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이 칭찬한 오네시보로 (딤후 1:16-18절) > 주일오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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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이 칭찬한 오네시보로 (딤후 1:16-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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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3,661회 작성일 11-05-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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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에게 묻습니다. “찬양이 끝난 후 성도님들이 박수를 쳐주면 기뻐요, 안 기뻐요” 기쁘지요! 찬양은 누구에게 드린 것입니까? 하나님께 드드렸으면 그만이지 왜 성도들의 박수를 받고 싶어 합니까? 물론 여러분들이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박수를 쳐 주면 기분이 좋지요! 어떤 분들은 박수치는 것은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는 교만이라고 나쁘게 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정성 드려 찬양을 올려드렸고 우리도 은혜 받았으니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고맙다고 박수 쳐 주는 것은 오히려 성가대와 성도들이 하나가 된 진정한 마음의 코러스(chorus, 합창)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진성이가 집에 돌아오더니 어머니를 큰소리로 부르면서 자기가 연극에 배역으로 뽑혔다고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더랍니다. 알고 보니 주인공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아래서 박수 쳐주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약간 실망스럽긴 했지만 곧 자기를 돌아보면서 크게 뉘우쳤답니다.

나는 어린 진성이보다 훨씬 못한 인간이다. 진성이는 그처럼 형편없이 들어나지 않는 역할을 맡고도 그렇게 기뻐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날을 위해 박수를 쳐 보지 못했구나” 너무도 남을 칭찬하는 박수에 인색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받고 싶어 하면서 남을 위해 박수를 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하나의 무대로 볼 때 거기에는 주역도 있지만 단역도 있습니다. 얼굴을 무대에 한 번도 나타내지 않는 음향, 조명, 세트, 소도구등을 책임지는 많은 사람이 숨어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많 없이 봉사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강단 청소, 변소 청소, 방송실에서 수고하는 일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숨은 봉사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감사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보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에베소교회에서 봉사했던 이름 없는 평범한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바울사도가 오네시보란 사람을 몹시 칭찬하고 축복한 내용이 본문에 나옵니다.

1. 바울사도는 그가 나를 자주 격려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원어에 보면 아나푸코(ἀναΨμΧω)란 말로 “활력을 더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곧 바울 사도의 마음을 “싱싱하게 만들어 주었다, 재활시켜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70평생을 살아오면서 요즈음 “이런 사람이면 참 훌륭하고 그런 사람의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나 자신이 싱싱함과 소생하는 기분과 용기와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회고 해 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러한 힘을 얻었습니다.

①물질이나 힘에 비굴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그런 사람의 곁에 앉았을 때 나는 어쩐 지 흐뭇하고 나 자신도 크게 용기를 얻었음을 경험했습니다.

②다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고 비판과 평가하는 것 보다는 격려해 주고 좋은 점을 발견해서 말해 주는 사람을 볼 때, 나는 언제나 많은 것을 배우고 마음이 상쾌했습니다.

③빈부나 계급, 혹은 사회적 지위를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고 명랑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사람 곁에 있거나 그런 사람을 내가 알게 될 때 나는 기쁘고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④말없이 사랑하고 빛 없이 희생하는 사람의 곁에 있을 때, 나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7-18절을 보면 바울사도가 스테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 세 사람을 격찬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이 세 사람에게 복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까지 칭찬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그들이 너희와 나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8절) 또 그들은 너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17절) 그들은 마치 스페어 타이어(spare tire)처럼 어두운 트렁크 속에 숨어 있다가 이상이 생겼을 때 재빨리 나타나서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주는 것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사도가 힘이 빠질 때 그를 격려해 주고 용기를 주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2. 오네시보로는 바울사도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칭찬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높이 평가받을 일입니다. 바울이 결박되어 죄수로서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의 진가를 인정하고 진실을 인정해 준 태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울사도를 죄수 취급했지만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인정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야말로 4복음서를 통하여 볼 때 남을 잘 알아주는 즉 인정해 주는 마음씨와 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고민을 이해하고 용서했으며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대한 니고데모의 번민을 알고 이해하였습니다. 위선적인 부자 청년의 정신적 갈등을 알고 인정했습니다. 물질의 욕망과 습관화 된 부정부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삭개오를 알고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 갈 용기가 없어 멀리 눈치를 보며 따르는 베드로를 이해했습니다. 동전 두 닢을 헌금 통에 넣는 과부의 심정과 신앙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은 마음씨를 가집시다. 또 예수님 닮은 그런 생활을 합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음성에서 들렸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이 음성 속에는 내가 사랑한다는 인정과 너로 말미암아 내가 기쁘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정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 인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으면 참으로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3. 오네시보로는 바울사도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다고 칭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사도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나 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가 가장 어려울 때 그는 멀리 로마에까지 여러번 찾아가 위로하고 도움을 주었던 형제였습니다. 누가복음 7장 1-10절에 백부장의 종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기적을 낳을 수 있었던 사랑이 세 가지로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염려하고 걱정해 주는 일 둘째로 자기를 희생하고 맡기는 결단(당시 세력이 당당한 백부장으로서 무명의 예수에게 자기의 마음을 맡겼음) 셋째 “말씀만 하옵소서”하는 절대적인 신뢰 등이 기적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인간이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①정말로 남을 염려 해 주는 마음 ②자기 자신을 내 맡기는 헌신(commitment) ③상대에게 대한 신뢰(confidence)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양육한다”(love breeds love)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염려해 주는  사랑만이 우리를 서로 곁길로 가지 않도록 방어 해 줄 것입니다. 죄는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있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밀어주고 격려 해 준 사랑 때문에 저는 그런대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첫 째 남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소생시키는 사람이었고, 둘째 남의 진가를 찾아 인정하는 사람이었고, 셋째 다른 사람을 염려해 주고 자기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주는 신뢰하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본문 18절 하단에 “오네시보로가 에베소 교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로의 가슴에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또 하늘나라의 생명록에 그런 찬사가 첨가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업(聖業)을 수행하기 위하여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고 혼자서는 못 삽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절) 고 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면 세쿼이아 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큰 나무는 키가 83m 나 되며 둘레의 길이는 10m 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자랐어도 강풍에 뿌리가 뽑히는 일이 전혀 없답니다. 기이하여 학자들이 조사 해 보았더니 숲에 100그루의 세쿼이아 나무가 있으면 땅속으로 서로 뿌리가 연결되어 엉켜 있었다고 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땅 밑으로 파고들어 어떻게든  뿌리끼리 연합되어 있어서 모진 강풍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깊은 곳에서 서로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신뢰해야만 진정한 연합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끼리끼리 연합은 파당을 만들고 또 다른 상대적인 그룹을 생성하게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쿼이아 나무처럼 표면으로 나타난 부분보다 깊은 속마음으로, 나아가 신앙 안에서 서로가 연합하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어떤 고난이 와도 서로의지하고 버틸 수 있는 돈독한 믿음의 관계로 성장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교회는 저절로 부흥될 것입니다. 우리도 오네시보로 같은 그러한 마음씨를 가지고 서로 섬기고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연합하여 오네시보로가 에베소 교회에서 많이 봉사한 것처럼 그렇게 많은 봉사를 하십니다.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예수님에게 칭찬받는 성도들이 다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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