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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539회 작성일 13-08-2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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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장

1) 무산된 계획 :1-5

살면서 당혹스러운 경우가 바로 이렇습니다. 

오랜 기간 계획하고 추진해 왔던 목표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가 예상과는 정반대가 되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으면 그 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변할 줄 알았습니다.

부족의 사람들이 자기의 말에 복종하고 자신의 권위에 무릎 꿇을 줄 알았습니다.

부족의 병력을 장악하여 형 에서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권력을 잡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신을 죽이겠다고 발발이 날뛰는 에서 앞에서 아버지 이삭도 어머니 리브가도 전혀 이삭을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이는 부족내의 병권은 뛰어난 사냥꾼으로 인정받은 에서 쪽으로 이미 쏠려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곱은 장자권 행사는 고사하고 일단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탈출시키기 위해 결혼이라는 명분을 동원하여 에서의 눈총을 피하는 것이 그가 야곱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자기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도 않는 채 그저 얻으려고만 합니다. 

일단 얻게되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사업의 성공으로 부유하게 됐지만 그 돈 때문에 가정 내의 신뢰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려운 취업 시험에 합격했지만, 정작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지 않음을 나중에야 깨닫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힘들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었지만, 그 사람의 허영과 이기심때문에 자신의 인생도 망해버립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인생 목표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장자권이라는 그의 인생의 목표는 행복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장자권이 원래 그렇게 나쁜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러나 장자권 자체를 목표로 삼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장자권을 통해 기대했던 부요과 권력과 자랑이 실은 야곱의 목표였습니다.

장자권의 참된 의미는 이렇게 유통기한이 있는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는 영원한 가치에 있다는 것을 야곱은 아직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2) 계속된 채움 :6-9

이렇게 한심한 야곱이 제 발등을 찍는 동안 에서는 에서대로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이스마엘, 즉 자신의 큰 아버지의 딸 마할랏과 결혼을 통해 부모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미 아내가 둘씩이나 있는 사람이 거기에다 하나를 더 추가하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지 얻으려하고 확보하려고 합니다. 

더 많이 소유할 수록 더욱 가깝게 목표를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움켜 쥐어야 이룰 수 있는 목표라면 야곱의 헛된 목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헛된 목표에서 헤메는 이유를 본문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6절에 "에서가 본 즉" 은 헛된 목표의 첫번째 원인이었습니다.

에서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6절에서 8절까지 에서는 총 네가지를 보았다고 나옵니다.

1)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2)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3)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4)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또" 가 세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면 참 보긴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또" 가 백번 천번 반복된다해도 에서가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그래서 더욱 움켜쥐고 채워야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목표는 더욱 멀어져만 갑니다. 


3) 무소유 :10-11 

이미 두명의 아내가 있는 에서가 거기다 아내를 한사람 더 추가하는 동안 야곱은 아내는 고사하고 베게 하나도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2:10 에서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도망쳐 나올 때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이삭 밑에 있던 보디가드들 한 명도 없이 춥고 위험한 사막 한가운데서 유숙해야만 했던 야곱의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족장의 막내 아들로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제작한 부드럽고 따뜻한 이불에서 곱게만 자란 그가 맹수와 도적들의 위험에 불안해하며 돌베게에 머리를 뉘었을 때 그 딱딱함과 차가움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비워져버린 야곱에게 그 때에야 하나님은 찾아 가셨습니다.


4) 갑작스런 찾아오심 :12-15

하나님은 야곱의 꿈에 나타나시고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은 이로써 인류 최초의 환상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가 위치한 땅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시는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13절에 사닥다리가 위치한 땅을 차지하면, 14절에 번영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야곱은 환상을 통해 장자권의 참된 의미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썩어 없어질 부와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이 바로 장자권의 참된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장자권을 통해 얻는 혜택이 아니라 장자권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이 장자권의 핵심이요 본질임을 보게되었습니다. 

이는 에서가 뭔가 많이는 봤지만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을 야곱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5) 발견 :16-17

우리 인생에서 더욱더 소유할 때 얻어지는 기쁨과 안심이 우리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 아닌지 보게됩니다.

오히려 당연한 내것을 잃어버리거나 비울 때, 개안의 역사,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그 잃은 것을 다시 찾으려고 안절부절하지 마십시오.

상실의 위기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16절 야곱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멀리 숨어계시는 분이 아니라 최후까지 우리 옆에 있는 단 한분이십니다. 

그동안 야곱이 이삭의 장막에서 누리는 안락함과 그를 지켜주던 가족들과 하인들에게 둘러쌓인지라 볼 수 없었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야곱은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이르게 될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켜주시는 이는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보게 된 야곱은 더이상 그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탄하지 않게되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천지의 창조자, 만물의 주재자 하나님을 보기위해서라면, 크고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돌베게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6) 변화 :18-22

돌베게를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보게된 야곱은 이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중요하지 않는 둘째 아들로, 사냥에 소질도 없고, 집에만 붙어있던 찌질했던 그, 이젠 집에서마저도 쫓겨나 무일푼인 자신은 마치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베게와 같이 가치없는 존재였습니다.

시편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그러나 하나님은 돌베게를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삼으심과 같이 하챦은 자신을 민족의 기둥으로 삼으심을 믿게되었습니다.

그리고 20절에 야곱의 기도가 달라진 그를 확실히 보여 줍니다.

다른 것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 을 제일 먼저 구하는 그의 기도를 통해 변화된 야곱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복음은 어쩌면 돌베게 신세와 비슷해져 버렸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베게같은 복음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힐링 속에 묻혀버린 듯 합니다.

크고 웅장한 모든 것이 구비된 교회들이 아직도 뭔가 더 부족하다고 채우는 모습에서

묵묵히 골고다 돌밭길을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려니 힘이 듭니다.

나와 나의 자녀들이 딱딱하고 차가운 돌베게를 보다 힘과 권력과 성공을 찾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부귀 영화도 좋고 성공도 좋고 큰 교회도 좋고 힐링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의 집의 기둥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집의 기둥은 예수님을 향해 던져지고 예수님의 몸을 파고든 피 묻은 돌임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돌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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