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일하는 교회” 요 9: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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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곳에는 늘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①이 일을 통해서 얼마나 돈을 벌 것인가(이익을 볼 것인가) 노리는 사람 ②이 사건이 왜 발생 했는가 잘못만을 따지는 사람
③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는 이 일에 무엇으로 도울 수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죄 문제를 묻는 제자들에게 답변 대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냈으니 우리가 이 일을 하여야 하리라” (3-4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어느 때든지 자기가 할 일거리를 찾아 말없이 실천해 가시는 예수님의 생활 철학을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3:11절)라고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걱정 했던 것처럼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금년도(2012년)의 표어가 무엇입니까?
“도약하는 해”입니다. ①서로 좋은 이웃되자(눅10:38절) ②사명 감당에 충실하자(계2:10절) ③일어나 다시 뛰자(사40:31절) 이제 더 이상 일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더 이상 걱정 근심으로 움츠리고 있지 맙시다. 이순신 장군은 상유 십이(常有 十二) 정신으로 겨우 남은 배 열 두 척을 보고 한숨만 짓고 있지 않고 다시 시작하여 명랑대첩의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정신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 냈을 뿐 아니라 세계 해전 역사상 기적 같은 승리를 남기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금년에 다시 도약합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어떠함을 보여줍시다. 교회사에 새로운 귀감을 보여줍시다. 아무리 사탄이 흔들고, 이단이 광란해도 하나님의 교회는 허물 수 없음을 증명 해 줍시다. 현대 교회가 어떻게 일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提示) 해 줍시다.
1.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교회는 남의 허물을 따질 여유가 없습니다.
자고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남의 허물을 들추고 다닙니다. 아니 허물이 아닌 것까지 만들어서 동네방네 헛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남이 못되고 쓰러지는 것을 고소하게 생각하며 속으로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남의 약점을 넘본다거나 없는 허물까지 만들어 낼 시간도 없고 또 그런 일에 흥미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의 일에 방해가 안 되도록 자기 일에만 충실합니다. 금년에는 일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일을 하는 사람, 일을 하는 교회가 됩시다.
2.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교회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 행위도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보다 앞설 수 없으며(막2:27) 어떤 전통이나 규칙도 인간의 존엄성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소자 하나를 중히 여기는 신앙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마25:40) 내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생각 없이 불평 원망하고, 생각 없이 행동할 수는 있으나 만약 소자 하나라도 나의 무심한 행위에 상처를 받을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생명이 귀하면 남의 생명도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느냐만 타령하지 말고,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대접을 해 주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교회는 예수님처럼 먼저 사람을 존중합니다.
사람의 존엄성을 우선시하며 서로를 배려할 줄 압니다.
3.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교회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맹인을 보고 제자들처럼 “그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인가?” 따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눈을 뜨게 해 줄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맹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본질을 떠나 궁금증만 가지고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신랄하게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맹인을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요 그가 맹인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3절) 또 이러한 때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별의별 소문을 쏟아냅니다. 그 사람의 약점을 다 들추어내며 흉을 봅니다. 잘했던 것은 다 덮어두고 자기에게 서운하게 했던 일을 뻥튀기하여 말을 만들며 오히려 재미거리로 삼습니다. 우리는 남을 죽이는 일을 흥밋거리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더더욱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워놓은 교회를 파괴시키는 일에 끼어들면 큰일 납니다. 남이 죽을 때 나도 죽습니다. 교회가 손상 간만큼 나도 상처받습니다. 우리는 파괴자가 되지 말고 건설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을 죽이는 자가 되지 말고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엎어버려, 죽여 버려”라는 말 대신에 어떻게 하면 살릴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맹인을 보고 조상의 죄까지 들추어내려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은 한심스러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이 바로 일할 때라고 하시면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작업을 착수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듣는 종교만이 아니라 보는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여주는 일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①우리의 신앙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령한 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엡 1:3절)
②우리의 신앙을 보고 다른 사람이 용기와 소망을 갖도록 보여주어야 합니다.(빌4:13)
③우리의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요1서 4:20-21절)
④우리의 신앙을 통하여 은혜 받은 청지기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벧전4:7-10절) 이제 우리는 나면서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앞에 놓고 흥미삼아 엉뚱한 궁금증으로 논쟁하던 제자들 같이 되지 맙시다.
그들은 맹인의 고통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정녕 그 맹인은 자기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남의 고통과 답답함, 억울함을 곧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달리 그 맹인도 밝은 세상을 보게 해 주어야 하겠다는 뜨거운 사랑이 끓어올랐던 것입니다. 그 맹인도 우리처럼 눈을 떠서 보아야 했습니다. 그 본질을 떠나 쓸데없는 논쟁을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첫째 우리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합니다.
본질을 떠나 다툴 시간 없습니다. 논쟁할 시간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낮이라고 했습니다.(4절) 이 말은 밤이 곧 올 것을 암시합니다.
밤은 일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합니다. 일은 기회를 놓치면 후회를 하게 됩니다.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랑이 와서 문이 닫혔을 때 기름 준비 못했던 다섯 처녀가 아무리 소리쳤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여러분! 후회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후회 없이 일하는 교회가 됩시다. 어려울 때 일꾼이 진정한 일꾼입니다. 생명을 아끼며 먼저 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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