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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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여러분,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같이 믿으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저라면 도저히 못 할것 같습니다.
주었다가 뺏는 것이 안 준것 보다 더 나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러실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만 따로 떼어서 본다면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22장에 오기까지 하나님을 보아왔습니다.
주었다가 뺏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오늘이 처음은 아님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시작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주었다가 뺏으시는 이야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기근을 보내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가나안 땅을 주셨다가 빼았으신 겁니다.
그리하여 이집트로 간 아브람은 거기서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사래까지 이집트 왕 바로에게 뺏겼다가 다시 찾습니다.
13장에서 다시 가나안 땅을 찾은 듯 했으나 사랑하는 조카 롯과 땅을 절반씩 나누게 되니
이 또한 주셨다가 빼았으신 것이죠.
14장에서 그의 조카 롯이 가나안 왕들에게 사로 잡혀갔으니 조카까지 뺏기게 되었습니다.
20 장에서 그의 아내 사라를 아비멜렉 왕에게 뺏겼다가 다시 찾습니다.
21장에서 사라의 첩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빼았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아브라함은 주변 강대한 민족들의 세력에의해 목초지와 우물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피해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장에 오기까지 아브라함은 한마디로 빼앗김의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생은 이렇게 빼앗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가의 많은 스님들은 "무소유"를 내세우고 있나봅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소유" 한다는 것에서부터 욕심도 나오고 다툼도 나오지만 그만큼 "소유"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
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믿음의 사람들도 이렇게 "소유" 를 빼앗기는 일을 당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은 작은 빼앗김들을 통해 우리가 빼앗긴 가장 큰 것을 찾게하십니다.
단테의 실락원을 보면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짓고나서 빼앗긴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빼앗긴 것은 영원한 생명, 건강, 행복, 사랑,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앗긴 후 그 공백을 채우려고 돈, 명예, 쾌락, 권력 등을 쫓지만 결국 그 끝은 죽음이라고 합
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바로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가진 것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잃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결코 서두르시는 법 없이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
십니다.
우리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을을 뺏으심으로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만 있으면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부하게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갑자기 잃었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겠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좋은 직장이 없어도 하나님만으로도 살 수 있음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보다 내 직장을 더 섬기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렸다면, 이제는 가장 귀한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된 것입
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2) 오늘의 작은 빼앗김 부터 이겨보자!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소중하다고 입으로는 고백을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렇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로서 세상에서 부당하게 빼앗기고 당하고 손해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때면, 하나님께서 나를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알게하시려고 훈련시키신다라는 생각은 저너머로 사라지고
조목조목 따지면, 혈기부리기 일쑤입니다.
저부터 교회 일이라면 십원 한장도 허실이 안되도록 작은 것 하나 사더라고 깍느라 은혜가 안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넓게 생각한다면, 돈의 절감보다 하나님의 백성의 인품을 보여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안에서 살게되면서
이 세상은 나의 주관적인 꿈과 감정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을 배우게되고
이 현실 속에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납세해야 할 것은 납세해야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마태복음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그러나 억울하고 부당한 것같은 이 세상에서 작은 피해를 감당하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의 수혜자임을 생각해보면
어차피 우리 신자들이야말로 가장 수지맞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내 틀에서 꺼내자!
고대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혼돈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의 혼돈이었습니다.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수의 인류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다산 물질의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 숭배
사상이 만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조차 그의 집안의 산업이 우상을 제작하는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인격적이신 분이란 관념이 단시간에 생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속적인 인도하심은 아브라함에게 유일신 하나님의 개념과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조금씩 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인격적인 모습으로 현현하셨으며 아브라함은 이를 바로 발견하였습니다.
욥기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
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아브라함과 비슷한 시기에 존재하였던 욥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심
을 인정하는 하나님 주권신앙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차별화된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인식은 그의 자손 대대로 "언약" 이라는 매개체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인격적인 관계, 즉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인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비록 인생의 어려움과 난관 앞에서 하나님의 장기적인 인도하심을 잠시 잊어버리고 잠시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보다 우리의 미래를 더욱 보장하는 것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필요와 이익을 위한 협상의 대상이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제한하지 않기 원합니다.
단기적인 손해와 예상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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