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모든덕의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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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45편은 다윗 임금의 찬송시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을 드러내는 전능하심과 자비와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145편 전체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람의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1-3절)과 놀랍고 능하신 행위(4-7절),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은혜, 자비, 인자와 긍휼(8-9절)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된 하나님의 영적인 왕적통치(10-13절)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반적인 은혜와 특별한 은혜, 그리고 공의(公義)를 찬양하고 있습니다.(14-20절) 끝 절인 21절은 결론적인 찬양으로서 다윗 임금은 하나님께 대한 계속적인 찬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그의 전 생애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지극하시고 놀라운 사랑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너무도 감사하여 “영영히 송축할지어다”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고 예배드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우주만물과 우리의 삶속에 베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00편에서 시인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하므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100편1-5절)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성실하심이 어떠한 가를 누구보다도 마음과 몸 전체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송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혼으로 감지한 사람에게서 진정한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주위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는 감사의 표현과 진정한 감사의 표현은 상대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보람을 느낍니까?
1. 감사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내가 죽도록 사랑했는데 상대방은 전혀 감정조차 없는 것 같을 때 얼마나 실망됩니까? 나중에는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끝내는 괘씸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아가페 사랑이기에 우리가 몰라주어도 한번 사랑한 사람은 끝까지 사랑 하십니다.
사람의 감정처럼 미워하거나 괘씸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어 가시면서도 죄 없는 자기를 때리고 찌르고 죽이는 사람들을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끝까지 용서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때 사랑한 보람을 느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감사는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되 그러한 사랑을 우리가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한 내용이 바로 이 성경책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가복음 12장 말씀 중에 비유를 들어 감사할 줄 모르는 부자를 보고 매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자기 노력만으로 풍성한 소출을 거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소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소출이 없거나 적은 사람들과 나눌 줄 몰랐습니다. 자기만 생각하여 곡간에 쌓아두고 오래오래 먹자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몰랐기에 영혼을 오늘밤에라도 불러 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책망하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되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을 통해 사랑한 보람을 느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10배의 힘이 솟아나게 신체 구조를 창조하셨답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찬송하면 4,000배의 에너지가 산출된답니다. 우리 속에 잔병이 낫고 불치병이 물러가며 낙심했던 사람이 180도로 변화되어 용기백배한 전환이 오는 기적도 바로 그러한 하나님과 나와의 접촉 속에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할 때 일어나는 영적 스파크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은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할 때 기뻐하시며 우리와 접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만져주시고 안아주시기도 하지만 감사할 때 하나님은 사랑한 보람을 느끼시며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신 것(시145:8절)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영적으로 감동하시여 진정으로 그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진정으로 감사합시다.
어떤 왕이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크고 호화로운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성전 건축을 위해 10원 한닢 헌금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심지어 건축 현장 부근에 얼씬도 못하게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성전을 완공한 후 그 왕은 머릿돌에 자기 이름을 크게 새기고 매우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천사가 와서 성전 머릿돌에 새긴 왕의 이름을 지우고 그 고을에 사는 가난한 과부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꿈을 수차례 반복하여 꾸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여인을 찾아 성전을 건축할 때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느냐?”고 캐물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왕 앞에 읊조리며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너무도 돕고 싶어서 벽돌을 실어 나르는 말에게 건초를 먹여준 일밖에 없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그 여인의 작은 정성을 무엇보다도 더 귀하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 사연을 들은 왕은 늦게야 깨닫고 성전의 머릿돌에 그 여인의 이름을 새기고 만백성에게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가르쳤다고 합니다. 진정한 감사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 드렸는데 진정한 사랑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피가 다 빠져 죽어 가는데 수혈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할 수 없어 동생인 딸에게 수혈을 해 줄 것을 요구하자 그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옆 침대에 누웠습니다. 다행히 오빠가 회복되자 아버지는 기쁘고 감사해서 그 소식을 수혈한 딸에게 전했더니 그 딸은 “아빠 나는 언제 죽어요?” 하고 묻더랍니다. 뜻을 알고 보면 눈물 날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는 오빠를 위해 자기 피를 뽑아주면 자기는 죽게 된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를 위해 자기가 죽자는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웠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진정한 사랑입니까? 우리 주님은 자기가 죽고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 진정한 사랑만 깨달아도 우리는 영원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할리이다”(시145:10)라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추수감사절을 의미 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3. 끝으로 감사는 모든 덕(德)의 모체(母體)입니다.
따지고 보면 선행도, 효도도, 신앙도 우선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음식에 감사하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건강을 감사할 줄 알아야 병든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유를 감사할 줄 알아야 억압 속에 사는 사람은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관심으로 이어지고 관심은 섬김으로 이어지고, 복지(福祉)로 연결됩니다. 그러니 천국의 시작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귀먹고, 눈멀고, 말까지 못하던 장애우 헬렌켈러는 “사람들이 하루만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 보이고, 입이 안 열리면 그들이 평소에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우리는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불평을 거두고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善待)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도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부모님들께 감사합시다. 스승님들께 감사합시다. 교우들께 감사합시다. 주위의 여러분들께 감사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크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된 하나님의 영적인 왕적통치(10-13절)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반적인 은혜와 특별한 은혜, 그리고 공의(公義)를 찬양하고 있습니다.(14-20절) 끝 절인 21절은 결론적인 찬양으로서 다윗 임금은 하나님께 대한 계속적인 찬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그의 전 생애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지극하시고 놀라운 사랑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너무도 감사하여 “영영히 송축할지어다”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고 예배드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우주만물과 우리의 삶속에 베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00편에서 시인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하므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100편1-5절)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성실하심이 어떠한 가를 누구보다도 마음과 몸 전체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송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혼으로 감지한 사람에게서 진정한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주위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는 감사의 표현과 진정한 감사의 표현은 상대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보람을 느낍니까?
1. 감사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내가 죽도록 사랑했는데 상대방은 전혀 감정조차 없는 것 같을 때 얼마나 실망됩니까? 나중에는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끝내는 괘씸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아가페 사랑이기에 우리가 몰라주어도 한번 사랑한 사람은 끝까지 사랑 하십니다.
사람의 감정처럼 미워하거나 괘씸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어 가시면서도 죄 없는 자기를 때리고 찌르고 죽이는 사람들을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끝까지 용서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때 사랑한 보람을 느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감사는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되 그러한 사랑을 우리가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한 내용이 바로 이 성경책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가복음 12장 말씀 중에 비유를 들어 감사할 줄 모르는 부자를 보고 매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자기 노력만으로 풍성한 소출을 거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소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소출이 없거나 적은 사람들과 나눌 줄 몰랐습니다. 자기만 생각하여 곡간에 쌓아두고 오래오래 먹자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몰랐기에 영혼을 오늘밤에라도 불러 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책망하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되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을 통해 사랑한 보람을 느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10배의 힘이 솟아나게 신체 구조를 창조하셨답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찬송하면 4,000배의 에너지가 산출된답니다. 우리 속에 잔병이 낫고 불치병이 물러가며 낙심했던 사람이 180도로 변화되어 용기백배한 전환이 오는 기적도 바로 그러한 하나님과 나와의 접촉 속에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할 때 일어나는 영적 스파크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은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할 때 기뻐하시며 우리와 접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만져주시고 안아주시기도 하지만 감사할 때 하나님은 사랑한 보람을 느끼시며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신 것(시145:8절)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영적으로 감동하시여 진정으로 그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진정으로 감사합시다.
어떤 왕이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크고 호화로운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성전 건축을 위해 10원 한닢 헌금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심지어 건축 현장 부근에 얼씬도 못하게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성전을 완공한 후 그 왕은 머릿돌에 자기 이름을 크게 새기고 매우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천사가 와서 성전 머릿돌에 새긴 왕의 이름을 지우고 그 고을에 사는 가난한 과부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꿈을 수차례 반복하여 꾸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여인을 찾아 성전을 건축할 때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느냐?”고 캐물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왕 앞에 읊조리며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너무도 돕고 싶어서 벽돌을 실어 나르는 말에게 건초를 먹여준 일밖에 없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그 여인의 작은 정성을 무엇보다도 더 귀하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 사연을 들은 왕은 늦게야 깨닫고 성전의 머릿돌에 그 여인의 이름을 새기고 만백성에게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가르쳤다고 합니다. 진정한 감사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 드렸는데 진정한 사랑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피가 다 빠져 죽어 가는데 수혈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할 수 없어 동생인 딸에게 수혈을 해 줄 것을 요구하자 그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옆 침대에 누웠습니다. 다행히 오빠가 회복되자 아버지는 기쁘고 감사해서 그 소식을 수혈한 딸에게 전했더니 그 딸은 “아빠 나는 언제 죽어요?” 하고 묻더랍니다. 뜻을 알고 보면 눈물 날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는 오빠를 위해 자기 피를 뽑아주면 자기는 죽게 된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를 위해 자기가 죽자는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웠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진정한 사랑입니까? 우리 주님은 자기가 죽고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 진정한 사랑만 깨달아도 우리는 영원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할리이다”(시145:10)라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추수감사절을 의미 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3. 끝으로 감사는 모든 덕(德)의 모체(母體)입니다.
따지고 보면 선행도, 효도도, 신앙도 우선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음식에 감사하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건강을 감사할 줄 알아야 병든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유를 감사할 줄 알아야 억압 속에 사는 사람은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관심으로 이어지고 관심은 섬김으로 이어지고, 복지(福祉)로 연결됩니다. 그러니 천국의 시작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귀먹고, 눈멀고, 말까지 못하던 장애우 헬렌켈러는 “사람들이 하루만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 보이고, 입이 안 열리면 그들이 평소에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우리는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불평을 거두고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善待)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도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부모님들께 감사합시다. 스승님들께 감사합시다. 교우들께 감사합시다. 주위의 여러분들께 감사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크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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