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신앙인격(마1: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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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위에서 우리 기독신자들의 가장 큰 소망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요셉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요셉이란 이름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긴 자” 란 뜻과 “더 많은 복을 받은 자”란 뜻이 있습니다. 요셉은 정혼한 처녀 마리아가 잉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습니까? 얼마나 절망감을 느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이름의 뜻대로 그것을 이긴 사람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처럼 그랬기에 기적적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모셔 내린 육신의 아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의인만이 아니고 성경이 증명해 준 의인이었습니다.(19절) 금이 뜨거운 불속에 들어갈 때 그 진가가 드러나듯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해 보아야 그 사람의 고상한 인격이 드러납니다. 진정한 신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세상의 헛된 욕심이나 불순물이 타 버리고 진정한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믿어준 마리아에게 평생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구세주 예수님을 세상에 오시게 하는 주역을 맡은 보람과 기쁨 속에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겠습니까? 물론 그때는 몰랐겠지만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인격자였습니까?
1. 마음이 넓은 인격자였습니다.(마1:19절)
요셉은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처리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세상에서 조그만 일에 배신당해도 억울하고 분해서 밤잠을 잘 수 없고 쫓아가 패 주고 싶을 텐데 그렇게 믿고 사랑했던 약혼녀가 잉태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그런 경우에 사실이 드러나면 죄인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언덕에서 떨어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져 돌무더기를 만들어 버리는 시대였습니다. 만약 요셉이 이 사실을 발설만 하면 약혼녀와 태중에 있는 죄 없는 아이가 꼼짝없이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분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다면 정말 큰 실수를 범할 뻔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올 수 없게 만들 뻔 했습니다. 조금만 경솔했다면 오늘날 교회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생명의 소중성을 안 요셉의 넓은 마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도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경고했습니다. 교회는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의 경거망동한 행위로 한 영혼이라도 실족할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참으로 요셉의 신중했던 처사를 생각해 보면 과연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 해 줄 만한 넓은 마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 요셉은 손해를 혼자 감당할 줄 아는 인격자였습니다.
19절에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내용을 음미해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했는데 그녀를 데려오면 자기도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끊기는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끄럽게 안 끊고 자기 혼자 당하고 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일은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처녀가 아이 밴 것은 절대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약혼이 파기되면 아무 죄 없는 요셉만 죽일 사람 됩니다. 본 동네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입니다. 노총각 목수가 결혼준비를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나만 병신 바보 되고 말자 그래서 가만히 끊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하고 분해도 참아야 합니다. 손해당하고 가만히 끊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적은 손해 때문에 싸우면 더 큰 손해를 당합니다. 적은 손해 때문에 싸우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더 큰 웅덩이에 스스로 빠집니다. 옛날 가정에서 흔히 일어난 싸움거리가 무엇이었습니까? 밥 먹다가 돌을 깨뭅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시에 돌 고르는 기계가 있었습니까? 쌀을 잘 씻을 충분한 물이 있었습니까? 또 여자들이 얼마나 바쁘고 고달팠습니까? 오히려 밥 짓느라고 고생했다고 안쓰럽게 생각해 주었어야 합니다. 얼마나 바빴으면 조리질을 충분히 못했을까? 뼈 말리는 마당이 모래가 많아서 그럴 수 있겠다고 조금만 너그럽게 이해 해 주면 얼마가 좋겠습니까? 그런데 냅다 소리를 지르고 반찬 접시가 날아갑니다. 즐거워야 할 식사 분위기는 곧 전쟁 마당이 되어버립니다. 아내와 며느리는 그렇지 않아도 죄송해 죽겠는데 어른들이 그렇게 나오면 야속합니다. 정이 삼천리 밖으로 달아납니다. 그런 적은 일 하나 때문에 평생 사랑의 통로가 막혀 버려서 시베리야 벌판처럼 싸늘한 가정생활이 되고 맙니다. 조금만 참고 이해 해 준다면 모두 포근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인데 복을 방망이로 깨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물질, 명예, 심리적 손해를 당했다고 또 싸우면 더 큰 손해를 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갚아 주시면 좋고, 안 갚아주시면 내가 손해를 보고 말자” 그런 심정으로 요셉은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며 참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 해 보세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찮은 일이라도 헛소문이 돌고 억울한 말을 들어 보세요. 정말 참기 힘듭니다. 당장 전화로도 한 판 붙고 싶고 쫓아가 따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자들하고 싸워서 무엇 하겠습니까? 마음이 좁아 터진 사람들하고 시비해서 무슨 덕을 보겠습니까? 지금 참으면 언젠가는 사실이 다 들어날 것인데 지금 싸우면 영원히 풀리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평생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참아야 합니다. 참기 힘들어도 참아야 합니다. 싸우면 박 터져도 참으면 알아줄 날 있습니다. 참기 힘들어도 서로 참으셔야 합니다. 그런 때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요셉은 참으로 참을 수 있는 일을 참았기에 의로운 사람입니다. 자기 혼자 손해보고 말겠다는 그 마음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3. 깊이 생각하는 인격자였습니다.
20절에 “이 일을 생각할 때”라고 했습니다.
1) 요셉은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생각하는 인격자였습니다.
사람이 생각 없이 돌을 하나 던진 것이 남의 집 장독을 깨트릴 수 있고, 호수에 던져지면 개구리가 죽을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한 말 한마리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 공동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추측해서 하는 말이 남의 생명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고 깊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분 한 것, 억울하다는 생각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차간 더 큰 손해를 보지 않을까? 그는 선한 목적을 놓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우선 추측으로 엉뚱한 판단을 해 놓고 자기는 손해 보지 아니하려고 갖가지 수단을 강구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 영광이냐? 욕이냐? 사람의 생명에 유익이냐? 손해냐? 어떻게 해야 후세에 많은 사람이 올바로 처리했다고 인정할 것이냐?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도 살다보면 생각 없이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깊은 자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요셉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생각하는 인격자 였습니다.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마1:19-20) 이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살폈다는 뜻입니다. 이제 요셉은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생명의 존엄성을 알아 마리아와 태중의 생명을 죽일 수가 없어서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미 받은 손해를 내가 보고 끝내리라”고 깊이 생각하며 의논하였으니 사람인 요셉이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나타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 큰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할 일만 다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때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다 쏟고도 못다 한 일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요셉이 드러내지 않고 혼자 손해를 보려고 깊이 생각할 때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20-21절) 그래서 요셉이 천사의 지시를 받고나니 그 시간에 요셉의 마음에 있던 근심, 의심, 공포가 모두 봄 안개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요셉의 감정은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말씀에 즉시 순종했습니다.(24절) 즉시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한 번에 알아보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랬더니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만고에 영광스러운 인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주저하지 말고 즉시 순종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봉사자는 희생심으로 그 열매를 맺습니다. 요셉은 이긴 사람입니다.
환경을 이겼습니다. 자신을 이겼습니다. 유혹을 이겼습니다. 괴롭고 억울한 일을 모두 이겼습니다. 이겼더니 큰 복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요셉처럼 믿음의 인격자들이 이미 받은 복을 누리고 더 큰 축복을 받으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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