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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6:1-13절) 한탄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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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281회 작성일 12-05-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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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모두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다고 흡족해 하셨습니다.(창1:10, 12, 18, 21, 25) 특히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6:31절)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가장 요긴한 부분을 끝내어 일을 완성시킨 후(finishing touch) 보람을 느끼고 만족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최후에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본문(창6:7절)에 보면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하시니라"고 하셨고 6절에 보면 "한탄하신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까지 근심하시고 한탄하실 정도의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을까요? 그것은 급속도로 발전과 번영을 가져오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자 인간들은 육신의 안일과 향락에 빠져서 하나님의 형상인 영성인 거룩성을 잃어버린 채 오직 짐승처럼 육체 중심으로만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땅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고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서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영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가 되어 동물적 본능을 쫓아 살게 되었고 세상은 점점 죄악이 관영해졌던 것입니다.

1. 번성할 때가 문제였습니다.

본문 1절에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했습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면서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영성은 고사하고 이성적인 판단력마저 상실한 채 그저 육적인 쾌락만을 추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육신의 부모마저 무시 해버렸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인간다움의 특성을 포기한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6:3) 하시면서 크게 실망하셨으며 그때부터 사람의 수명은 120년이 되리라고 한정 지으셨던 것입니다. 도가 도면 비상도(道가 道면 非常道)라고 도가 아무리 옳고 좋아도 도가 넘으면 도가 아니듯이 인간에게 부어주신 복도 복이 넘치면 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화(禍)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적을 행하실 때 빌려 온 그릇들에 기름이 가득 찰 때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도 감당할 만한 은혜가 좋습니다. 축복도 감당할 만한 축복이 좋습니다. 능력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좋습니다. 권력도 감당할 만한 권력이 좋습니다. 자기 분수에 지나친 것이 오히려 짐이 되는 경우가 많고 자기 믿음에 지나친 은사로 인해 교만해 지기도 하며 자기 그릇에 지나친 축복은 쉽게 박살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모든 것에 정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를 벗어나고 한계를 벗어나고 절대치를 벗어나면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듯 사고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찬란했던 애굽이 왜 망했습니까? 찬란했던 앗수르가, 그렇게 강성했던 바벨론이 왜 망했습니까? 번성했던 메데와 바사가(페르시아)가 왜 망했습니까?

그들은 모두 번성했을 때 수위 조절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창세기 노아시대에도 번성(繁盛)했을 때가 문제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무엇을 달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감당할 만한 믿음의 그릇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축복을 주어도 축복을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아니 감사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굴은 잠언서 30:7-9절에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내가 배불러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으로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자기 성찰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노아시대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크신 능력을 잘못 사용하여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섰다 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번성했을 때가 문제인 것을 깨닫고 항상 근신하는 믿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하나 됨이 문제였습니다.(2절)

성경에는 똑같은 아담의 자녀를 두 부류로 분류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들(셋 계통의 영의 자손)은 택한 백성들(벧전2:9절)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절), 거룩한 나라(벧전2:9), 중생한 사람들(요3:9),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요1:2)이며

(2)사람의 딸들(가인 계통의 육의 자손)은 세속사람, 음녀, 불신자,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생김새는 세상 사람과 같아도 그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요일2:15-17, 고후6:14-18, 고전6:12-20) 사람에게 있어서 만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것도 특히 누구와 만나느냐는 더욱 중요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들(경건한 셋 계통의 영적 성도들)이 사람의 딸들(불경건한 가인 계통의 멸망 받을 자)과 사는 세상이지만 결코 동화되어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과 짝하다 보면 ①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상실해 버립니다. ②마귀와 가까워집니다. ③영성을 잃어버립니다. ④육의 것만 생각합니다. ⑤세상 것에 얽매입니다. ⑥세상 것에만 몰두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망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막다른 길목까지 가버린 시대요,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다고 평가하셨던 인간에게 이제는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가족과 방주 안에 들어간 짐승만 빼놓고 다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에 과감한 영적 자리바꿈을 해야 합니다. 우상의 땅 갈데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떠난 아브라함처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처럼,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송환된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도 죄의 자리에서 과감히 일어나서 의의 자리로 영적인 지각 변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3. 성령과 육체의 관계를 생각 해 봅시다.

본문 3절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갈 5:17저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하게 창조되었으나 마귀의 역사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육을 통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영성을 잃어버린 타락한 인간은 육신의 소욕만 탐한 나머지 점점 육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소욕은 ①사람을 그대로 놓아두면 점점 짐승이 되어갑니다. ②사람은 그대로 놓아두면 자꾸 태만해집니다. ③사람은 그대로 놓아두면 본능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본능을 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쫓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육신을 통해 영에 일을 멀리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육의 지배를 받느냐 영의 지배를 받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나 여러분이 육에 속해 있으므로 육신의 요구를 받기 쉽고 영성을 추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고 또 바울사도를 통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노아시대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시대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 제사장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했습니다.(삼상4:21-22) 또 바울이 불순종할 때도(삼상15:23), 다윗이 범죄할 때도(시51:11), 삼손이 향락에 빠질 때도(삿16:19-20) 발람 선지지가 물욕에 사로잡힐 때(벧후2:15), 엘리사의 생도가 부주의 했을 대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왕하6:5)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인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시대가 예수그리스도의 계절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게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육신의 삶이 요구하는 대로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성령을 쫓아 살아갑시다. 예수님은 세상이 차가울 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찾습니다. 고난의 겨울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번성할 때 조심합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분별없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만 보고 좋아할 때 죄악이 관영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면에서 사람을 쓸어버릴 작정을 하셨던 것입니다.(7절)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3절) 그러나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런 시대에도 의인이었습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였기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셨습니다.(9절) 그래서 노아의 가족 모두는 구원받았으면 노아를 통하여 구원의 방주 짓게 하셨고 인류 구속사를 새롭게 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해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이 내 속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충만해야 합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성령 충만 받기 위해 계속 기도합시다. 성령 충만 받아 이제 하나님을 한탄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노아처럼 크게 축복받고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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