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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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31-34
본문은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천국 시민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교하십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당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들은 흙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벽이나 지붕에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마가와 누가복음에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뚫어 침상째 예수님께 달아내리는 광경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재물은 아무리 튼튼한 금고에 쌓아둔다해도 반드시 구멍이 나고 그 틈으로 다 샐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에 말이 많은 가상화폐 블록체인 기술은 최고의 보안을 자랑한다지만 그마저도 해킹되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버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돈 벌기도 쉽지 않지만 번 돈을 지키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돈버느라 염려하고 번 돈 지키느라 염려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염려 그 자체일 것입니다.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그러나 천국에 보물을 쌓아두면 거기는 완벽한 보안이 가능해서 아무런 염려없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보물을 어떻게 쌓을 수 있습니까?
천국 은행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땅에 천국은행 지점이 없습니다.
성경은 천국의 상급이라는 개념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수고한 보상을 천국에 쌓는다는 것으로 천국에 보물을 쌓는다는 표현과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5:30, 46절, 6장 6절, 15절, 고린도후서 4:17 절들 통해 의로운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고난, 그리고 서로 용서하는 것들에 대한 보상을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10:42, 25:40 절등은 타인에 대한 인애와 인자함, 그리고 디모데전서 6:13-19 절은 자발적인 나눔의 행위들을 말합니다.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썩어질 돈인가 아니면 영원한 천국의 상급인가에 따라 우리의 인격과 인품, 감정과 가치관, 판단력등 전반적인 정신상태가 결정됩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갑자기 눈이 언급되었습니다.
시편 119편을 대표하여 이스라엘은 사람의 눈을 마음으로 동일시합니다.
성경에서 눈이 나오면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말에도 눈이 멀다라는 말은 단지 시력을 상실하는 것말고도 돈이나 특정대상에 온 마음을 빼앗긴 상태를 말하므로 이는 우리에게도 받아들이기에 자연스러운 비유적 표현입니다.
눈이 성해야 온 몸이 밝게되어 제대로 보고 방향을 잡을 터인데 나쁜 눈은 방향을 잃게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나쁜 눈은 시력이 떨어지거나 나이가 들어 노안으로 초첨이 흐려진 상태가 아닙니다.
본문의 네게 있는 빛, 원어의 표현되로 우리안의 빛을 말합니다.
즉, 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문제, 우리 마음에 빛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밝은 천국에 있으면 우리의 눈은 성한 눈이됩니다.
반대로 우리의 마음에 온통 세상의 재물로 가득하다면 나쁜 눈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빛을 잃고 어둠속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찾기 어렵게 된다는 말입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과 세상 둘 다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이면 천국, 세상이면 세상 둘 중에 하나이지 둘다 또는 어느 중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천국의 상급 두개의 상반된 개념으로 출발한 본문은 세상의 재물을 어두움으로 천국의 상급을 빛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공존할 수없는 절대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세상의 재물을 돌아보지 않는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단호함을 말합니다.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목숨까지 바치며 순교의 피를 흘리셨지만 오늘날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며 튀지말고 중간만 가는 미지근한 신앙에 젖어있습니다.
천국은 이런 두마음을 품는 자들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재산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충성심과 결단력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의 재산과 소유와 목숨을 드리는 것이 아깝습니까?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께 무엇인들 못 드릴까요?
그런데 정작 우리는 불안합니다.
바치시라면 바치겠지만 언제 바쳐야 할지 불안한겁니다.
지금 당장 얼마안되는 집과 통장 잔고를 막상 바쳐야 한다면 바치긴 하겠지만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것입니다.
늙고 병든 이 몸과 마음이라도 바쳐야 한다면 바치겠지만 자녀들 자리잡고 안정될때까지 한 5년만 있다가 바쳤으면 합니다.
천국이라면 좋다고 해야 할텐데 본문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니 이젠 생각 좀 해봐야 되겠습니다.
왜 우리는 염려합니까?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천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염려하는 모습이 우스울 정도로 우리는 바보스러운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자!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살림을 합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눈을 부릅뜨고 계산해 봅시다.
여러분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라는 이건희와 살림을 합치자면 주저하시겠습니까?
이건희가 펄쩍뛰고 안한다고하지 누가 마다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과 살림을 합친다는 것은 이보다 더합니다.
우리는 한 줌도 안되는 나의 것을 바치는 것에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갖게 된다는 것은 왜 모릅니까?
설마 하나님께서 내 것만 받으시고 모른체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그럴 줄 아시고 확실한 보증수표를 써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뿐인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천국의 반이 아니라 전부를 주실지라도 마지않으실 것입니다.
아직도 줄것만 눈에 보이고 받을 것은 보지못합니까?
천국의 빛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비로소 눈이 밝아질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비워야 눈이 보인다지만 저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마음을 못 비우겠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대신 마음을 천국으로 채우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눈이 제대로 작동할 것입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입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제대로 구별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이 어두워 천국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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