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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840회 작성일 13-08-23 14:05

본문

창세기 34 장

오늘 본문은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

성스러운 성경책에 기록된 내용이라기엔 

치욕스러운 강간사건과

비겁한 속임수와

잔인한 대량학살이 동시에 일어남을 보게됩니다.

이러한 본문을 가지고 설교가는 어떻게 설교할 것이며

성도들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난해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러나 본 장이야말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우리는 어떠한 존재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본문의 배경이 어떠한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 땅에 두시고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는 언약을 맺으셨지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언약은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와의 후손을 구원자로 삼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리라는 언약의 성취를 약속하시고 

셋, 에녹, 노아에 이르기까지 이 언약을 이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에 이르러 이 언약의 성취는 아브라함의 자손, 특히 이삭의 자손, 특히 야곱의 자손들의 민족에게서 나올 것임을 말씀하심으로 언약의 당사자가 하나님과 그의 선택한 민족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가장 기뻐한 자들은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선택하신 민족 사이의 언약 체결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마귀사탄은 하나님을 없앨 수 없기에 언약의 주체인 선택받은 민족을 없애려고 작정하였습니다.

한민족을 지상에서 없애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세계2차 대전의 주범인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지상에서 완전히 멸절하기위해 홀로코스트, 즉 독가스 및 생체실험들의 대량학살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유태인들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압적이고 단기적인 방법으로는 한민족을 없앤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허망할만큼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민족들 중 상당수가 지금까지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해 우리를 괴롭혔던 막강했던 거란족, 흉노족, 스키타이족, 만주족, 말갈족, 여진족 및 오랑캐라 불리던 수많은 이민족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또한 동쪽의 오랑캐, 동이 라하여 이러한 크고작은 이민족들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위태로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중국에 흡수되거나 일본에 정복되지 않고 수많은 이민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독립국가를, 그것도 두개씩이나 형성한 민족이 우리 민족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되어 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한 소녀가 당한 강간사건과 그로인한 비겁하고 잔인한 복수 참살극은 단순한 인명 피해 사건이 아닙니다.

바로 선택받은 민족이 이 땅에서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중요한 사건인 것입니다. 


1. 디나의 외출(:1-4)

숙곳, 외양간이라는 뜻의 시골 깡촌에서 오랜 기간 머물던 야곱네 가족은 세겜이라는 근사한 도시의 성문 앞으로 이사왔습니다.

세겜은 에브라힘 고원 지대에 에발과 그리심산 인근에 위치하여 동서남북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였습니다. 

야곱이 처음부터 숙곳을 떠나 세겜으로 오려는 자발적인 의지는 없었을테고 그의 아내 라헬의 지속적인 설득이 세겜 이주의 주요원인으로 추측되지만 어찌됐든 야곱은 상당액의 돈을 지불하고 세겜시 성문 앞의 노른자 바로 옆땅을 샀음을 전장에서 보았습니다.

마침 사춘기의 혈기왕성한 소녀 디나는 호화스러운 도시에 반하고, 그 나이 또래면 당연히 가지는 외모의 관심으로 도시 여자들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가 세겜시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강간사건이 사무엘하 13장에 나타나는데 다윗의 장자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고 오히려 다말을 혐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암논에 비해 세겜시장의 아들은 디나를 겁탈한 후 그녀를 연련하게 되는데 나름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면, 

아무 이름모를 소녀를 겁탈할 정도로 인간을 우습게 보는 인격이라면 그가 디나를 사랑한들 그 사랑의 기간이 얼마나 지속되겠습니까?

그래도 아무튼 세겜시장의 아들과 디나는 요즘 한류드라마에 등장하는 대기업 총수 아들과 시골출신의 순박한 여주인공 정도로 디나에게 있어서는 인생역전 대박일 수 있었습니다.

2. 획기적인 제의(:5-14)

일년에 몇번씩이나 벌어지는 아들의 여자 사냥에 넌덜머리가 난 세겜시장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죽어도 이여자하고만 결혼해야 겠다는 아들의 성화에 떠밀려 야곱에게 찾아와 획기적인 제안을 합니다.

9절에 두 민족끼리 결혼을 통해 통합을 이루고

10절에 경제 통합을 통해 세겜땅에서 기업을 이루라 즉 뿌리를 박으라라고 제의합니다.

그리고 11절에 경제적인 원조 또한 약속합니다.

세겜시장의 이러한 제의가 상당히 호의적이고 젠틀한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일말의 사과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세력의 강함과 큰 인구의 규모를 전제로 우월함에 기초하는 일방적인 통합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통합제의를 거부하고 세겜시장의 아들의 적법한 처벌을 요구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디나의 강간사건을 통해 살벌한 가나안의 치안환경을 다시 한번 체감함과 함께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세겜시장과의 사돈관계가 가져다 줄 군사적 안정과 경제적 이득 또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3. 시므온과 레위의 복수 (:15-19)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라는 신성한 의식을 이용하여 세겜족에게 복수를 감행합니다.

이들의 비열한 속임수는 이미 그들의 아버지 이삭의 장자권 사기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열악했던 의료환경과 할례의식을 처음으로 그것도 급하게 시행한 연유로 세겜족 남성들은 할례의식 후 염증과 고통이 극에 달하는 삼일째에 시므온과 레위는 무장해제된 세겜족 남성들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물론 디나의 어머니 레아에게서 난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친여동생의 강간사건에 가장 분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8절에 세겜의 모든 소유와 재산들을 모조리 약탈하는 것은 당시 고대 근동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조선 체제 당시에도 등장하던 "동태복수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차원에서 볼 때, 야곱의 아들들의 약탈행위는 또다른 인간의 추악함을 보게합니다.

4. 정신차려라, 야곱아!

본장은 자연스러운 끝맺음없이 한마디 질문으로 끝나는 어색한 엔딩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이에 대한 야곱의 구차한 변명이나 근근한 핑계마저 생략된 채 본장은 마무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장의 대답을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선택받은 민족의 가치

오늘 본문의 사건을 돌아봅시다.

만약 디나가 홀로 도시를 구경하러가는 위험을 자초하지 않았다면 강간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디나의 잘못일까요?

강간 사건이 없었다 하더라도 야곱의 자손들은 세겜민족에게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민족들이 중국에 흡수되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듯이 그 운명을 다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며 문화의 중심지인 세겜시에서의 정착시도는 추악한 강간과 비참한 살육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장인 35장에 야곱은 그제서야 벧엘로 떠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애시당초 야곱이 세겜으로 빠지지 않고 바로 벧엘로 갔어야만 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되어야만 했습니까?

별로 숫자도 많지 않은 그 한 작은 민족을 보호하시기위해 다른 민족들이 희생되어야만 하나요?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 인간의 범죄로 인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되는 죄의 영향아래 놓여있게 되었고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처럼 마침내 인간 누구나 죄 때문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죄의 권세는 최종 결과물인 죽음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각종 질병과 고통과 근심을 낳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죄의 권세가 가득한 세상에서 잠시 잠간의 쾌락을 추구하며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구원자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은 그 약속을 믿고 구원받아 이제 더이상 죽음의 권세에 시달리지 않게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슈퍼맨처럼 하늘에서 날아와서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미약한 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 민족에서 한 아기가 나오게 하시며, 지극히 평범하고 미약한 인간으로 성장시키시고, 지극히 평범하고 미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구원받을 한 민족 전체였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한 민족을 살리기위해 많은 다른 민족들을 죽이셨다고 일차원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나올 한 아기가 온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민족 이스라엘이 사라지면 인류에게 남은 단 하나의 구원의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강간과 학살 보더 더 한것도 동원하십니다.

그만큼 한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처절한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은 휴머니스트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십니까?

진정 죄사함의 방법이 전혀 없다면

죽음의 권세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모든 인류가 다같이 화목하게 잠시 잠간의 인생을 함께 즐기며 사는 것이 최선임은 분명합니다.

진정 우리가 인류를 사랑하고 아끼는 휴머니스트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하나님의 도덕성을 가타부타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로 인해 지옥에 가는 것이 강간과 학살보다 더 추악하고 비참한 것임을 인정하고

인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도덕성을 따지는 사람들은 입으로만 인류애를 떠들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없이 박애와 봉사를 감당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도덕과 상식을 우선하여 구원의 희망이 있는 선택받은 민족의 존재를 부인하며

다 같이 죽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속한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멸망당한 많은 민족들을 불쌍히 여길 동정심이 있다면,

그 동정심으로

다 같이 죽기보다 분명한 살 길이 있는 민족으로 영혼들을 이끄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조건 살아야 합니다. 

무슨 댓가를 치르더라도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생에 대한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땅의 인생 뒤에 펼쳐질 영원한 세계를 올바로 정신차리고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 버리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만 붙드는 우리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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