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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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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1,824회 작성일 09-12-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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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분명 현실이면서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저 유대땅 나사렛이란 동네에 마리아란 처녀와 약혼을 해 놓고 결혼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총각 요셉에게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도 티 없이 곱고 얌전했던 마리아가 자기와는 동거한 사실이 전혀 없었는데 태기가 있는 것입니다. 처녀가 아기를 배도 할 말이 있다고 하지만 마리아의 설명은 너무도 황당하여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2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보낸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0절-31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태기가 있고 배가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남자가 그 말을 믿어 주겠습니까? 아기를 뱄어도 좋다고 결혼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보통 남자 같으면 “거짓말 마라”고 여자에 악을 쓰고 폭력을 가하면서 “어떤 놈하고 놀아났느냐”고 노발대발 했을 것입니다. 사랑했던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통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호칭했습니다.(마1:19절) 그래서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다가 가만히 파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20절) 고 하면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고 부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예수란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예수가 태어나기 74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게 했던 약속 말씀대로(사7:14절) 이루어진 것이니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 아이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라고 설명까지 해 주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꿈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생생한 현실 같았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이 사실을 그대로 믿었으며 감쪽같이 결혼식을 마치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이신 예수님은 이렇게 다윗 가문의 혈통인 요셉의 가정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로 직접 데려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오는 12월 25일이 바로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하신 분이 태어나신 날이기에 그 날을 성탄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 성탄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입증한 사건입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는 청계를 갔다 오면서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날씨가 음산하고 추운데 지나가는 우리 차를 보고 손을 흔드는 시골 할머니를 지나칠 수 없어 태워 주었습니다. 그 분은 너무 너무 고마워하며 급한 사정을 털어놓았는데 하당에 사는 자기 아들이 기계로 투석을 하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머니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마음은 급한데 시간마다 다니는 버스를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차를 태워준 우리를 구세주처럼 고마워했던 것입니다. 반면 저는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구나” 하고 모정(母情)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저렸습니다.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을 아들 곁에 어서 빨리 달려가 있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곧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생각하면 그 어머니의 마음을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보다 몇 천 만 배 더 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씀이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자녀를 키워 본 부모라면 몸으로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병들어 신음할 때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내가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서 죽어가는 자식을 보면서 내가 대신 죽고 자식이 살 수만 있다면 열 백 번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볼 부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청계에서 차를 태어 준 그 어머니의 마음이 차 안에 있으면서도 얼마나 초조 했을까 생각 해 보면 지금도 내 가슴이 절절합니다. 마치 나와 형제 같이 지내는 목사님 교회의 권사님이셨기에 소식을 물었더니 위급한 상태는 면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권사님이 황망해서 우리 교회 이름을 기억 못하고 너무 너무 고마웠다고 전화가 왔더랍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우리를 더 이상 보고만 계실 수 없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 오신 분이기에 또 그의 이름이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땅에 오신 성탄 사건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신 사랑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셨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몸으로 직접 자기를 표현 한 것은 진실과 열정적 사랑의 극치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철석같이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전도할 때 내일을 꼭 나가겠다고 손도장까지 찍어 놓고도 다음에 만나면 마치 약속을 어긴 것이 당연한 것처럼 무반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로써 계약서도 써 보지만 그것도 안 지킵니다. 열 마디 말보다도 몸으로 직접 보여 주는 것 이상 더 진실은 없습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뭣합니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직접 몸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 사건입니다. 여기에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진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의 사랑의 극치가 드러났습니다. 추운 겨울에 말구유에 태어나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기 예수는 몸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직접 표현하신 하나님의 열정을 백 마디의 말보다도 현실로 웅변 해 주신 것입니다.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피와 땀을 마지막 한 방울 까지 쏟으며 인류의 평화와 속죄(贖罪)를 기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최후의 모습은 역시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의 열정을 잘 표현 해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절)고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아닙니다. 몸으로 직접 오신 분입니다.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시며, 약속하신 것을 한 가지라도 이룰 수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진실하신 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3.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희생과 아픔도 각오하신 분입니다. 또 이사야 53:5절에 예수님에 대한 어떠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는 구세주의 탄생에 대하여 이처럼 아픔을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증거 했습니다. 진통의 아픔을 통하여 산모가 생명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수천 년 대에 걸쳐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고 고질화 된 구약 시대의 우상숭배는 피 흘림이 없이는 용서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하나님의 아픔을 통하여, 곧 제물이 됨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야 열매를 맺는다”는 교훈을 남겼으며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는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마20:28절)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예수님은 곧 그 이름 속에 거룩한 아픔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①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입증한 사건입니다. ②예수님의 탄생은 그 사랑을 직접 몸으로 표현한 진실과 열정적 사랑의 극치입니다. ③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는 어떠한 아픔과 희생도 각오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영원히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내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절) 그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고 절대 불변하십니다.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신 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다윗의 혈통 요셉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신 메시야이십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그 예수님이 항상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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