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처를 기억하라(눅17:28-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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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소돔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노아의 때, 롯의 때와 같다고 하신 말씀으로 롯의 때가 주님이 오실 때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소돔성에 살았던 사람들은 롯, 롯의 처, 두 딸, 사위가 될 자들, 그 외 소돔성의 사람들이 살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돔성은 지금의 세상이며 소돔성의 백성들은 세상의 수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 롯의 처는 육에 속한 성도로 세상으로부터 나왔으나 세상에 마음을 뺏긴 채로 살다가 결국에는 세상을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만 성도입니다.
우리는 얽매이는 것을 다 자르고 허탄한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롯은 천사를 영접하고 천사와 친해졌으며 깊은 신뢰 관계를 맺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도 롯의 처와 롯이 달랐던 것처럼 이 땅에도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아도 서로 생각과 믿음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차이점이 많은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영적 상태가 다 다릅니다.
3. 아브라함의 기도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창18장과 19장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천사 세 명이 찾아 왔습니다.(18:2절) 그리고 아브라함도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롯이 소돔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 덕분으로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으며 롯의 구원이 전적으로 아브라함의 공로임을 말해 줍니다.
(창19:29절: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 보내셨더라) 롯에게는 천사 2명이 찾아왔는데 이것을 구속사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 두 분이시며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이 두 분이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4. 천사가 소돔성에 와서 롯을 찾아갔는데 소돔성에서 천사를 알아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린 사람은 롯 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소돔성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영안이 열린 사람이 롯 한 사람뿐이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목포 도성에 거주하는 크리스챤들은 다 영안이 열려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천사가 롯의 집에 들어간 것을 알고 소돔성의 젊은이들이 몰려와서 문을 열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오늘 너희 집에 들어 간 자를 상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창19:5절) 히브리 원어로 보면 천사들과 성적관계를 맺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음란했으면 천사들을 성적 범죄의 도구로 삼겠다고 했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상은 어떻습니까? 날로 어린이 성추행범죄가 증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하는 장애 학교에서 그 어린아이들을 성적도구로 이용하여 범행한 사건들은 바로 천사와 상관하겠다고 아우성 친 소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습니다.
천사가 소돔 성을 방문한 같은 사건을 두고 롯과 소돔성의 사람들 사이에 이처럼 시각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기야 수영장에 가서 보면 수영을 잘 하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헤엄치는 것을 보면 인어 떼처럼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식인종들이 보면 누가 내 밥에 물 말아 놓았느냐고? 고 한 답니다. 기차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 김밥에 옆구리 터졌다고 아까워한다고 합니다. 소돔성의 백성들은 영에 눈이 감겨 있었기에 천사들까지도 정욕의 눈으로 볼 때 성적도구로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들과는 달리 롯은 의로운 사람이라 영안이 열려서 은혜를 받고 소돔성의 멸망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때를 알았던 것입니다.
5. 천사의 말을 롯의 사위될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드렸습니다.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려고 문을 닫고 상관하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애원했습니다.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창19:7절)고 하면서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자기의 두 딸을 대신 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무지막지한 사람들과 롯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천사들이 롯을 끌어들이고 문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눈을 어둡게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롯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려 하니 지체 말고 이 성을 빠져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라거나 깨닫기는커녕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창19:14)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을 농담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돔성의 백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지금도 가고 있습니다. 그 날이 분명히 오는 것을 알고 롯을 따라간 딸들처럼 인도자의 지도에 잘 따라야 합니다. 사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5.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눅17:32장)
롯의 때에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가장 숭배하는 신은 맘몬신(돈신)이었습니다.
그때, 롯의 가족이 소돔 성을 떠날 때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다고 했습니다. 소돔성이 멸망할 때 롯의 가족은 탈출해 나왔으나 천사들의 “뒤를 돌아보지 말라” 는 경고(창19:17절)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창19:26절) 물론 과거 없는 현재는 없지만 지나간 과거의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오늘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에만 집착하면 내일을 향한 전진을 할 수 없습니다. 롯의 아내가 준 교훈은 설령 세상 것은 잃어버리더라도 생명을 더 소중이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보다는 오늘을 또 오늘 보다는 내일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며 불평, 불만하지 말고 내일 더 잘 할 것을 생각하며 더 좋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롯의 가족을 이끌어 내 주었던 예수님의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영의 눈이 열린 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며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갈 다른 욕심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하는 끈을 과감히 끊어버리고, 복음을 붙잡고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소금 기둥은 욕망의 화신입니다. 나는 슬펐습니다. 물질로 삶의 값을 매기려고 하는 것처럼 자존심이 상한 것은 없습니다.
31년 동안 애쓰고 고생한 노고를 인정만 해 주면 무엇보다도 고마울 따름인데 가격으로 환산하고 어떻게 청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교인들에게 짐이 된 자신을 생각하면 요즈음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일찍이 저축도 좀 해 놓고 살 궁리를 했더라면 부담 없이 깨끗이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 주변머리 없이 살아 온 자신이 심히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현실이니 어떡합니까? 이제 와서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이 종의 아픈 마음을 십분 이해하시어 마치 돈만 밝히는 삯군 목자로 보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좀 대접한다는 차원에서 은혜스런 이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롯의 아내처럼 되지 않고 싶습니다.
우리 롯의 사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받지 맙시다. 롯의 아내처럼 두고 온 것이 아깝다고 뒤 돌아보지 맙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해 주신 주님의 말씀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천성을 향해 나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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