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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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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408회 작성일 19-04-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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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3:21-33
 
에스겔서는 남유다의 폐망을 예언함으로 남유다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졌던 영적인 교만을 통렬히 비판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적이자 같은 민족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지만 남유다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멸하심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남유다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겸손히 하나님을 섬겨야 할터인데 오히려 영적으로 교만하여져서 더욱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마침내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먼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던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2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신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 멸망당할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인 교만에 빠져 패역한 예루살렘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기원전 586년에 마침내 예루살렘은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가졌던 착각과 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과 하나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 곳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며 그들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처럼 영원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제국의 침략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전이 특별하다고해도 하나님처럼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절대화시키고 영원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 성전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므로 절대 무너질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셨듯이 교회도 하나님에 의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헤롯이 재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위용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성전 건물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때문에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에의해 성전모독죄까지 추가당하셨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외형적으로 웅장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의 권능은 약해졌음은 이천년 교회사를 통해 매번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커졌던 교회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한번에 무너졌던 역사 또한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커지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25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고기를 피째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교회가 커지면 교회 자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되고 절대적인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치명적인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우상숭배죄입니다. 
교회는 커졌지만 세속주의에 물들고 세상의 문화를 여과없이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기의 피를 제거하고 섭취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방족속들의 문화를 따라 고기의 피를 적셔 먹는 가증한 일을 벌렸습니다.
핏물 적신 고기가 입에도 좋고 근수도 많이 나가니 돈이 되는 아까운 피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기보다 세상의 돈을 추구한 것입니다. 
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인 약육강식의 논리와 금전만능주의가 교회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절대가치로 두고 교회가 마땅히 해야할 분의 분배나 소외계층을 돌보는 사회적 기능은 무시하였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하고하지만 실제 본심은 돈에 있었습니다. 
두번째 :26 "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교회의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왼편 뺨을 맞으면 이 편 뺨을 대주고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가는 절대적인 사랑이 교회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니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랑이 아닌 힘을 추구하고 힘으로 다스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할 교회가 가증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증한 일이란 신자들은 물론이요 불신자들에게도 용납이 안되는 몰상식함과 부정 부패를 뜻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정치인들이 불법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먹칠하였습니다. 
교회에서조차 성공지상주의에 현혹되어 성경말씀대로 가르치기를 포기하고 학력중심 성과중심이 가득하게되었습니다.
말로는 복음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성공을 쫓는 이중적인 언어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게되고 떠가게 됩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정점에 서라는 구호가 가득하여 가난하더라고 정당하게 노동하라는 복음적 메시지가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세번째 :26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교회가 커지다보니 목회자들에게 돈과 힘이 주어지게 되고 정당하지 못한 돈과 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지 못하고 세상의 쾌락을 향해 빠져나가는 하수구가 되었습니다. 
김기동 이재록 같은 이단들의 수많은 성범죄들을 논할 가치도 없지만 심지어 정통교회의 목회자들도 이같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세상의 성범죄자들은 저들의 죄로인해 구속되고 처벌을 받지만 교회 내의 성범죄는 오히려 은폐되고 축소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자 때문에 너무나 큰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 사건은 은폐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게 구별되어야할 성스러운 교회가 오히려 세상보다 더 추악하고 가증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리처드 포스터의 베스트셀러 "돈 섹스 권력" 을 통해 오늘 본문은 우리 인간의 본면을 통렬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땅히 교만을 내려놓고 회개해야할 신자들은 오히려 하나님과 타협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교회인데 어차피 없애실 수도 없고 조금씩 조금씩 개선해나가자는 그럴듯한 대책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27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넘겨 먹히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게 하리라"
본문은 완전한 멸망을 뜻합니다. 
전쟁이 없는 외딴 들로 피하여도 들짐승들에 공격받고, 안전한 산성과 굴로 피난하여도 거기서 전염병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타락한 교회가 스스로 뉘우쳐서 개선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가장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부숴지고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공유하는 인간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타락한 인간이 뉘우치고 개선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28 "내가 그 땅이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폐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여기서 권능의 교만은 바로 힘을 가진 자의 교만을 말합니다.  한번 틈타고 들어오는 교회의 교만은 그 교회가 부숴지고 없어져야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듯 교만은 인간을 파괴하는 암세포보다 더 치명적인 회복불능을 교회에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회개하거나 반성하려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교만의 전형적인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보자." 
이 무슨 불순불량 오만방자한 태도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력이나 지적능력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들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무엇보다 듣는 이의 태도에 집중됩니다. 
듣는 태도가 이모양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백번 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내 문제가 해결되고 헛헛한 마음을 위로받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마음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도 힘든데 목사님 설교라도 좀 재미있고 신명나고 감동적이어야 교회 다닐 맛이 날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좀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죽을 사람이 아니 죽은 사람이 다시 살기위해 나오는 곳입니다. 
교회는 죽느냐 사느냐 목숨이 걸린 곳입니다. 
목숨을 걸고 설교해야 하고 목숨을 걸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31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교회를 그냥 취미나 습관정도로 다녔다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정말 죽지 않고 살 수가 있게 해준다면 아무리 손해를 봐도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이익을 따라 교회를 다니는 한 거기에는 아무런 능력도 부활도 영생도 없습니다. 
:31-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살려는 우리가 손해를 보지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손안대고 코푸는 것보다 더 불량한 심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 즉 사랑을 노래하듯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몰라서 죄짓고 모르고 행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 즉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권장사항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샤느냐 죽느냐를 가를 절체절명의 문제입니다. 
행동없는 사랑의 노래가 가득한 교회는 세상의 돈을 쫓으며 영적인 교만이 가득하여 멸망이 필연이 된 곳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우리의 삶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을 행하고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어쩌다가하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세상의 돈에 물들고 영적 교만에 빠지는 이유는 이익을 따라사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세상적인 돈의 논리와 영적인 교만, 그리고 권력의 집중화와 그에 따른 독선과 독재입니다. 
교회는 한번이라도 오염되면 씻길 수 없는 흰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교회를 지키는 일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말한마디 행동하나하나 갑절로 주의하며 조심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각 개인들은 하나님보다 이익을 따라사는 세상풍조를 경계해야합니다. 
또한 목회자와 장로님들은 주어진 책무의 위중함을 더욱 깨닫고 사명감당에 더욱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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