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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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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290회 작성일 13-08-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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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9장 1-30절

독수리처럼 새끼들에게 헌신적인 동물들을 보기가 드물다고 합니다.

독수리가 부지런히 사냥하여 잡은 먹이를 자신을 먹지도 않고 새끼들과 암컷을 위해 가져다 주는 모습은 자연 다큐멘타리를 통해 자주 접했습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점점 커져서 보금자리를 떠나 독립할 시기가 가까워지면 독수리는 일부러 자기 새끼들을 날개로 흩었다가 다시 보금자리로 모읍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새끼들이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자연스럽게 날개에 힘이 붙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새끼들을 해코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새끼들을 향한 독수리의 사랑으로 비유했습니다.

신명기 32장에 모세는 자신의 조상 야곱에 대한 노래를 합니다.

신명기 32:9-12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모세의 비유가 참으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 보금자리를 떠나게 하심 :1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자신이 기대했던 장자권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고사하고, 형 에서의 위협때문에 고향 브엘세바에서 도망쳐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돌며 사냥에 몰두했던 에서와 달리 장막에서 주로 어머니 리브가와 시간을 보냈던 순둥이 야곱이 생전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야곱 말고도 아브라함 사람들 중에서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갔던 사람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브라함의 종은 많은 수행원들과 값진 패물들과 낙타떼들을 이끌고 갔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은 창세기 32장에서 가지고 있던 것은 지팡이 하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하듯 무일푼 외톨이 신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란 출신이였기 때문에 가나안에서 하란으로의 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촌뜨기 야곱에게 고향 브엘세바에서 720 Km 떨어진 하란으로의 약 20일간의 여정은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곱은 과연 자신이 받은 장자권이 과연 효력이 있긴 있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본즉" 이라고 간단히 번역된 우리말과는 달리 원어적으로 "그리고 마침내 봐라" 

이는 예기치 않는 상황을 묘사하는 말로서 야곱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야곱이 우물에 당도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압해도댁이 서울가서 남편 김서방 찾는 겪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기차타고 서울역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우리 남편 목포 김서방 아냐고 물었을 때 마침 남편을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듯 야곱을 보금자리에서 떠나게 하신 하나님은 독수리가 그의 새끼를 날개로 받는 것처럼 야곱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하루의 삶이 본문의 야곱처럼 고단하고 외롭습니까?

그렇다면 본문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저와 우리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본즉" 즉 마침내 우리를 평안의 우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사랑으로 눈멀게 하심 :6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24장의 아브라함의 종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도 우물가에 도착하고 거기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야곱은 처음으로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서있습니다. 

오늘날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이 만남을 가질 때,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외모를 꾸밈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높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4장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물로 양떼를 몰고가는데 화장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0여일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초췌한 야곱도 야곱이지만, 

제대로 화장도 못하고 갖춰 입지도 못한 라헬도 자신의 남편감을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야곱과 라헬은 첫 눈에 반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형 에서와는 달리 집안퉁이 야곱이 라헬을 만나자 갑자기 초능력자가 되었습니다. 

목자들 여럿이 들어야 옮길 수 있던 무거운 우물 입구 돌을 혼자서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멋지게 자신을 소개하며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만 달라고 해야할 타이밍임에,

먼지 범벅의 꼬락서니로 다짜고짜 라헬에게 입맞추고 엉엉 울었던 것입니다.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여기서 우리는 라헬이 달렸다는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사상 최악의 프로포즈였건만, 라헬은 양떼들을 우물가에 놔두고 그길로 아버지 라반에게 달려갔다는 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 봅니다. 

이러한 사랑덕분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기며 야곱은 외삼촌 라반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아마도 야곱에게 인생에 있어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던 야곱을 하나님의 독수리 날개로 받으시듯 행복의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야곱과 라헬만이 본문의 불같은 사랑의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다 이러한 사랑의 주연배우들입니다. 

채찍맞아 찢기고 피범벅이 되신 십자가의 예수님이 내몰릴 대로 내몰린 죄투성이인 나를 만나러 먼지를 뒤집어 쓰시고 우물가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불같이 사랑하시되 죽을 때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좋은 옷과 화장과 성형수술이 사람을 아름답게 하지 않습니다. 

먼지 속의 우물가일지라도 사랑이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3) 죄를 깨닫게 하심 :25

칠년을 며칠 같이 여기며 라헬과의 결혼을 꿈꾸며 열심히 살았던 야곱에게 앞으로 행복만이 가득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수리 날개짓은 계속되었습니다. 

칠년만에 라헬과의 결혼을 하게된 야곱은 결혼 다음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첫날 밤이 지나고 아침에 모닝 뽀뽀를 하려고 부끄러워하는 신부의 얼굴을 보았는데 세상에 라헬이 아니라 라헬의 언니 레아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일어나 외삼촌 라반에게 따졌습니다. 그리고 라반은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의 스토리를 아는 라반은 야곱의 가장 큰 약점을 공략합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장자권을 받았지만 "정통성 논란" 은 여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양심속의 큰 짐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정통성" 을 내세워 자신의 속임수를 정당화하는 외삼촌 라반은 확실히 여동생 리브가와 조카 야곱보다 한 수 위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바로 야곱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셨습니다.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법적으로는 레아를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행한 과거의 죄를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임수에 대한 징계하심으로 받아들이는 야곱을 보게됩니다.

한편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자신의 심사를 달래며, 신부를 신방에서 내쫓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무난히 7일간의 혼례기간을 채우게 됩니다. 

이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에 굴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2:6-11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결론)

여러분, 우리를 보금자리에 머무는 날지 못하는 새로 만드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수리 날개짓처럼 때로는 우리를 흩으시다가 다시 모으시고 낮추셨다가 다시 높이시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께서 보금자리에서 흩으시거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떨어질까 두려워마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은 지금도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를 받치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자유의 날개를 펼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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