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을 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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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을 할례 (여호수아 5장 1절)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사람은 기회를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놓고 모든게 잘될거야 하면서 살다보면 인생에 결코 대박은 터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기회가 왔습니다.
마치 권투 선수가 상대방을 핀치로 몰아붙여 마지막 한방을 노릴 수 있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적들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놓고 모든게 잘될거야 하면서 살다보면 인생에 결코 대박은 터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기회가 왔습니다.
마치 권투 선수가 상대방을 핀치로 몰아붙여 마지막 한방을 노릴 수 있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적들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할례를 받으라"
할례는 지금같은 포경수술과 같은 것이지만 당시의 의료환경과 도구들을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대로된 칼과 소독제와 진통제도 없이 시술하였고 때때로 과다출혈이나 감염같은 심각한 상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창세기 34: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제대로된 칼과 소독제와 진통제도 없이 시술하였고 때때로 과다출혈이나 감염같은 심각한 상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창세기 34: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자기들의 여동생 디나를 겁탈한 세겜 사람들을 복수하려고 그들에게 할례를 받게하고 그들이 회복할 동안에 기습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할례의 위험성과 무방비함을 이용한 장본인들이 누구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라 명령하셨습니다.
할례의 위험성과 무방비함을 이용한 장본인들이 누구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라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물론 할례는 타협불가의 절대명령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라면 할례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라면 할례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를 떠돌면서 누구도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시기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이라는 저지대에 주둔하였고 가나안의 적들은 고지대인 여리고성에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내려다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차피 지난 40년 동안 미뤄왔던 할례를 조금만 더 미뤄서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에 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일 것입니다.
어차피 지난 40년 동안 미뤄왔던 할례를 조금만 더 미뤄서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에 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일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방법입니다.
몇 십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남자들이 한꺼번에 할례를 행하였던 것이었습니다.
12족속이 1년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순번을 나누어 할례를 행하면 군사력과 방위력에 큰 손실 없이 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12족속이 1년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순번을 나누어 할례를 행하면 군사력과 방위력에 큰 손실 없이 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적군을 눈앞에 두고 할례로 인해 완전 무방비상태가 되어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결말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적들에게서 승리를 거둡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군의 기습을 받지 않아 운이 좋았다라고 볼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승리를 가져다 주셨다고 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군의 기습을 받지 않아 운이 좋았다라고 볼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승리를 가져다 주셨다고 말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 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누구 하나 이렇게 무리한 할례에 묻거나 따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보다 더 신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마치 한 남자가 한 여자에 눈이 꽂히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안 뿌리가 어찌되든지 여자에게 모든 것을 갖다 바치는 것처럼,
아니면 변질된 무슬림들이 신의 계시라면서 자살 폭탄테러를 행하는 등의 집단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단강이 마르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도 이들처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면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여전히 튼튼한 여리고 성이 우리의 인생을 포위하고 있고 여전히 차고 넘치는 요단강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문제이길래 우리를 둘러싼 여리고 성들은 요단강들은 아직도 건재한 것입니까?
우리는 분명 아직도 하나님 앞에 묻고 따지는 것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순종해야 하는데 이놈의 육신이 연약하여 마음처럼 못해 안타깝습니다.
아니 여지껏 하나님께 묻고 따져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 같아서 그게 더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며 순종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위해 나의 인생에서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이 있기는 한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를 둘러싼 여리고성들과 요단강들의 상태를 보니 나는 하나님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며 순종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관해서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고 있는가?
어쩌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치에 미쳐, 사랑에 미쳐, 돈에 미쳐, 명예에 미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무기력한 나보다 더 기특해 보이시지는 않을까?
어쩌면 나는 나의 생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모든 것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따지는 것 아닌가?
어쩌면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까하는 염려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이 구절은 이전 4장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서 전반에 반복되어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이 구절은 이전 4장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서 전반에 반복되어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호아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대로 행하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이 여호수아서 전반에 보여지는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입니다.
내 인생에서 과연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되" 라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내 인생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고 나는 그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이 언제나 가능할까?
내 인생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고 나는 그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이 언제나 가능할까?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듣지 않고 내 마음대도 행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실까 기대는 하지만 역시나하는 역기능적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는 것이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는 것이 가능할까?
사도행전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내 마음과 귀였구나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실 시간을 주기나 하였는가?
내가 말하고 내가 부탁하고 내가 지시하는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었구나라는 반성이 생겼습니다.
나를 위해 여리고성과 요단강에 무엇인가 해주지 않는 하나님을 불평하였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실 여유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 자가 나였구나.
누가복음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머물곳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지상의 첫날을 맞으신 예수님에겐 바로 내 마음이 가장 춥고 매정한 장소였겠구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여리고성과 나의 요단강에 무엇인가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실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만드는 것이구나.
로마서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고통없는 할례가 없듯이 고통없이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나의 염려, 나의 가치관을 가차없이 잘라서 굴려버리는 "길갈" 은 분명 그 이름대로 위험이 따르고 고통이 가득한 곳입니다.
나 자신에게 집중된 마음을 잘라서 굴려버리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언제든 하나님께서 예약없이 바로바로 내게 이르시도록 내 마음을 깨우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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