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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신 하나님(요1서4:7-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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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4,788회 작성일 11-09-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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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일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사도요한이 기록한 책으로 매우 아름답고 귀한 보석 같은 성경 말씀입니다. 요한 일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한 마디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8절)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오, 사랑으로 우주를 창조하셨고,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인간을 죄의 사슬, 멸망의 구덩이에서 구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셋째 그러기에 사랑의 하나님, 사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당연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지상 명령이며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사도요한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8절하)

하나님은 저주하고, 책벌하고 심판하려는 신이 아니라 용서하고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신입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라”(요3:17)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을 “탕자의 비유”를 들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못 된 아들도 오래 기다리는 아버지 같은 분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돌아오기를 전부터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계시는 넉넉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의 잘못을 캐묻고 따지지 않으신다.

그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잔치를 베푸시는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방탕하게 산 아들의 도덕적 수준에 구애받지 않는 높고 넓은 하늘과 같다. 하나님은 의로움을 주장하는 맏아들보다 눈물로 회개하는 탕자를 더 기뻐하시는 아버지시다.

1936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거리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의 사랑입니다. 그 당시는 대 영제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입니다. 윈저공, 에드워도 7세는 대영제국의 왕이 된지 8개월 만에 왕관을 벗어던지고 스페인으로 달려가 이혼녀인 왈리스 심프슨 부인과 결혼했습니다. 심프슨 부인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슬픔이 있을 때마다 에드워드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했다. 나는 잠시라도 슬픔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세상의 몇 명의 여자가 왕관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고 왕국보다도 나를 더 귀중히 여기고 그 막대한 권력과 재물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윈저공의 사랑과는 비교도 안 되는 놀라운 희생과 낮아짐과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 고백의 내용을 들어보세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자기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절)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생기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요한 일서의 메시지는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죄의 사슬, 멸망의 구덩이에서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요일서4:9-10)

19세기 버지니아 주 흑인 노예들 사이에 번진 전설이 있었습니다. 장차 그레나다 섬에서 무라토(mulatto)라 불리는 구원자가 나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완전한 자유를 준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무라토는 아버지가 흑인이고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했습니다. 노예의 서러움과 고통을 정말 이해 해 주고 도와 줄 수 있는 구원자는 그 자신이 흑인이며 노예가 되어본 자라야 하며, 구원자로 나타날 무라토가 그런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라토는 이미 2천년에 인류 앞에 등장하였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립니다. “나를 참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주신 사랑 때문에 내가 버림을 받지 않고 이만큼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압니다. 예수님만큼 참아 본 사람, 예수님만큼 빼앗겨 본 사람, 예수님만큼 멸시 받아본 사람, 예수님만큼 고독해 져 본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당하신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더 너그러워야 하고, 더 참아야 하고, 마음이 넉넉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난해도 슬프지 않고, 부한 사람도 부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깨닫기 때문에 섬길 수 있고, 희생할 수 있고, 낮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못된 사람들이 또 하나 더 범하기 쉬운 무서운 죄의 위험성이 자기는 못된 짓을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저런다고 욕합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까지도 자기는 희생하지 않으면서 남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자기는 더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것을 빼앗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것도 못 참느냐고 그 정도도 희생 못하느냐고 남의 희생만 강요합니다.

그것은 더욱 잔인한 죄악입니다. 항상 자신이 먼저 낮아지고, 깨어지고, 희생하되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크리스챤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래서 요한 일서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난 사람이고, 하나님을 안다”(요일서 4:7절하)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이다.”(요일서4:12절)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도 그 사랑 안에 계신다.”(요일4:16하)고 말씀했습니다. 또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요일4:20)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한 헌신, 꾸준한 인내, 대상을 가리지 않는 포용, 말에서 끝나지 않는 실천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 섬기고 용서하고 받아주고 꾸준히 참고, 가난한 자, 약한 자,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나를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 사랑을 요구하지 않고 예수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지 않는다고 요한 서신은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시끄러운 꽹과리 같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13:1-2절) 고 성경은 정의 했습니다. 곧 사랑은 나의 가치를 판정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한 사랑의 내용은 너무도 잘 알려졌지만 정말 내가 사랑하며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지 점검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봉독 해 봅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13:4-7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과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마땅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요한1서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기본정신아라고 했습니다. 곧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율법과 선지자들의 대 강령이라고 확실하게 강조하셨습니다.(마22:40절)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누가 안 되기를 바라는 못된 마음이 잘 되기를 축복하는 사랑으로 바꾸어지게 하소서.

받기만 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주고 만족하는 사랑으로 바뀌어지게 하소서. 시체처럼 싸늘하게 사느니 뜨겁게 사랑하며 하루를 살게 하시고, 거짓, 사랑과 형식적인 사랑을 반복하느니 한 번만 이라도 진실 된 사랑을 퍼붓게 하소서 말로 떼우는 백번의 사랑보다 행동으로 증거 하는 십자가의 사랑을 주소서.

의무를 다하는 율법적인 인간보다 사랑을 다하는 타 버리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선행을 광고하는 바리새인보다 말없이 희생하는 사마리아인이 되게 하소서. 풍파를 일으키는 못된 마음, 나쁜 말 전하는 못된 마음, 편을 가르는 잘못된 마음, 뒤에서 헐뜯는 삐뚤어진 마음을 말끔히 청소해 주시고, 그 자리에 사랑과 인자를 심어주소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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