상의 시끄럽고 헝클어진 것들을 정리하고 씻을 것은 씻고 닦을 곳은 닦아 말이 혀로 햝아낸 구유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우리의 마음 방에 구세주 예수님을 모두 영접 해 들이는 금번 성탄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탄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성탄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고저 합니다.

1. 구세주를 탄생케 한 요셉의 아픔을 생각 해 봅시다.
내일 모레 결혼을 하기로 약속하고 준비하고 있던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망신스럽고 황당했겠습니까? 자기와 마리아 사이에는 아무런 접촉도 없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같으면 사실을 규명하려 쫓아갔을 것이며 화가 치밀어 노발대발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교양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사실이 확인되자 가만히 끊고 자 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약혼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짝이므로 쉽게 파혼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이혼보다 훨씬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요즈음은 툭하면 이혼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혼하는 당사자 간에는 남모르는 아픔과 고뇌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처녀인 마리아가 임신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면 간단히 처리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랑했던 약혼녀를 매장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그때 요셉에게는 별의별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혼전에 임신 시켰다고 한다면 유대 법대로 치리를 당해야 했을 것이며 또 그렇게 속일 수 있는 일도 아니요, 그렇다고 고향을 멀리 떠나 버린다면 처녀에게 임신 시켜놓고 도망간 나쁜 놈이라고 욕설이 빗발칠 것이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편 생각하면 배신감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고, 동네가 창피해서 낯도 못 두르고 다니게 되었을 것이입니다. 어디 밤잠인들 제대로 잘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가만히 파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더욱 괴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에 의한 것이니 두려워 말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요셉에게 선뜻 이해가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이 이미 역사상으로 공인된 지금도, 아니 교회를 몇 십 년 다니며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 사람들조차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데 어찌 요셉이 꿈에 천사가 나타나 한 말 몇 마디로 믿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머릿속은 더욱 혼란했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속이 탔을 것입니다. 그래도 요셉은 신통하게도 잠을 깨고 마리아와 결혼 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계시 능력에 의한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결혼해도 문제였습니다. 속도위반자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키워야 하는 남모르는 아픔을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를 닮았느니, 안 닮았으니 쑥덕거릴 것이 뻔합니다. 요셉은 이것저것 생각할수록 아마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괴로움을 다 감내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배후에는 이러한 요셉의 정신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자기 자신과 심각하게 투쟁한 아픔이 구세주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고 결단을 했기에 요셉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길을 닦았던 것입니다. 파괴는 쉽습니다. 무슨 일이나 나는 모르겠다고 휘젖어 버리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건설을 위해서는 마리아의 고통과 요셉의 괴로움이 대가로 지불 되어야 하였던 것입니다. 결혼을 앞둔 처녀 마리아의 심령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정의 행복, 사회의 발전, 교회의 부흥, 새 역사의 아침이 있기까지는 남모르는 희생과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도 성탄일을 앞두고 예수님이 내 마음 방에, 우리 가정에, 교회에 오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속에 잉태 하시게 하려면 우리에게도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지푸라기 같은 더러운 것을 쓸어내야 합니다. 말똥 같은 오물을 청소해 내야 합니다. 찌든 때를 말끔히 벗겨내고 말씀과 성령으로 싹싹 닦아내야 합니다. 잘 믿어 보려는데 장애가 되고 걸리적거리는 문제가 많습니까? 여러 가지 생활 속에서 오는 갈등들을 이겨 내려는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 없이는 내 속에 예수님이 오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고민하며 희생하고 순종하는 믿음 없이는 내 가정, 내 교회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고민을 넘어 마리아의 순종하는 결단을 배워야 합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기에 예수님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도 아픔을 견디며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픔을 견딘 사람을 통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고 우리 모두의 구세주가 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동방에서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왔다 간 박사들을 생각해 봅시다.
마2:1절에 보면 헤롯왕 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동방은 지금의 아라비아 지방이요, 아마 당시 바벨론 문화가 꽃 피웠던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그때 바벨론이 점성술이 발달되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인도지방 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멀고 먼 길을 걸어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또 지금처럼 도로 사정이 좋았을 리도 없고 이정표가 있었을 리도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저 하늘 높은 곳에서 깜박이는 별빛을 따라 걷고 또 걸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왔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겠습니다. 목마를 때는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발이 부릅 터진물이 흘렀을 것이고가시밭을 헤치고 지나와야 했고, 강의 위험, 짐승의 위험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판단을 확신했습니다. 자기들 앞에서 인도하는 저 별은 반드시 심상치 않은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날 것을 예고한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왕 곧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믿었기에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며 유대 땅까지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질고를 모두 이겨내고 중단하지 않는 전진을 했기에 그들은 이 땅위에서 최초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영광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끈기도 그와 같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 땅위에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별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 임금은 여호와의 말씀은 내 발등상의 등불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등불을 높은 등경위에 올려놓고 많은 사람에게 비추어 길을 찾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저 천성에 다 들어가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전에 찾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헤롯왕에게 부탁하면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글맞은 헤롯은 내심 아기 예수를 찾아 제거할 음흉한 할 마음을 품으면서도 자기도 경배하겠으니 동방박사들에게 찾거든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국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베들레헴에서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헤롯의 도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었습니다. 별빛이 나타나 아기 예수가 계신 외양간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님의 인도 없이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라 부를 수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고전12:3절) 그러기에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은 행운의 주인공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먼 곳에서부터 어떤 준비를 하고 왔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예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금년도 보배 합을 썩 열어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고 동방 박사들처럼 경배합시다. 신앙의 여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동방박사들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에게 경배하는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헤롯의 꼬임에 넘어가 헤롯 궁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가룟유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오늘날도 헤롯왕처럼 훔흉한 마귀의 유혹은 어디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고달파도 헤롯 궁에 미련두지 맙시다. 동방박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헤롯에게 가서 예수님이 낳으신 곳을 가르쳐 주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쫓아가야 합니다. 그 말씀만이 여러분의 발등상에 등불이 되어야 하고 별빛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장사 밑천이 아니고 생명의 근원입니다.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꼭 영접하고 마음 방에 모셔들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생활 잘하는 것이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연말입니다. 가장 바쁜 계절이지만 한해를 결산하며 반성해 보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년간 여러분의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여러분을 인도하는 것은 별빛이었습니까? 명예나 물질은 아니었습니까? 마리아처럼 순종했습니까? 요셉처럼 참고 견디었습니까? 동방박사들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쫓아갔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좀 힘들고 외롭고 고달파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요, 승리의 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merry christmas는 기쁜 성탄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merry는 “용감한”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만 따라 가겠다는 용감한 결단을 하면서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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