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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십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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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968회 작성일 19-08-04 09:45

본문

온전한 십일조
 
말라기 3:1
 
말라기서는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마지막으로 계시해주신 말씀입니다. 
대략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400에서 500년 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3차 포로 송환이 완료되어 성전이 완공되고 예배가 회복되어 제사장들의 직무가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좀 안정되었다 싶으니 처음의 감동과 감사는 누그러지고 다시 못된 죄의 버릇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불평이 가득하였습니다. 
땀흘리고 수고하여 지은 농사가 수확 직전에 메뚜기 떼로 인해 삽시간에 망쳐버렸습니다. 
힘들여 거름주고 속아주던 포도 송이들이 알알이 잘 영글어 가더니 다 익을 즈음에 시들시들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갈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행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함이 그 원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습니까라고 오히려 따집니다. 
 
:8-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였더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결백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는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십일조와 봉헌물을 지적하십니다. 
 
:10-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저주의 원인은 바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온전치 않은 십일조가 온 나라 백성들을 재난과 흉년으로 힘들게 하였을까? 온전치 않더라도 아예 드리지 않은 십일조보다는 그래도 더 나은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2절부터 3절까지 다같이 읽겠습니다. 
 
:2-3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금을 연단하는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처럼 깨끗하게 하신되 레위자손들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레위자손들은 예배를 집전하고 성전을 관리하는 성직자들입니다. 
누구보다도 더 깨끗하고 더 순수해야 할 사람들인데 예수님께서 연단하시겠다니 분명히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직자들의 제물, 즉 헌금의 문제를 언급하십니다.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깨끗하지 못한 헌금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당시 제사장들이 드렸던 헌금은 제사장들이 일을 하여 번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제물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 적합성을 꼼꼼하게 검사한 후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적합하지 않은 제물을 적합하다고 거짓으로 꾸미거나 부족한 제물을 눈감아 주어 사익을 편취하고 제물 중 일부를 횡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이렇듯 온전치 못한 그 당시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십일조 행태가 메뚜기떼와 흉년의 고난을 불러왔습니다. 
고난이 임하고 온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각종 생계형 비리와 범죄가 횡횡하였습니다.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라 곳곳에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을 빼돌리는 자, 과부와 고아를 학대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자들을 통틀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한 통속이 되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자 메뚜기떼와 흉년이 찾아오고 온 나라가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
 
본문을 잘못 이해해서 십일조를 정확히 바쳐야 복받는다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남에게 이자없이 호의로 빌려준 돈을 거의 포기 할 때 즈음에 돌려받았는데 그것의 십분의 일을 바쳐야 하나요?
월급의 십분의 일을 바치고 싶은데 기준을 세전으로 하나요 아니면 세후로 하나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정확한 십일조의 산출은 고대 농경사회의 단순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복잡합니다. 
어떤 교회는 십일조를 아예 없애버린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십일조를 무슨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십일조에 대한 왜곡된 마음자세를 탓할 뿐 어떻게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또한 십일조를 어떠한 기준으로 어떻게 바쳐야 하는지 분명한 성경적 근거가 없기에 여러분에게 이에 대해 설명할 자격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 나머지는 모두 내 것이라는 착각을 경계하시고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실 때 십분의 일이 아닌 십분의 십 모두를 바쳐야 할 때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헌금, 외식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거나 사람에게 속아 자신의 분수를 넘어 무분별하게 바치는 헌금은 가정과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간 한국 교회가 세워 온 전통과 교회 발전과 안정을 위해 덕을 세우는 마음으로 드리는 십일조라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치기를 권면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7-12절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화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잘못해놓고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묻고 또 묻습니다. 
차라리 아예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잘못했구나라고 깨닫게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치 않은 십일조를 드림으로 뭔가 좀 꺼림칙해도 처음 몇번만 그렇지 몇번 반복되니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는 십일조를 아예 드리지 않는 자들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단순한 십일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해 온 신앙생활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되고 나를 정당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온전치 못한 십일조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자신이 온전하다고 착각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래서 신앙생활은 달콤한 꿀이 흐르는 강이나 부드러운 비단길이 아닙니다. 
 
항상 나 자체가 부정당하고, 심지의 나의 신앙생활 자체가 재구성되어야 하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입니다. 
 
이는 마치 금과 은을 연단하는 불고 희게 표백하는 잿물을 항상 안고 사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불과 잿물을 통과해야 금과 은의 보이지 않는 불순물들이 드러나는 것처럼 고난과 연단을 통해 우리의 죄가 드러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 모르고 내 멋대로 살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더 가난해지고 더 힘들어졌어도 한가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로 "평안" 입니다. 
 
불과 잿물의 고통 속에서도 모든 순간순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음으로 얻게되는 "평안" 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깨끗케 하심이 마치 불과 잿물처럼 여러분의 삶을 도전하신다면 불평하시마시고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깨끗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를 소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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