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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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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137회 작성일 13-02-17 20:15

본문

창세기 16장

본문의 아브람은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지 10년이 되어 이제 팔십오세가 되었습니다.

곱던 아내 사래도 이제 75세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둘의 인생 최대 고민인 후손이 없음은 저번 주 본문인 15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해결되는 듯 싶었습니다.

감동적인 15장의 하나님과의 언약식이 끝나자마자 16장 본문은 아브람과 사래의 범죄로 시작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죄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죄는 남에게 피해나 불이익을 입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지 않고, 그래서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6장의 아브람과 사래의 죄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죄입니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약속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들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지켜지는 약속들이 있고, 또 깨지는 약속들이 있습니다.

깨지기 쉬운 약속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시간이 오래된 약속입니다. 

우리나라 전설에 구미호가 인간 남편한테 100일 동안 소의 간 먹으러 가는 것 훔쳐보지 말라고 약속하지만 꼭 99일째 그 약속이 깨지는 경우가 이런 경우죠.

두번째 깨져도 별 탈이 없는 약속입니다.

약속한 상대방이 정치 사회적으로 별 영향력이 없으면 그 사람과 한 약속 조차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번째, 더 정당한 약속이 있을 경우 입니다.

예를 들면, 삼국지에서 위나라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촉나라의 유비에게 감화되어 유비의 장수가 된 황충 같은 인물이 바로 이런 경우겠죠.

조조와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것이 먼저이므로 유비를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약속을 지키려는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살다보면 이렇게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과 사래는 위 세가지 약속이 어겨지는 경우 모두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10년 전부터였지만 아직도 진행중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기게 그 분과의 약속을 어긴다해도 별 다른 문제가 없을 듯하고,

후사를 잇는 것이 일부일처의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람과 사래의 범죄 형태는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그대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약속하셨지만

우리는 당장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믿지 못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때문에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짓는 죄입니다.


이러한 차선은 당장의 필요와 목표를 이루는 것 같지만 이로인한 문제들은 마른 숲에 불붙듯이 퍼져나갑니다.

1) 하갈과 사래의 갈등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2) 사래와 아브람의 갈등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3) 희생양 하갈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그리고 아브람과 사래는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빚어진 문제를 하갈을 추방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애시당초 하갈은 이러한 사태에 빌미를 제공한 적도 없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계획하에 사래의 몸종으로서 그대로 순종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배 속의 아이와 텅그러니 광야에 남겨져 있게 되었습니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술 길 샘은 "막다른 벽" 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하갈은 인생의 막다른 벽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적도 없었고,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타는 듯이 찌는 사막의 태양 볕아래서 목말라 죽든 굶어 죽든 둘 중에 하나만 남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하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본문의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예수님을 뜻합니다.

이렇게 문제는 아브람과 사래가 일으켰지만 해결은 예수님께서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하갈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예수님께서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네 인생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술 길 샘같은 상황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벽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나의 처한 상황이 나의 죄만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살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예수님을 만난 하갈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당당하게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잊지않고 아브람과 사래에게 돌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물론 하갈이 도망하였을때 예수님은 아브람과 사래의 양심에 가책을 불러일으키시고 돌아온 하갈을 반갑게 맞이하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15"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 이스마엘은 지금의 이슬람 세력의 조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단순히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 아닙니다.

나의 선한 동기로, 정의감으로, 열정으로도 촉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선이 아닌, 나의 편법과 차선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나같은 사람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주님과의 약속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지켜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약속입니다.

이것을 피해가기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문제와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이것을 지키지않으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고 헌금한다고 공헌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제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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