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가정(시127: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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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건 사고가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 우리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정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의 근본 원인은 바로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흔들린 사람이 직장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고, 깨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나라와 민족 뿐 아니라 모든 인간 세상의 기초요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번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요,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히 기독교인들의 가정과 어린이 양육에 대하여 성경을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가정이란 무엇입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가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삽니다. 그냥 남자와 여자가 좋으면 같이 사는 것이 가정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신 것은 깊으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축복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으면 동물적 번식으로 끝나고 맙니다. 목적이 분명해질 때 그 가정이 가치 있고 존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부부는 영적 동반자(soulmate)입니다. 하와가 지어진 후 아담은 아내를 향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원리가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실 때 따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인격적,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멸시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자요, 남편을 무시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만 잘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부모를 떠난 영적인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속박되거나 의지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부부가 함께 인생을 개척해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부는 촌수가 없습니다. 무촌입니다. 완벽하게 영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슬픔, 아픔, 괴로움 절망이 있을지라도 이 세상을 함께 헤쳐가는 soulmate(영적동반자)인 것입니다.
2. 자녀는 축복의 선물입니다.
이 땅에는 천륜(天倫)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 자녀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27편 3절부터 5절 말씀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 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탈선이 점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따뜻한 안식을 누려야 할 가정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느끼기보다 불평과 원망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이나 교회생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본인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근본원인은 가정에서 사랑이 아닌 억압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산처럼 느끼며 힘들게 삽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달은 5월 뿐 아니라 1년 열두 달 가정의 달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을 떠나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터놓고 서로 위로 받고 싶은 곳이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먼저 배려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인격적인 공동체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이면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신앙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도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죄악을 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 교육은 특별한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억지로 주입시키고, 억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들의 삶의 모습 이상 더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가정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자녀를 하나님의 상급으로 잘 양육하는 축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는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1) 지나치게 과잉보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태중에서부터 기도로 양육해야 합니다. 되도록 어려서부터 바른 신앙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는 17자녀를 키우면서 1세 때부터 매를 무서워하는 아이들로 가르쳤고 우는 법과, 고집을 꺾는 법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수잔나는 “자녀들의 나쁜 버릇을 즉시 꺾어 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제멋대로 하도록 버려두면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17자녀를 믿음으로 모두 훌륭하게 기른 것은 그저 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보호는 하되 과잉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자녀들을 제멋대로 버려두면 부모들은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고 구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성경을 기본 교과서로 가르쳐야 합니다.
딤후3:15-17절까지 같이 봉독합시다. 성경으로 자녀를 바로 가르치면 사람이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있으나 능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자녀들에게 세상 지식만 너무 강요하지 말고 사람이 바르게 사는 근본원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경쟁사회에서 학교 교육이 지나치다는 것을 아셨으면 부모님들과 어른들이 좀 더 노력하여 교회생활에 소홀히 하지 않도록 신앙교육에 힘을 씁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 손들이 점점 신앙에서 멀어져 가며 엉뚱한 세상 문화에 지나치게 편향해 가는 것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따라오며 우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식을 위하여 울라” 고 하셨겠습니까? 궤도를 벗어난 열차처럼 무분별하게 믿음의 도에서 탈선해 가는 이 세대를 보면서 우리 함께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자녀들과 차세대의 주인공들인 청소년들을 위하여 더욱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아이를 건설하근 것이 어른을 수리하는 것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성경말씀으로 신앙교육을 바로 시킵시다. 그 길이 인륜의 희망입니다. 빛을 따라 가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자녀들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에 오히려 십일조 헌금을 드리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자녀들을 위해 하늘나라에 더 많은 투자를 하십시오. 록펠러는 그의 할머니가 12세 때부터 철저하게 십일조 드리는 법을 가르쳤답니다. 그 믿음의 정신이 그를 세계적인 부호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고기만 주시지 말고 진정 사랑하신다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은 정신이요, 정신보다 더 귀한 것은 신앙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복 타령만 하지 말고 복 받고 살 수 있도록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합시다. 믿음의 가정을 이룹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력입니다. 성경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성경말씀으로 세워진 가정을 만듭시다. 성경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됩시다. 성경말씀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가정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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