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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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8-9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은 자녀들을 낳고 그 수를 불려나갔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류가 셈 함 야벳 삼형제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구성되었음을 창세기 10장과 11장을 통해 말해줍니다.
창세기 9장 말미에 노아가 홍수 때 육백살이었으며 홍수 후 삼백오십년을 살다가 구백오십세가 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노아가 홍수 후 삼백오십년 동안 셈 함 야벳 외 다른 아들을 추가로 생산하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잉태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같이 본장 1-2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홍수 이후 지면의 물이 조금씩 빠지면서 산이나 고지대만 보였던 육지가 드디어 평지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살 때는 서로 흩어져서 제각각 살았지만 평지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본문의 시날 평지는 인류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10:6-10에 함의 족보가 나옵니다.
특히 10:8-9에는 니므롯은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은 이름의 뜻대로 아주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용감한 사냥꾼으로 등장하지만 단지 사냥꾼의 정도를 넘어 세력을 형성하고 큰 집단을 이룬 권력형 인간이었습니다.
10:10 에는 니므롯이 최초의 국가를 이룬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평지에 기반하여 출발하였고 그 중심지는 수도 바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홍수 후 겨우 삼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라가 형성될 수 있을 정도로 인구가 증가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본장 11장 10절 부터 시작되는 셈의 족보를 보면 특이한 사실이 있습니다.
셈은 육백세, 그의 아들 아르박삿은 438세,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는 464세 이런 식으로 엄청난 장수를 했습니다.
후에 수명은 점점 줄어 데라와 아브라함에 이르러 200살에 못미치게 됩니다.
아무튼 당시 사람들의 수백년에 달하는 엄청난 수명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장수명은 인구의 증가 뿐만 아니라 문명과 기술의 급속한 진보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사람들이 평지에 모이니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는 흔했던 돌이지만 평지에서는 돌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흙을 빚어 뜨거운 열을 가해 단단히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라고 알려진 역청은 이미 창세기 6:14절에 노아의 방주의 방수를 담당하였기에 이미 알려진 기술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반 기술들은 실제 프로젝트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지금도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막대한 일이었겠습니까?
:5-6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본 절을 잘못이해하면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 사람들의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사람들의 탑을 쌓는 시도를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으로 보셨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7-9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아예 따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약 3,0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멸종되고 사라진 언어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많은 언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음입니다.
지구 반대편의 지리적으로 아주 먼 나라의 언어들끼리 자음은 상당히 비슷하고 그 순서나 모음이 틀릴 뿐이라는 연구 결과가 아주 많습니다.
언어 공통 기원설은 무시할 수 없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고자하는 바를 어떻게 여기시는 가입니다.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시 본문 4절을 읽겠습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23층 555미터의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여의도 63빌딩의 두배 높이라고 합니다.
100층의 빌딩을 건축하는 것은 50층 빌딩 건축의 두배가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4배가 든다고 합니다.
건축비 뿐만 아니라 향후 엘리베이터 등 유지비용과 이용 및 접근 시간의 측면에서도 초고층 빌딩은 가격 대비 효율이 낮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싼 뉴욕이나 서울의 땅값을 고려한다고해도 초고층 빌딩의 가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비효율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빌딩 건축은 운동에너지를 정적인 위치에너지로 바꾸는 소모적인 비생산적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이유는 상징성에 있습니다.
그룹의 이름을 알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된 함의 손자 니므롯은 최초로 나라를 세운 자입니다.
사람들을 모아 도시를 만들고 집단권력을 형성하여 주변의 세력들을 힘으로 종속시켜 더욱 세를 배가시켰습니다.
권력의 집중은 이렇게 인류의 초기 형성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모이면 권력이 생기고 그 권력은 한 쪽으로 집중된다는 말입니다.
권력의 집중은 부작용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먼저 교만입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하였습니다.
다니엘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사르는 이러한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벌을 받고 미친 사람이 되어 들판을 떠돌았습니다.
그래도 느부갓네사르는 다행히도 그 덕분에 하나님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니므롯은 나라의 세워 왕이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신격화하였습니다.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여신으로 숭배되었고
니므롯의 아들 담무즈는 바벨론 신화의 남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시는 이유는 바로 교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도덕성 상실입니다.
집중된 권력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심판자의 위치에 있다보니 정작 자신의 죄의 경계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의 결과는 죄의 번영과 희생자들의 양산입니다.
니므롯은 도시계획과 바벨탑 건설이라는 무리한 국책사업으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요즈음 서울의 아파트 가격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권력의 집중은 자본의 집중을 낳을 수 밖에 없으며 수도권에 권력과 자본의 집중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문제는 그로인해 권력과 자본의 집중 세력외의 다수의 서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노동과 생산으로 얻어진 결과물이 가만히 있는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으로 소모되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평생을 일해도 집 한채 가격도 갚을 수 없다는 암울한 현실은 사람들을 불안케하고 좌절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유권을 영구히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시고 고리대금이나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불법으로 규정하셨습니다.
불로소득과 천민자본주의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않고 돈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차별과 계급이 발생하게 되고 차별과 계급은 부와 권력의 집중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음행이 가득하게 되는데 권력층과 가진 자들이 더욱 앞장섰습니다.
세 번째 지상의 천국화입니다.
니므롯은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닿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문명과 기술이 발달하게되니 인간은 쾌락과 감각의 만족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배부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맛있고 진귀한 것을 찾아 다닙니다.
자기 아내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강렬하고 짜릿한 쾌락을 찾아 다닙니다.
더 아름답고 더 멋지고 더 젊어지기를 위한 방법과 수단을 잧아 다닙니다.
돈만 있으면 하고자하는 모든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향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영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외의 것을 찾는 영혼은 이미 죽은 영혼입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답고 맛있고 짜릿하고 좋은 것이어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썩어져 없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찾는 자들은 바벨론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모습, 즉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실 리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바벨론,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
요한계시록 18: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바벨론의 미래입니다.
인간이 세우고 인간이 만든 바벨론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향할 것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스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바벨론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가 하늘에 상달됩니다.
이 어려운 코로나 혼란의 시대에서,
돈과 권력이 하나님이 되버린 이 바벨론 혼돈의 시대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영혼의 소유자들이 됩시다. 아멘.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은 자녀들을 낳고 그 수를 불려나갔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류가 셈 함 야벳 삼형제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구성되었음을 창세기 10장과 11장을 통해 말해줍니다.
창세기 9장 말미에 노아가 홍수 때 육백살이었으며 홍수 후 삼백오십년을 살다가 구백오십세가 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노아가 홍수 후 삼백오십년 동안 셈 함 야벳 외 다른 아들을 추가로 생산하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잉태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같이 본장 1-2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홍수 이후 지면의 물이 조금씩 빠지면서 산이나 고지대만 보였던 육지가 드디어 평지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살 때는 서로 흩어져서 제각각 살았지만 평지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본문의 시날 평지는 인류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10:6-10에 함의 족보가 나옵니다.
특히 10:8-9에는 니므롯은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은 이름의 뜻대로 아주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용감한 사냥꾼으로 등장하지만 단지 사냥꾼의 정도를 넘어 세력을 형성하고 큰 집단을 이룬 권력형 인간이었습니다.
10:10 에는 니므롯이 최초의 국가를 이룬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평지에 기반하여 출발하였고 그 중심지는 수도 바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홍수 후 겨우 삼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라가 형성될 수 있을 정도로 인구가 증가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본장 11장 10절 부터 시작되는 셈의 족보를 보면 특이한 사실이 있습니다.
셈은 육백세, 그의 아들 아르박삿은 438세,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는 464세 이런 식으로 엄청난 장수를 했습니다.
후에 수명은 점점 줄어 데라와 아브라함에 이르러 200살에 못미치게 됩니다.
아무튼 당시 사람들의 수백년에 달하는 엄청난 수명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장수명은 인구의 증가 뿐만 아니라 문명과 기술의 급속한 진보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사람들이 평지에 모이니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는 흔했던 돌이지만 평지에서는 돌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흙을 빚어 뜨거운 열을 가해 단단히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라고 알려진 역청은 이미 창세기 6:14절에 노아의 방주의 방수를 담당하였기에 이미 알려진 기술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반 기술들은 실제 프로젝트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지금도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막대한 일이었겠습니까?
:5-6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본 절을 잘못이해하면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 사람들의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사람들의 탑을 쌓는 시도를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으로 보셨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7-9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아예 따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약 3,0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멸종되고 사라진 언어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많은 언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음입니다.
지구 반대편의 지리적으로 아주 먼 나라의 언어들끼리 자음은 상당히 비슷하고 그 순서나 모음이 틀릴 뿐이라는 연구 결과가 아주 많습니다.
언어 공통 기원설은 무시할 수 없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고자하는 바를 어떻게 여기시는 가입니다.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시 본문 4절을 읽겠습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23층 555미터의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여의도 63빌딩의 두배 높이라고 합니다.
100층의 빌딩을 건축하는 것은 50층 빌딩 건축의 두배가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4배가 든다고 합니다.
건축비 뿐만 아니라 향후 엘리베이터 등 유지비용과 이용 및 접근 시간의 측면에서도 초고층 빌딩은 가격 대비 효율이 낮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싼 뉴욕이나 서울의 땅값을 고려한다고해도 초고층 빌딩의 가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비효율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빌딩 건축은 운동에너지를 정적인 위치에너지로 바꾸는 소모적인 비생산적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이유는 상징성에 있습니다.
그룹의 이름을 알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된 함의 손자 니므롯은 최초로 나라를 세운 자입니다.
사람들을 모아 도시를 만들고 집단권력을 형성하여 주변의 세력들을 힘으로 종속시켜 더욱 세를 배가시켰습니다.
권력의 집중은 이렇게 인류의 초기 형성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모이면 권력이 생기고 그 권력은 한 쪽으로 집중된다는 말입니다.
권력의 집중은 부작용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먼저 교만입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하였습니다.
다니엘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사르는 이러한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벌을 받고 미친 사람이 되어 들판을 떠돌았습니다.
그래도 느부갓네사르는 다행히도 그 덕분에 하나님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니므롯은 나라의 세워 왕이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신격화하였습니다.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여신으로 숭배되었고
니므롯의 아들 담무즈는 바벨론 신화의 남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시는 이유는 바로 교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도덕성 상실입니다.
집중된 권력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심판자의 위치에 있다보니 정작 자신의 죄의 경계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의 결과는 죄의 번영과 희생자들의 양산입니다.
니므롯은 도시계획과 바벨탑 건설이라는 무리한 국책사업으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요즈음 서울의 아파트 가격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권력의 집중은 자본의 집중을 낳을 수 밖에 없으며 수도권에 권력과 자본의 집중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문제는 그로인해 권력과 자본의 집중 세력외의 다수의 서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노동과 생산으로 얻어진 결과물이 가만히 있는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으로 소모되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평생을 일해도 집 한채 가격도 갚을 수 없다는 암울한 현실은 사람들을 불안케하고 좌절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유권을 영구히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시고 고리대금이나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불법으로 규정하셨습니다.
불로소득과 천민자본주의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않고 돈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차별과 계급이 발생하게 되고 차별과 계급은 부와 권력의 집중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음행이 가득하게 되는데 권력층과 가진 자들이 더욱 앞장섰습니다.
세 번째 지상의 천국화입니다.
니므롯은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닿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문명과 기술이 발달하게되니 인간은 쾌락과 감각의 만족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배부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맛있고 진귀한 것을 찾아 다닙니다.
자기 아내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강렬하고 짜릿한 쾌락을 찾아 다닙니다.
더 아름답고 더 멋지고 더 젊어지기를 위한 방법과 수단을 잧아 다닙니다.
돈만 있으면 하고자하는 모든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향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영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외의 것을 찾는 영혼은 이미 죽은 영혼입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답고 맛있고 짜릿하고 좋은 것이어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썩어져 없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찾는 자들은 바벨론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모습, 즉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실 리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바벨론,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
요한계시록 18: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바벨론의 미래입니다.
인간이 세우고 인간이 만든 바벨론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향할 것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스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바벨론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가 하늘에 상달됩니다.
이 어려운 코로나 혼란의 시대에서,
돈과 권력이 하나님이 되버린 이 바벨론 혼돈의 시대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영혼의 소유자들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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