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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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탄(saton)이 지금까지의 사업을 정리하고 그 동안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연장들을 모아 경매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사탄은 인간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했으며, 그리고 망하게 하며, 약하게 만들고 타락시켰던 연장들을 진열하였습니다. 시기심, 고집, 욕심, 보복심, 미움, 교만, 혈기, 열등의식등 실로 다양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연장들이 놓여있는 맨 끝에 아주 비싼 가격에 나와 있는 잘 포장된 도구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비쌌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그것이 “실망”이라는 무기로서 얼마나 위력이 있었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히 훌륭하게 일하던 사람도 이 실망으로 공격하면 일을 멈추었으며, 주일학교 교사도, 집사도, 부인회 회장도, 권사도, 장로도, 목사도 이 무기 앞에서 꼼짝 못하고 무기력해지고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더라는 것을 입에 거품을 토하며 신나게 설명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사탄에게 질문하였습니다. “혹시 그 연장을 사용하여도 넘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던가요?”라고 묻자 사탄은 “이 연장을 사용하여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무기가 아무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항상 범사에 감사하면 사탄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살전5:18절에 보면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그만큼 감사거리를 충분히 주셨다는 의미이며 또 얼마든지 감사하도록 은총을 쏟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민거리, 근심거리를 잔뜩 주고 무조건 감사하라고 강요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설령 힘들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요구와 부탁을 하고, 감사하면서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행복하고 감사하면서 하늘의 소망가운데 살게 하기 위하여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희생시킨, 너희를 사랑하는 내 마음과 뜻을 너희가 제발 알아야 한다고 강권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감사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는 것이므로 즉시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되며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까? 감사할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아담과 화와는 감사할 조건이 없거나 적어서 타락했습니까? 에덴동산에 못 먹을 것이 많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적었습니까? 꽃이 없었습니까? 새가 없었습니까? 공기가 오염되어서였습니까? 짝꿍이 없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해 주시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단 먹지 말라고 금한 것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그 한 가지 것을 어찌 못 지키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비단 감사할 조건이 적어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못할 만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 선악과나무처럼 그런 영역들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많은 복들을 감사하면서 살 것인가? 허락되지 않은 것만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 것인가? 결국 선택은 각자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은총과 구원받고, 또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로 회복된 특별은총까지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식어졌다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가 시험에 든 것이며 영적으로 병든 마음인 것입니다. 감사를 방해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섭섭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한 섭섭한 마음, 자녀가 부모에 대한 섭섭한 마음, 교인이 교역자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지면 서로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향해 섭섭한 마음을 가진다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섭섭한 마음 때문에 감사하지 못한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탕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형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에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에게 섭섭하여 불평했습니다.(눅15:29-30) 마르다는 부엌일을 하느라고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못 마땅해 하며 보내 주시지 않는 예수님을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눅10:40) 일찍 온 포도원 일꾼들은 늦게 온 일꾼들에게 차별 대우하지 않는 주인에게 섭섭하여 불평했습니다.(마20:11-2) 우리들도 일상생활 속에서나 교회 생활 가운데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마음 상하고 감사하기는커녕 원망 불평하다 종내에는 분쟁까지 생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항상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형제간에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불평하고, 교인의 사정을 모르기에 교역자의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감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 도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산다고 하면서 감사의 소중함을 너무 모릅니다. 주님은 문둥병을 고침 받고도 돌아와 감사하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매우 섭섭해 하시며 안타까워하시지 않았습니까? 행여 나도 그 아홉 중에 하나일까 두렵지 않습니까? 돌아와 감사한 한 문둥병자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감사는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성숙된 믿음인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2.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감사를 도둑 맞지 말아야 합니다. 비교 의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한 문둥병자가 아홉 명과 비교했다면 어떻게 예수님 앞에 감사하러 왔겠습니까? 남들이 그러니까 나라고 어쩌겠느냐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이 봉사하지 않는다고 나도 않고, 남이 불평한다고 덩달아 불평하고, 다른 사람의 믿음이 시원찮다고 나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비교하면 아홉 중에 하나가 되고 맙니다. 남이 감사하지 않으니까 나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함께 죽겠다는 생각입니다. 함께 축복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일거리가 없어 고용 해 준 주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늦게 온 사람들을 차별 없이 사랑했다고 포도원 주인에게 원망한 일꾼들처럼 교회 내에도 그런 씨암탉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감사보다는 트집거리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눈이 없다고, 팔다리가 없다고 다 불행하고 원망 속에 삽니까? 19세기 후반에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마티가 어느 날 신발이 없어 교회에 가면서 마음에 불평이 가득했는데 교회당 입구에서 발 없는 사람이 자기의 맨발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불평과 감사는 손바닥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조건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조건에 대한 반응이 문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순종하는자요,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은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감사한다면 그것은 곧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문둥이가 감사할 때 믿음을 칭찬하며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이 사람이 제일 강한 사람입니다. 마귀가 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더 뜨거운 감사가 교회와 여러분들의 교회가 심령에 넘치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넉넉히 감사하셔서 넉넉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 감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 도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산다고 하면서 감사의 소중함을 너무 모릅니다. 주님은 문둥병을 고침 받고도 돌아와 감사하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매우 섭섭해 하시며 안타까워하시지 않았습니까? 행여 나도 그 아홉 중에 하나일까 두렵지 않습니까? 돌아와 감사한 한 문둥병자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감사는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성숙된 믿음인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2.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감사를 도둑 맞지 말아야 합니다. 비교 의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한 문둥병자가 아홉 명과 비교했다면 어떻게 예수님 앞에 감사하러 왔겠습니까? 남들이 그러니까 나라고 어쩌겠느냐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이 봉사하지 않는다고 나도 않고, 남이 불평한다고 덩달아 불평하고, 다른 사람의 믿음이 시원찮다고 나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비교하면 아홉 중에 하나가 되고 맙니다. 남이 감사하지 않으니까 나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함께 죽겠다는 생각입니다. 함께 축복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일거리가 없어 고용 해 준 주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늦게 온 사람들을 차별 없이 사랑했다고 포도원 주인에게 원망한 일꾼들처럼 교회 내에도 그런 씨암탉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감사보다는 트집거리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눈이 없다고, 팔다리가 없다고 다 불행하고 원망 속에 삽니까? 19세기 후반에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마티가 어느 날 신발이 없어 교회에 가면서 마음에 불평이 가득했는데 교회당 입구에서 발 없는 사람이 자기의 맨발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불평과 감사는 손바닥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조건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조건에 대한 반응이 문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순종하는자요,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은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감사한다면 그것은 곧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문둥이가 감사할 때 믿음을 칭찬하며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이 사람이 제일 강한 사람입니다. 마귀가 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더 뜨거운 감사가 교회와 여러분들의 교회가 심령에 넘치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넉넉히 감사하셔서 넉넉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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