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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Abba)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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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3,020회 작성일 09-07-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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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란 칭호와 아버지란 칭호는 어떻게 다릅니까? 어머니의 남편이며 함께 나를 낳아서 길러 준 분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버지라(father)라 부릅니다. 그런데 아빠(Abba)란 칭호는 자립능력이 없는 어린아이가 오직 아버지만 의지하면서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부르는 뜨거운 정감어린 호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도 다 그런 여러 가지 칭호가 있을 것입니다. 영어권에도 father(아버지)와 Daddy(아빠)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15절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양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 King James나 Amplified, New Americna Standarde에서는 모두 “the spirit of adoption"(양자의 영)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 보면 ”the spirit of sonship"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들 신분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NIV 성경의 번역이 훨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더욱 접근성을 강하게 하는 의미가 있으며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과 정감(情感)을 느끼게 합니다. “양자(adoption)"라고 하면 법적으로 이루어진 관계 같은 인상(image)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쩌튼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거룩한 영인 성령(Holy spirit)을 보내주시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king James 나 Amplified 번역에는 이전에 우리는 일반노예(slave)보다 더 혹독하게 굴종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농노(農奴도 (bondage)의 영을 받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어떤 신분이 되었습니까?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그 절대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성령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의 종도 아닙니다. 두려움의 종도, 물질의 종도, 세상의 종도 아닙니다. 더더욱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명실공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이런 설교를 하면 제일 기분 나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자 분들은 우리가 더 죽게 고생하여 아이를 낳고 길렀는데 왜 어머니 하나님이라고는 안 부른단 말인가? “어머니 하나님은 언제 돌아가셨을까?” 하고 궁금해 하거나 기분 나빠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송하지만 하나님은 부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인과 함께 아담을 낳은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창조하신 우주만물의 절대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부성애(父性愛)와 모성애(母性愛)가 동시에 있으신 분입니다.

※여러분, 부성애와 모성애는 어떤 것입니까?
어떤 아이가 멀리 산 고개를 넘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고가는 길목은 숲이 우거져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나운 짐승들이 종종 나타나 사람을 해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아버지가 등하교 길을 보살펴 주는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아버지가 데리러 오지 않아 아이가 혼자서 그 위험한 산을 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커다란 불곰이 어스렁어스렁 다가 오는 게 아닙니까? 이 아이가 얼마나 기겁을 했겠습니까? 너무도 무서워 오금이 절여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서 떨고 있는데 바로 그때 어디에서 휙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곰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유능한 사냥꾼인 아버지가 활을 겨눈 채 웃고 계셨습니다. “아이야, 너의 뒤를 내가 계속 따라왔단다.” 그때야 정신이 든 아이는 아빠! 라고 소리치며 그 든든한 아버지 품에 안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어떤 무엇보다 더 강하고 든든한 아버지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시 친구들의 꾀임에 빠져 아주 못되게 굴며 학교에서 문제아 였던 아이를 선생님도 도저히 개도(guidance)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아버지를 오시게 하여  상담했는데 그래도 뻣뻣하게 대들며 변화의 기색이 없자 아버지가 너무 속이 상해 아이의 뺨을 갈겨 놓고 밖으로 나가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한참 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고 그 후부터 180도로 달라져 모범생이 되었답니다. 후에 선생님이 아버지의 손대가 그렇게 맵더냐? 하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여 밖에서 흐느끼시던 아버지의 눈물이 나를 변하게 했다고 고백하더랍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어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11:35절) 또 멸망이 눈앞에 왔는데 망할 줄 모르는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면서 가슴 아파 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이사야 49:15-16)라고 우리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곰을 만난 아이를 따라가며 보호했던 아버지처럼 성령님으로 오시여 항상 지켜주시고 여러분 안에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곧 그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은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 진리를 깨달았기에 그 성령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확신 있게 외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아들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 아빠”하고 불러봅시다. 얼마나 더 정스럽고 금방 달려와 껴안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지금도 우리를 감싸주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양수목사님이 어느 시골교회에 부흥회를 갔는데 새벽마다 아가씨 한명이 강대상 앞으로 다가와서 아빠! 아빠! 하면서 기도하더랍니다. 그래서 강대상 뒤에 있는 자기에게 아빠라고 하는 줄 알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왜 그렇게 기도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니까 그런다고 하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가씨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셔서 자기 온 가족을 다 구원하고 친 아버지의 술버릇까지 고쳐졌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가 아빠라고 부르면 더 좋아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는 동시에 모성애도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어느 선교사님이 추운 겨울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어려운 가정을 돌아보려고 길을 가는데 다리 밑에서 간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미끄러지면서 내려가 보았더니 자기가 찾아가는 그 여신도가 새벽기도를 가다가 산기(産氣)가 돌아 너무 급하니까 다리 밑에 가서 해산을 하고 자기의 옷을 다 벗어 아이를 감싸주고 자기는 추워서 죽어 있더랍니다. 이것이 자식을 생각하는 모성애입니다. 그 후 선교사가 귀국하면서 그 아이를 데려가 길렀는데 훌륭히 자란 아이가 어머니를 찾기에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고향을 방문하여 자기의 옷을 벗어 어머니의 무덤을 덮어 주면서 “그때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하고 통곡을 했다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실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성애도 가지고 계신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육신의 어머니 보다 더 강한 모성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혹시라도 젖먹이는 여인이 자식을 잊고,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단코 너희를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I will not forget you)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그의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your walls are ever before me)고 했습니다. 여기 성벽은 물론 성(城)의 담벼락이나 외벽을 말합니다만 그 벽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는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를 고달프게 하는 문제(probrem)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개개인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이미 다 알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 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2절)고 권고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육신의 단계를 넘어 영과 육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것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영원히 의뢰하고 맡겨야 할 아빠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신자의 신분 증명(Identification)을 찾아야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한번 고창 부근을 지나다 교통신호 위반에 걸렸습니다. 단속 경찰에게 사정하다가 경목증을 내 보이자 “경목이신 분이 교통신호를 위반하면 되십니까?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하며 보내 주었습니다. 그때 나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뒤부터 무척 조심합니다.
1. 우리는 아빠 하나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못된 자녀처럼 살면 안 됩니다.
이제 더 의젓한 왕자처럼 삽시다.
2. 문제가 있으면 아빠 하나님께 내 놓고 기도하는 신자들이 됩시다.
아버지에게 의논도 안 해 보고 자기 멋대로 일 저지르면 안 됩니다. 그래도 잘못했으면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께 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 들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고 한 것입니다. (약5:16절)
3. 감사하며 삽시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98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쫓아 항상 기뻐하며 삽시다.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이제 여러분의 “신분 증명”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목포 용해동교회 신자요, 집사요, 권사요, 장로인 것을 항상 기억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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