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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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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538회 작성일 19-05-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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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7:1-14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영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그를 마른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먼저 뼈들의 숫자가 심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뼈의 상태는 아주 말랐습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죽었고 죽은 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숨진 지 며칠 안되는  초상집에는 곡소리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마른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는 곡소리마저 없습니다.
슬픔과 애통함마저 죽어버린 곳이었습니다.
슬퍼과 애통함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잊혀짐일 것입니다. 
죽음이 워낙 일상이 되고 또 오래되다보니 슬퍼해줄 사람도 애통해줄 이조차 남지않은 잊혀진 곳이었습니다.
 
마른 뼈는 죽임당하고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죽임당한지 너무 오래되어 슬픔과 애통함마저 말라버린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른뼈와 같은 이스라엘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인생,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무서운 상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는 이제부터 백세시대라고 노래하지만 사실 백살에는 모두 죽는다는 사형선고와 같은 말입니다. 
모두가 죽다보니 죽음이 다반사가 되고 죽음을 슬퍼할 이유조차 망각해 버렸습니다. 
예전보다 더 잘살고 예전보다 더 오래살지만 슬픔조차 잊어버린 마른 뼈와 같은 인생들로 가득합니다.
마치 백년치 물과 식량을 싣고 백년후의 죽음을 애써 잊고사는 마른 뼈들이 가득한 유람선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백년 후에는 죽는 마른뼈들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른 뼈들에 생기를 부어 살리는 생명의 대언자들고 세우셨습니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을 다시 살리실 때 마른 뼈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에스겔에게 대언하도록 하셨습니다. 
마른 뼈와 같은 인생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일에 에스겔처럼 저와 여러분을 대언자로 삼으셨습니다. 
 
대언은 대신 말하는 자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자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대언자들로서 우리에게는 세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의무입니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대언하니 과연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마치 공상만화영화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이렇듯 공상만화와 같이 상상을 초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백년동안 잘먹고 잘살다 죽는 마른 뼈가 아닌 마른 뼈를 온전한 육체로 되살리는 인생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의 영혼구원과 함께 저들의 육적인 필요또한 책임을 지는 존재들입니다. 
구한말 초기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서양의술을 들여와 많은 백성들을 치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와 함께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작으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세계 선교의 일선에 나가있는 선교사님들을 지원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누고 돕는 하나님의 대언자들로 세움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9-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이 최종목적이 아닙니다. 
거기서 멈춘다면 세상의 사회복지단체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저들의 육적인 부족함을 채우고 더 나아가 저들의 영적인 구원을 이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살이 붙어 온전해졌지만 죽어있던 상태에서 생기가 들어와 완전히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된 소식을 전하면 이와 같은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말로만 부활의 소식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부활의 확신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사람들의 영과 육을 되살리는 사명을 감당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비전과 소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1-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형식만 남고 세속화된 교회는 무덤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본질상 기존의 형식과 권위에 얽매일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무덤을 열고 새로운 땅을 향하여 다시 출발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많은 교회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을 피해 문을 잠그고 있습니다.
불의과 흉악이 가득한 이시대에 과감하게 문을 여는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12절에 무덤을 열고 거기에서 나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웅크리고 앉아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교회가 기업화되고 교역자의 직분이 직업화되어 거기에 안주하게 되면 세상은 어느덧 위험한 곳이 되고 교회 안에만 머물려고 합니다. 
이는 딱 백년만 사는 뼈로가득한 유람선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무덤 문을 열고 거기서 나오는 것은 상당한 불안정성을 의미하며 이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입니다. 
불안정한 현대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정을 추구하고 불안정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은 불안정 자체가 목적은 아니더라고 불안정을 감당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덤 문을 열고 거기서 뛰쳐나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불안정을 감당할 용기는 우리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우리 마음속에 주시면 우리는 살아나게되고 우리의 땅을 회복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마치 과거의 일처럼 말씀하심으로 앞으로의 계획의 확신을 부어주십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이루어진 일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숙명과 운명에 얽매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애시당초 숙명과 운명은 우리 인간들이 지레짐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모든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능력이 있을 뿐입니다.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물으시듯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마른 뼈와 같은 인생들이 다시 살 수 있겠느냐?
당연히 "예 살 수 있습니다" 라고 답해야겠지만 수많은 마른 뼈들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어느덧 숙명과 운명의 노예가 되어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양심상 자신을 속일 수 없기에 "예" 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니오" 라고 답할 수도 없기에 오늘 에스겔의 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나이다"
 
세상의 질문은 답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관건입니다. 
설령 답을 모르더라도 찍어서라도 답을 맞추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문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질문의 답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초점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질문의 의도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느냐,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느냐 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나를 둘러싼 수많은 마른 뼈들이 되살아 날지 못할지 저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더욱 내안에 성령님이 가득할 수록 마른 뼈들에 살이 붙고 생기가 돌아오는 것이 확실히 믿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욱 하나님을 생각하시고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마른 뼈가 되살아나는 기적이 너무나 당연한 현실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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