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서 4:7-11절(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 주일오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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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서 4:7-11절(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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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064회 작성일 10-12-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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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 믿기 전에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너는 불공을 들여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네 목에는 북두칠성 점이 있다”는 말씀을 수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이웃 동네까지 그 소문이 나서 초등학교 때 동무들의 집에 가면 그 어머니들이 네 목을 보자고 목덜미를 들여다보는 바람에 몹시 당황하곤 했습니다. 또 가관인 것은 어떤 어머니는 억지로 짜 맞추어서 “정말 북두칠성이 있네” 하며 감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북 고창에 있는 상원사 란 절간에 가서 1년 반 동안 사미승 생활을 했고 절에서 도망 나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원불교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한 나에게 기독교라는 종교는 너무도 생소했고 교리 자체가 배꼽 빠지게 우스운 내용들이 있어서 제법 잘난 척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간이들처럼 생각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둥,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내려왔다는 둥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말 같지 않아 비과학적인 헛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시절에 예수 믿는 친구들과 박 터지게 논쟁을 했고 결과는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통쾌한 미소를 지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했던 내가 지금은 그렇게도 모질게 비관하고 깔아뭉개 버렸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아 이것이 기적이구나” 하는 대답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더욱이 목사가 되어 전도를 하고 그 기독교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으니 이 무슨 요술에 걸린 것입니까? 그래서 목사 고시를 볼 때 바울에 대한 논문을 썼었습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큰 자”라는 의미의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명문 대학인 다소 대학에서 가말리엘이라는 대석학자 밑에서 수제자로 공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조금 안다고 제법 폼 잡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그들의 전통 종교인 유대교의 철저한 신봉자였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난 예수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야로 오셨다는 말을 믿기는 커녕 저주하고 핍박했습니다. 날로 그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핍박하는데 앞장섰고 젊은 혈기에 서슬이 시퍼랬습니다. 그러한 사울이 180도로 달라진 사건이 생겼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검거하는 책임자가 되어 고향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노상에서 만났습니다. 눈부시게 강한 빛 가운데서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들었고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음성을 듣고 철퇴에 얻어맞은 것처럼 마상에서 굴러 떨어져 눈에 꺼풀이 씌어져 앞을 보지 못한 체 3일간을 먹지도 못하고 맥 빠져 누워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안수하게 하고 깨어난 후 그의 의식(意識)이 180도로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구세주 예수를 전하며 “십자가만이 자신의 최고 자랑”거리라고 당당하게 전파했습니다. 교만했던 사울은 “종”이라는 의미인 바울로 이름까지 바뀌어 졌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를 바로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그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믿으십니까?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으면 죽지 않고 구원받게 되는 것을 믿으십니까? 기독교는 철학 이 아닙니다. 더더욱 사람들이 고안 해낸 우상 종교도 아닙니다. 오늘날 비판자들이 아무리 기독교가 세속화 되었다고 해도 성경 말씀만은 변치 않는 진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 다가가고, 믿고 마음을 주고 받을 때 상호 신뢰관계가 형성되며 피차간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아는 것으로 그치는 이론 종교가 아니고 믿음의 종교입니다. 다음 주일은 성탄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가 사는 이 땅으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날입니다. 그 사실은 인간이 쓴 고전 시나리오나 연극의 대본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어리둥절하여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요, 오늘도 우리의 삶속에서 증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모처럼 아내와 백화점 구경을 나왔다가 굵직한 진주를 보고 부러워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다음 부인의 칠순 고희 때 그 남편은 눈을 감게 하고 무엇인가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기절초풍을 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10년 전에 보았던 그 진주 반지가 자기 손가락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격한 아내는 “여보 어떻게 이 비싼 것을 ” 하며 울먹일 때 남편은 고백 했습니다. 자네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나는 지난 십년간 그 좋아하던 담배도 끊고, 아무리 목말라도 막걸리 한 잔 먹지 않고, 시원한 얼음과자 하나도 사 먹지 않고 저축하여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울먹이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하며 눈물을 글썽일 때 그 남편은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한마디를 했답니다.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 어떻게 자동차 밑에 깔리려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요3:16절에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이 왜 죽습니까? 죄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롬6:23) 사람이 죽게 된 것은 우리의 원 조상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었기에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했습니다.(롬5:12절) 그래서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다.(롬5:14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분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5:17절)했습니다. 이렇게 원 조상 아담의 후손으로 죄 가운데 잉태된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구원해 주기 위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시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이 성탄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헤엄을 잘한 잠수부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려 바다에 뛰어 들었어도 믿지 않고 손을 뿌리치는 사람은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잠수부를 믿고 몸을 맡긴 사람만이 살아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구원받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요1서 4:7)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연결된 사람은 그 증거가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니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과의 씨는 100년 가도 사과가 열리고, 콩은 만년 가도 콩만 열리듯이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라”(고후13:5) 여기서 바울이 믿음 안에 있는 가를 시험하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너희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너희가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곧 사랑이시기 때문에 너희에게 사랑이 있으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 배고픈 사람, 옥에 갇힌 사람, 목마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 속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고후13:5절 하)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1서 4:12절) 여러분, 이 성탄절을 맞으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그의 안에 계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1서 4:15절)고 했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 구유 만큼이라도 정결하게 영접할 방을 만들어 놓을 때 그 곳에 오시게 될 것입니다.


3. 그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세상을 이기고 승리합시다.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얻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1서 5:4)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사랑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에 바울처럼 변합니다. 불평하던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분노가 사랑으로 변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해지고, 뺀질이도 솔선수범하는 봉사자로 변합니다. 예수가 그 속에 들어가니 16범 죄수가 천사처럼 변하여 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을 씹고 독한 말만 하던 사람이 회개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땡감나무가 단감나무에 접 붙여지면 단감이 열듯이 사랑이신 예수님에게 접붙여지면 사랑의 사람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골수였던 나도 예수에 게 접붙여지니 목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과학보다 더 위대하신 초월자이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 이십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난 그 사실은 오히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증거 하는 사건이요,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우리의 구주로 오신 분임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 주님을 믿는 자만이 영원히 죽지 않고 부활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우리 가운데로 오신 거룩한 날입니다. 우리 뜻 깊고 거룩한 이 성탄일을 고대하며 잘 준비합시다.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마음껏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사랑의 예수님을 모두 영접하여 사랑 덩어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때 우리는 그것보다도 더 몇 만 배 성능 있는 사랑의 폭탄을 만듭시다. 이 바람이 북으로 불어가면 폭탄도, 핵무기도 다 녹아버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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