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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의 멧세지 마27:33-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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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816회 작성일 10-03-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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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고난주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그리스도께서 해골은 곳이라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죽어 가시는 장면을 봉독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을 면하게 할 수 있는 마취제로 쓰이는 쓸개 탄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셨습니다.(34절) 양손과 양발은 십자가에 못 박혀 몸무게 때문에 못 자국이 찢어져 내렸습니다.

머리에는 예리한 가시투성이인 가시관이 씌여져 살을 파고 들어가 선지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어거지로 뒤집어씌운 치욕적인 죄 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로마 병정들은 그 아래서 호이지 않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서로 많이 가지려고 제비를 뽑고 있었습니다. 흉악한 강도질을 하다 붙잡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고 모욕했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도 함께 남은 구원하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희롱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분통터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눅23:24절에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묵묵히 죽어 가신 그 예수님의 모습 앞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많은 군중 앞에서 포호하는 웅변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짜릿한 마치 감마선(ϒ 선)처럼 피부를 파고드는 진한 사랑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30년 전에 직장을 사임하고 지금의 교회터에 와서 천막을 치고 눈 속에서 저녁 내내 기도하다 참으로 이상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전면에 걸어놓은 십자가가 엄청난 크기로 확대 (crose up) 되어 다가오다가 정신 차리고 바라보면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이상하다고 고개만 내젓고 넘겼습니다마는 지금 생각 해 보니 하나님은 나에게 십자가에 깃들어 있는 놀라운 구원 진리를 그처럼 웅변해 주셨음을 한참 후에야 깨닫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처럼 말없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주님의 모습 속에는 엄청나고 놀라운 교훈과 진리가 배어 있습니다. 행여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훌쩍 내려오거나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삼대처럼 쓰러져 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구경 왔던 사람들은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고 몹시 실망하여 모두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죽어 가신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죽으심 그 자체가 더욱 엄청난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 없는 예수님은 제물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죽으심 자체가 가장 귀한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빌2:6) 전능하신 예수님이 피조물인 죄인들의 손에 순순히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연약한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용기이셨습니다. 심판 주이신 예수님이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들에게 자신을 내여 주신 지극한 희생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다윗 임금이 고백했던 것처럼 죄악중에서 출생했고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습니다.(시51:5절) 물론 여기의 죄란 종교적인 죄를 말합니다.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원죄와 원죄로 인하여 범과한 자범죄나 고범죄 등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해답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나의 죄가(罪價)를 속량하여 주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인간의 몸을 입고 도성인신(incarnation) 하여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그러한 고통과 모욕과 희롱을 다 참으시고 묵묵히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증명하는 사랑의 극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 믿기 전에 불교에 심취했던 경력이 있었기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친구들은 다 바보 같았고 최소한의 생식원리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라고 무척이나 잘난 척 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과학을 초월한 창조주의 사랑과 능력이 있음을 감지했을 때 과연 기독교야 말로 이성을 능가한 이성적 종교요, 논리적인 종교요, 과학 이상의 과학적 종교임을 깨닫고 꼬꾸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에 죄가 있을 수 없고, 그 죄 없는 분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내 죄가를 누가 치러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기적이 아니고 당연한 사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죽습니까? “죄가 장성 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죄없는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 합니까? 예수님은 죽으실 수도 없고, 죽으실 필요도 없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성령님께서 나를 깨닫게 하사 기독교야말로 생명의 종교요,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확실한 종교인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깨달아지고 믿어질 때 우리는 삶의 방향이 전환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고전5:7절에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룩 없는 무교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교병은 가루+누룩으로 만들어진 떡입니다.

여기서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는 누룩 없는 무교병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이렇게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처참히 죽어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신앙은 앙꼬 없는 찐빵 같은 껍데기 신앙인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가슴 복판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그 그리스도가 계실 때 비중 있는 크리챤이 됩니다. 무게 중심이 있는 오뚝이처럼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도덕 수준보다 더 높은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세상을 이기는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확신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애롭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칠전팔기 할 수 있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위 환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입어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신 사람은 날로 날로 예수님을 닮아가며 더 나은 차원 높은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여자가 신랑과 결혼해야 아이를 생산하듯 그런 크리스챤들은 전도하여 새 생명을 얻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모인 여러분들은 이 지역뿐 아니라 예수를 모르고 어두움 속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더 밝게 비추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말세가 되어 우는 사자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IYF. JMS. 안산홍 하나님의 교회, 큰 믿음교회 등 이러한 이단세력들이 무섭게 교회 속까지 파고든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와처럼 보태고 뺄 때 타락합니다. 죽음이 옵니다. 우리는 진리를 사수합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택하시어 이 시대에 중차대한 사명을 맡겨주셨음을 이 사순절에 다시 한 번 절감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기적은 결코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심판 받을 수 없는 의인이 거꾸로 심판 받은 것입니다. 죽지 않을 하나님이 죽는 기적, 그것은 분명 역설적인 기적이요,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기적처럼 보여 지지 않은 이기적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입니다. 우리는 벼락부자가 되고, 벼락출세나 노리는 욕망의 기적만 찾지 맙시다. 진정한 기적은 삭개오 처럼 부자가 가난해지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기적,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부자가 되지 못해도 역경 속에서 찬송하는 기적을 보여줍시다. 우리 한국교회와 한국교인들이 이제 이 기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역설적 기적을 보여줄 때 진정 교회가, 우리 크리스챤들이 세상 속에 희망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사순절에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그 분의 묵언의 맷세지를 심령의 귀로 경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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