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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자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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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450회 작성일 13-08-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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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3장

우리는 약함이 싫습니다. 강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하고 싶은 것들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들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약해서 고통받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서 헤매었습니다.

그 이유는 형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뒤 야곱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죠.

일대일 싸움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강한 에서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고향을 떠나 형 에서를 제압할 만한 세력을 확보하고 돌아와서 장자의 권리를 누리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한 목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더 이상 머물러 있다가는 평생 양치기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듯 합니다.

더구나 외삼촌 라반에게 미운털까지 박혀서 더이상 하란에 머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0년 전의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반드시 고향땅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입니다. 

20년전 자신이 목표로 했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에서보다 더욱 강한 세력가로서는 커녕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장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20년 전에는 도망이라도 칠 수 있는 젊고 빠른 몸이었지만, 

이제는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데다 어린 아이들까지 딸린 몸이었습니다. 

이렇게 약해진 야곱에 비해 에서는 어떻습니까?

본문 1절에 에서는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왔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400명의 친위부대를 소유한다는 것은 결코 흔치않는 일로서 에서가 상당한 세력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으로서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야곱이 에서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정녕 없을까요?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약하디 약한 야곱이 에서를 이기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약함으로 강함을 이긴다. :1-4

이전까지는 권모술수와 잔꾀의 달인인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야곱은 다리를 저는 약하디 약한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3절에 일곱번 땅에 굽히며 에서에게 절하는 모습에서 탈골된 허벅지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에서의 마음을 어떠했겠습니까?

야곱이 20년 동안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돌아온다는 말에 친위대 400명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야곱이 또 무슨 수작을 부려서 자신을 해하려할지 몰라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절뚝이며 자신에게 절하는 야곱을 보면서 모든 미움과 경계가 일시에 사라져 버립니다.

4절에 두 남자는 껴안고 폭풍같이 우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야곱이 에서를 이기는 방법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탈골시키시고 밤새도록 시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강한자가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약해야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10 의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약해야 하나님이 나 대신 싸워주심을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만약 야곱이 힘으로 에서를 상대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군대를 조직하여 두 형제가 맞상대했다면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세대를 넘어 아들 세대들까지 서로 원수가 되어 죽고 죽이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묘한 한 수에 두 형제 모두 즉시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약하게 만드신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내가 약할 수록 하나님께서 나대신 싸우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약함 :5-7

두 번째 야곱은 자신의 가족들을 에서에게 보입니다. 

홀홀단신이었던 야곱이 하란땅에서 큰 가족을 이룬 것을 보면서 에서는 야곱에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되었습니다.

에서는 자신의 동생 야곱이 더이상 철부지 사기꾼이 아니라 어엿한 한 부족의 족장이 됨을 보게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약함을 보인다는 것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약함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약하기만 하면 정말 비겁하게 약하게 되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상태에서 약해야 당당하고 자신있게 약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 에 바울의 약함의 고백 앞에 9절을 보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약함은 없어서 부족해서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약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함을 보인다는 것은 동정을 바라거나 선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당당하게 자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약해져야 당당할 수 있고, 당당해야 용기있게 되고, 용기가 있어야 용서를 빌 수 있고, 용서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 스스로 주는 약함 :8-11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물질을 빌려 갚지 않고 손해끼치는 모습들을 보게되면 그 사람을 고사하고 하나님이 욕먹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혀가며 얻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의 야곱도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 얼마나 욕심이 많았습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던 야곱이 이제는 깨닫고 제대로 된 값을 치루려고 합니다. 

장자권은 결코 팥죽 한 그릇과 같은 헐값으로 매겨져서는 안되는 귀한 것입니다. 

야곱이 기꺼이 제대로 된 값을 치룸으로 그가 얻은 장자권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3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공짜로 주겠다는 에브론의 호의를 거절하고 그 값을 치루겠다고 고집부렸던 대목을 기억합시다. 

온전히 값을 치루고 산 땅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의 땅이라고 선포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노력없는 이익과 분명히 다릅니다.  

줄 것은 주는 것도, 그리고 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줘야 하기 때문에 주는 하나님의 은혜없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주고 싶어서 주는 하나님의 은혜로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4) 나의 약함를 아는 약함 :12-15

개척지 가나안은 문명지 하란에 비하면 항상 불안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형 에서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가 있어보입니다.

형 에서의 강한 군대가 자신을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지난 20년간 에서가 쌓아온 인맥들도 덤으로 따라 올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의 보호를 택하는 대신 하나님을 택하게 됩니다. 

형 에서의 보호을 택한다면 그와 함께 에서에게 물든 가나안의 풍습도 함께 따라 올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고집이 강한만큼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나는 자신의 약함 또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형 에서와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 가나안의 저질 문화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만약 야곱이 자신을 과신하고 가나안 저질 문화가 만연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면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문화 속에 녹아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가나안 보다 몇 배 더 음탕하고 저질스런 문화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남보다 더 거룩하고 의지가 강해서 세상 저질 문화 속에서도 꿋꿋히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남들처럼 약하니까 세상 저질 문화로부터 우리를 구별하자는 것입니다.

5) 이겼을 때 조심하라! :16-19

이렇게 20년 묵은 형 에서와의 관계회복에 승리한 야곱은 아직 한 가지를 덜 배웠습니다.

17절에 형 에서와 저급한 가나안 문화와 거리를 두기 위해 숙곳이라는 외딴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외양간이라는 뜻인 숙곳은 말그대로 도시와는 거리를 둔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한 동안 머무르면서 가축과 자녀들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18절에 세겜 성읍, 곧 세겜 시라는 번화한 도시의 입구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아마도 야곱의 두 아내와 그들의 몸종들, 특히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이 야곱을 들들 볶아서 살기 좋고 편안한 도시로 이사가자고 졸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약했던 야곱이 그 은혜를 까먹고 다시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도시인 세겜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하나님의 은혜로 약해진 사람이 강한자에게 승리한 후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내 힘으로 이긴 줄 알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결론: 강한자이신 하나님 :19-20

야곱은 드디어 자신의 명으로 된 땅을 구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 제단을 쌓고 그 땅의 이름을 "강한자 이신 하나님" 이라고 짓습니다. 

그 이름에서 야곱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에서 야곱은 자신의 약함은 하나님의 은혜인 당당한 약함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름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땅을 정당한 가격인 백 크시타, 어린양 백마리로 샀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에서 야곱은 자신의 약함을 능히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강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감추지 않으시고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던 약함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장에서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두시고도 유대병정들에게 당당히 끌려가셨던 약함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지니신 유일한 재산이었던 자신의 몸과 옷마져도 스스로 주시는 약함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뜻이 아니니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고 전하셨던 약함을 기억합니다. 

우리 누구도 예수님보다 더 능력있고 뛰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최소한 예수님 보다는 더 약해집시다. 

약함을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약해지고, 자원하여 주며, 나의 약함을 잊지 않는 겸손한 약함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따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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