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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염려하는가?(마 6:30-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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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1,464회 작성일 11-09-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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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국의 대학 심리학 팀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40%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걱정거리 중 30%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고 진짜로 걱정 할 만 한 것은 불과 8% 밖에 되지 않는데 8%중에서도 정말로 머리를 싸매고 걱정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무서워했습니까?(마8:23-27절)

마태복음 8장 1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그의 장모의 병을 고쳐주고, 많은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모두 고쳐 주신 내용들이 나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마8:18) 물론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도 같은 배에 타고 계셨는데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파도가 배를 삼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피곤하셨던 예수님은 그 풍랑 속에서도 깊은 잠에 빠져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너무도 겁이 나서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 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잠에서 깨어난 예수님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말씀하시며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언제 풍랑이 있었는지 모르게 금방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공포 속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그처럼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을까요?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고 놀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마8:27) 왜 예수님과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그처럼 무서워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기적을 목격했으면서도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말대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한 바로 그 분이 예수님 자신 인 것을 가르쳐 주셨으나(마8:17) 건성으로 들었기에 제자들에게 깊은 신앙이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몰랐기에 제자들은 무서워했습니다. 믿음이 적었기에 무서워했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바람과 바다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몰라서 바로 믿지 못했기에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바로 자신들과 함께 배에 타고 계시는데도 자기들을 삼키려하는 풍랑만 바라보았기에 공포에 떨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정말 어처구니없는 염려와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제 더 이상 쓸데없는 염려 걱정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고 책망 받지 마십시오. 땅 꺼지게 많은 걱정을 해도 걸러보면 불과 8%도 안 됩니다. 우리는 공연한 걱정 때문에 얼마나 불안 해 합니까? 밤잠을 설치며 걱정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남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눈꺼풀만 늘어지고 몸이 노곤하여 할 일도 못하고 병만 처집니다. 그렇게 세월을 먹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무서워하는 병의 원인은 불신앙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배 안에 계셨는데도 무서워했던 제자들 같이 무서워하지 맙시다. 바다와 풍랑도 순종하는 그 예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 염려를 끝냅시다.

유명한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 죠지 물러는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 염려가 끝나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 신앙은 끝난다.”고 했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염려를 이기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모든 염려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0-31)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적인 염려를 다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불확실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고 예수님은 쓸데없는 염려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염려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라도 브레이크를 밟고 있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언덕을 잘 내려가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아 보세요. 그것이 파열되면 큰 사고를 당합니다. 염려는 결코 염려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일을 망칩니다. 친한 사이끼리 싸움도 생길 수 있고, 자신의 영과 육에 심각한 병이 발병합니다. 인생살이에서 지나친 염려는 지나친 문제만 발생됩니다.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 신앙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염려를 끝내고 싶습니까?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 염려가 끝납니다. 예수님을 믿되 바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깊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많이 기도하세요. 더 많이 말씀 공부에 열심 하세요. 예배생활에 충실하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자기가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신앙에서 옵니다. 왜 남을 탓합니까? 그럴 시간 있으면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먼저 착한 행실로 믿는 사람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할 일을 감당 못하고 안절부절 병에 걸려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률이 1등인 것을 아시지요. 그것은 그만큼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울증은 쓸데없는 염려에서 오는 병입니다.


3. 이제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불가지론자입니다. 셋째는 돈 만 있으면 된다는 유물론자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안 계셨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며 우리에게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자신을 보여주셨다는 신앙인입니다.

여러분은 안절부절 엉거주춤한 불확실한 신앙인들이 되지 마시고 다섯 번째 사람들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안에도 “어떻게 하나보자”고 노려보는 구경꾼이 있고, 나는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이곳에 보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매사에 솔선수범하여 일하는 일군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더 의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은 성공 같으나 멸망의 길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실패한 것 같으나 결국은 성공합니다.  하나님이 누구편인가 보자는 것도 좋지만 링컨대통령처럼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도록 믿고 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사람이 살다보면 밤잠을 설칠 만큼 심각한 일도 있고, 떨쳐 버리려고 하면 더 무거운 고민거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걱정거리는 걱정거리일 뿐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풍랑을 만났던 제자들이 무서워함으로 바람과 풍랑을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까?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 염려가 끝나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 신앙이 끝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라”고 했습니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지혜를 구하며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잠2:2, 4절)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막9:27절)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3-2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녁 내내 염려하고 잠을 설쳤으나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만 아픈 쓸데없는 염려는 이제 그만 합시다. 걱정할 시간 있으면 일거리를 찾고, 불평 원망할 시간 있으면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쁨도 내게서 나고, 미움도 내게서 나는 법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 받을 일을 하면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만 깨우면 해결될 것을 왜 염려 하십니까? 모든 염려는 가을바람에 다 날려 보내 버리시고 가을꽃 내음 같은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 풍성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국화를 제외하고는 가을꽃은 대개 향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봄꽃에 향기가 더합니까? 춥고 싸늘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여러분의 신앙도 계절은 가을이지만 봄꽃 같은 향기를 내 뿜게 될 줄 믿습니다.

모든 염려는 가을바람에 날려버리고 개척당시 외쳤던 표어처럼 예수님의 사랑이 풍성한 교회도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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