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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작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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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706회 작성일 09-09-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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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자기 아들이 간질병으로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집니다. 제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 고쳐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고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까지나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데 언제나 믿음이 생길 것인가 걱정하시면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니 금방 귀신이 나가고 그때부터 아이가 깨끗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제자들이 의아하여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답하셨습니까?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이 우리를 울렁거리게 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①그때까지도 제자들에게는 겨자씨만큼은 커녕 전혀 믿음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②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력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웬만한 핵폭탄으로도 산을 여기서 저리로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음이 겨자씨만큼 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히11:5)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100세 이삭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고 (히11:29절) 믿음으로 사사들과 다윗은 전쟁에 승리했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히11:33-34) 초대교회 신자들은 믿음으로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히11:37)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히11:38절)고 성경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세상을 이기시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최신식 무기입니까? 핵폭탄입니까? 아닙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고 생명을 1분 1초라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요한사도는 분명한 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믿음이니라”(요1서5:4) 고 했습니다. 믿음의 위력은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이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말만해도 산을 이리저리 옮길 수 있다고 하셨는데 믿음이 쌀알만큼, 아니 콩알만큼 크다면 그 위력이 어떠하겠습니까?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믿음의 소중함과 위력을 안다면 교회 생활을 열 불나게 잘 하실 것입니다. 가정예배, 구역예배 빠트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연고로 예수님에게 패역하다는 책망을 듣지 맙시다. 언제나 믿음이 들어갈 것인가? 예수님을 근심되게 하지 맙시다. 여러분!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가는 잘 아시지요. 한국 속담에 “담배씨로 조롱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담배씨의 속을 파내어 물건을 담는 그릇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담배씨와 비교도 안 되게 작습니다. 성지순례 가서 겨자씨를 사 가지고 교인 몇 명에게 구경 시켰더니 콧김에 다 날라가 버리고 빈 봉투만 가져오더라구요. 그런데 예수님은 믿음은 그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으니 좌우간 믿음은 있고 보아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콩알만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겨자씨만한 믿음을 비유로 들었을까요?
 
1. 살아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겨자싸란 육안으로 식별조차 어렵지만은 그러나 그 속에 감추어진 생명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호박씨라도 배젖이 죽은 것은 싹이 트지 않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든 것은 작지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기에 땅에 심으면 싹이 납니다. 곧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멀쩡해도 산 신앙의 소유자가 있고 죽은 신앙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2:1절에 보면 “너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때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우리의 영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代贖) 제물로 대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임하여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거듭나야 살아있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9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며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몇 년 다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가 문제인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람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조차 무엇인지 모르고 헛소리 한다면 그런 사람은 실상은 살았으나 영은 죽은 사람입니다. 곧 겨자씨만큼 한 믿음이란 바위만큼, 산만큼 크다는 말과는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그것들은 무생물치고 겨자씨는 유생물입니다. 작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는 믿음이란 뜻입니다. 바위는 100년 묻어놓아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박토에 떨어져도 싹이 납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말고 산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고 따끔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며 뜨뜻미지근하니 입에서 너를 토(吐)통하여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나 네 곤고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엄히 책망하셨습니다.(계3:16-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13) 경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비록 겨자씨처럼 작더라도 생명이 있으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죽은 호박씨 1,000개 보다 생명이 있는 작은 겨자씨 하나가 낫습니다. 나을 것입니다. 제발 여러분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잉태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겨자씨만큼 한 믿음이란 장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곧 성장 가능한 믿음이란 뜻입니다. 마가복음 4:32절에 보면 “심긴 후 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라고 했습니다. 비록 씨는 작지만 모든 풀보다 더 크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약하나 나중에는 더 창대 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욥8:7) 생명이 있는 것은 자라야 합니다. 자라야 할 것이 안자라면 그것은 병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자연 연령과 지적 연령 또 영적 연령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연 연령과 지적 연령도 자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영적 연령이 자라야 합니다. 바울 사도를 보십시오. 기독교를 핍박하며 대적하던 사람이 그 속에 예수의 영이 들어가 영적인 사람이 되자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13권이나 썼고 복음전도에 생애를 바쳤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시몬이 예수의 영이 들어가 성장하자 오순절 아침에 3,000명에게 복음 전하고 회개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도 성장하면 놀라운 위력을 나타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작지만 크게 성장 가능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은 장래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위력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신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겨자씨만한 믿음은 쓸모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4:32절 하반 절에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우습게 보였지만 나중에는 모든 풀보다 더 커지며 가지를 낸다고 했습니다. 겨자씨가 싹이 나고 자라서 쓸모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자라서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신 것은 우리에게 쓸모를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겨자씨 같이 작은 것도 싹이 나고 자라서 가지에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쓸모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아무 쓸모없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지금 나는 겨자씨처럼 작다고 생각합니까? 부족합니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습니까? 늙고 병들었습니까? 그러나 영적 연령이 자라면 됩니다. 여러분 속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성이 자라면 여러분은 겨자나무처럼 얼마든지 하나님께 쓸모 있는 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자라야 합니다. 갓 씨나 호박씨는 1년 묵으면 발아가 안 됩니다. 지금 싹이 나야 합니다. 계속 자라야 합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작으면 귀신이 먼저 압니다. 귀신에게 망신 당 합니다. 예수님의 근심거리가 됩니다. 제자들은 겨자씨만큼 한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위력이 없습니다. 영성이 없으니 겁부터 먹고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가 되지 맙시다. 믿음이 작은 까닭에 제자들처럼 망신 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크게 성장하여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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