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8:16-20절 제목: 주께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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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봉독한 본문은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했습니다.(18절) 그리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것과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맨 나중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강조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몸 깨뜨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이 땅에 오시어서 말씀하신대로 항상 우리가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서 한시 반시도 떠나지 아니하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지혜와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방패와 병기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 임금이 고백했던 것처럼 나의 반석이요, 요새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시오, 구원의 뿔이요 산성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시18:2절)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다윗처럼 모든 염려를 주께 맡깁시다.
1.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을 향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식을 저장할 창고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매일 매일 하늘을 쳐다보며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굶주리지 않고 하늘의 만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를 진격하던 오합지졸의 군대, 그들에게는 변변한 무기하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빈손으로 그냥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들은 창검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여리고 성은 시골 산동네 담벼락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적지를 가 보면 지금도 성터가 엄청 넓습니다. 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여리고는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고 성벽 두께가 무려 9m였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6일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다가 마지막 날 일곱바퀴를 돌면서 나팔소리와 함께 백성들이 함성을 지를 때 성벽이 아르르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믿음만 있다면 기적도 상식이 되지만 믿음이 없으면 백 바퀴를 돌아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포기 했습니다. 창검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모든 전쟁의 승패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여리고 성민들은 성을 함락시키겠다는 사람들이 돌맹이 하나도 던져보지 않고 성 주위만 한 바퀴씩 도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웃겼겠습니까? 얼마나 미련하게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절대 순종한 여호수아 군대는 최후에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 바알을 섬길 것인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하나님을 섬기려면 또 그의 절대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잘 났느냐? 얼마나 부자로 사느냐?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청지지가 올바른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면 순종만 하면 됩니다. 종이 자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그 주님이 오늘도 여러분의 구주되심을 믿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 성 같은 문제도 겁낼 것 없습니다. 결과를 주께 맡기고 순종만 하시기 바랍니다. 성을 무너뜨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버려 두시기 바랍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어떤 분들이 변비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봅시다.
그분들은 긴장하여 계속 먹기는 하는데 배설하지 않고 견디기만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버리지 않으면 변비처럼 굳어집니다. 피도 계속 우리 몸속을 순환하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고름이 되어 썩습니다. 어떤 일에 스트레스(억압)를 받아도 흘려보내야 내가 삽니다. 그것을 적당히 해소 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병이 됩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계속 흘러 보내지 않으면 우울증이나 편집 중에 걸립니다. 어떤 일을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계속 고민하면 우울증이 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뇌신경에 이상이 생겨 매사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뇌의 회로만 작동하게 됩니다. 편집 중에 가장 흔한 것은 피해망상인데 그것은 지나치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경향 때문에 생깁니다. 그들은 타인의 말이나 몸짓, 손짓 등을 자기에 대한 고의적인 무시, 경멸, 비웃음 등으로 오해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교훈적이고 영적인 설교를 들으면서도 히죽히죽 자기도 모르게 웃습니다. 그 증상이 심해지면 사실은 그렇지 않는데도 남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고 지속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치유는 간단합니다. 내 버려두면 됩니다. 비틀즈 음악 중에 “Let it b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은 “편하게 생각하라, 순리대로 살아라 그냥 그대로 두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해석이 잘 안 되면 내 비둬! 내 비둬!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도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버려둡시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너무 집착하면 야곱과 같이 험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집착이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이요, 고집이요, 불순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한 이삭은 삶이 형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에게 집착했고, 야곱은 장자권에 집착했고, 모세는 자기 동족에게 너무 집착하다보니 살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집착하면 그것이 우상이 되고, 교만이 됩니다. 고통스런 고집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이상은 점점 우상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픔을 견디면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 내려 놓았을 때 진정한 열국의 아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도 요셉과 베냐민을 포기함으로서 애굽의 총리대신을 아들로 얻었습니다. (창43:13-14)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아들을 포기하고 나일강에 버림으로서 자기 아들을 애굽의 왕자로 키우는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자기 목숨을 포기 했을 때 가장 비극적인 날을 민족을 살리는 승리의 날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 4:16절) 욥도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과 육신까지 포기했을 때 갑절의 축복인 원 플러스 원 (갑절)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약의 세례요한도 아버지 사가랴의 뒤를 이어 화려한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광야로 갔을 때 신구약 중간기 400년의 긴 침묵을 깨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을 묵상합시다. 그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늘의 영광을 다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이 세상으로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려놓은 연습인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제 편해지고 싶습니까? 가벼워지고 싶습니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버려두시기 바랍니다. “Let it be Let it be"라고 노래한 것처럼 내 버려두세요.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증언하신 그 주님께 이제 좀 속 시원이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왜 그리 염려하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고 당부하셨습니다.
3. 믿음은 자기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삿17:6, 21:25) 도덕적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가 400년간 지속됩니다. 왜 사사 시대를 “실패의 시기”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가나안의 풍요와 고도로 발달한 문화, 그리고 풍요의 신 바알(물질)종교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 해 물질주의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가난한 마음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이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자기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내 것을 버린 후 썩어지고 죽어야 열매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왕궁에 있었을 때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쓰시기에 적합하도록 40년동안 광야에서 교만과 고집을 버리게 하신 후 쓰셨습니다. 강이나 계곡 바닥에서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우리도 구르는 연단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교만의 이끼들이 붙지 않게 하려면 강가의 돌처럼 구르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고난을 통해 우리를 쓰시기에 적합한 상태로 만드십니다. 엘리야도 광야에서 스스로 죽여 달라고 할 만큼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을 맛보았습니다. 다윗도 실패를 맛보고 광야에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바로는 교만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고 버티다가 열 가지 재앙을 자초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끝도 없이 추락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몸을 낮추어야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내려놓아야 쓰임받는 인생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심풀이 동무 역할로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픔을 아시고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인생 짐을 대신 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Let it be!" 내버려둡시다. 순리대로 삽시다. 편하게 삽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절) 우리의 무거운 짐을 모두 주께 맡깁시다. 여러분들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Let it be!" 내버려둡시다. 주님께 맡겨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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