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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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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761회 작성일 20-05-3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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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여러가지 복잡한 정보들을 비밀스러운 글귀들 곳곳에 숨겨놓은 퍼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시다' 라는 단순한 메세지를 여러 상징을 통해 일관되게 반복한다고 배웠습니다.

정통교회에서도 문자적인 해석과 상징적인 해석 모두 의견이 분분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실상 요한계시록의 여러 환상들이 문자적으로 해석되는 상징적으로 해석되는 별다른 큰 문제는 없습니다.

용과 열 뿔달인 짐승, 열 왕들이 문자적으로 용처럼 생겼거다 실제로 뿔이 열 개가 달렸든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함에 있어서 하나라는 점입니다.

13장의 짐승의 수 666 또한 문자적으로 보든 상징적으로 보든 이 세상의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실권을 장악한 악한 세상으로부터 성도의 순수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의도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자적인 해석을 주장하는 정통교회의 목사님들도 12장의 용과 용이 핍박하는 여자가 사단과 핍박받는 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6-16장 까지의 7년 대환란 또한 문자적인 해석이 아닌 환난이 끊이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라는 상징적인 기간을 뜻한다는 것을 이천년이 넘는 세계역사를 통해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문자적인 해석이나 상징적인 해석 둘 다 큰 충돌은 없습니다.

그런데 본장 20장은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인 해석이 피해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게 됩니다. 

문자적인 해석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계시록 19장과 20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19장은 백마타신 예수님의 최후 승리를 보여줍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으로 사단과 그의 무리들과 거짓선지자들을 완전히 무찔러 이기는 장면입니다.

이어서 20장에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예수님께 패배한 사단이 잡혀 무저갱에 천 년동안 결박당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천년이 바로 예수님과 성도들이 다스릴 천년왕국과 같은 기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년 후에 용이라고 불리는 사단이 다시 나타나 불신자들을 모아 한 번더 전쟁을 치른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상징적인 해석을 주장하는 측은

19장과 20장은 연결된 사건이 아닌 동일한 사건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본 것이라고 말합니다.

19장의 백마탄 예수님의 최후 승리와 20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의 승리는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상징적인 해석을 주장하는 측은 20장의 용이 결박당하는 사건은 요한계시록 12장의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 이미 이루어진 사건을 말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부활 사건을 통해 사단의 권세를 천년동안 결박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천년은 문자적인 천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리하신 후 지금까지의 기간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문자적 해석 측은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시고 전쟁에 승리하시어 사단을 결박하시는 사건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이며 천년 왕국도 마찬가지로 미래의 일이며 천년 왕국이 끝나면 한 번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상징적 해석 측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부활 승리하시어 사단을 천년 동안 결박하시고 그 천년이 바로 이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현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년왕국을 앞으로 다가올 사건이냐 아니면 이천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일이냐로 서로 다르게 본 다는 것입니다.

천년 왕국을 서로 다르게 본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 문제인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면 됐지 천년왕국을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는가말입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는 모든 성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본문에서 일단 천년 왕국에서 왕 노릇할 대상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 이들은 당연히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 이들은 13장의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들로서 악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 대상은 순교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거룩한 성도들 말합니다.

이 왕노릇하는 성도들에 대해 조금더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들의 수명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수명은 4절의 천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최소 천년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5절에는 죽은 자들이 언급됩니다.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느냐가 입니다.

바로 왕 노릇하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제외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수명은 나와있지 않지만 분명히 본문은 그들이 천년을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죽은 자들이 과연 천년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죽은 자들은 육신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영적으로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이를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바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저와 우리 모두는 이러한 첫째 부활에 이미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될 것이 아니라 이미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지금 현재가 천년왕국이 펼쳐진 시기이며 우리는 현재 제사장으로서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상징적인 해석을 따른 천년왕국의 이해입니다.

문자적인 해석을 따라 아직 천년 왕국이 오질 않았으며 아직 나는 왕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천년왕국을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세계관과 인생관이 갈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 천년왕국의 현장에서 왕노릇한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왕처럼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세적인 천년왕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본문처럼 우리는 천년을 다 살지 못합니다.

천년은 커녕 십분의 일인 백년만 살아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천년왕국의 왕이 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영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수명은 의미 없습니다.

우리가 새로 태어난 영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사망, 즉 첫째 사망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사망을 감당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사망, 첫째 사망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영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현세적인 천년왕국에 대한 비판은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부터 나옵니다.

나는 예수 믿고 거듭났지만 아무리봐도 나는 절대 왕은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이해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일이만원에 울고 웃고 치고 받고 좋아 죽습니다.

내가 사는 꼴을 보면 아무리봐도 이건 왕노릇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왕같은 제사자으로서 지금도 왕노릇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니 억지로 믿을 것이 아니라 한 번 성경을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죄목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님은 아무리봐도 왕은 아니셨습니다.

성도 궁궐도 없었습니다, 아니 머리 둘 집도 없었습니다.

군대도 신하도 없었습니다.

그의 발을 씻겨줄 종도 없었고 오히려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오 빌라도 같은 악한 권세자조차 예수님을 왕이라 칭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왕의 모습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왕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바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노릇하는데 돈도 필요없고 군대도 국가도 영토도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마음먹고 예수님처럼 살면 즉시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인내하는 것이 왕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강대했던 로마제국은 천년을 못넘기고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로마제국을 굴복시키시고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여러분을 왕이라 불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예수님처럼 왕노릇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현세적인 천년왕국을 살아가는 왕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7-10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왕은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의 맨 정점에 위치한 사람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왕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적국의 동태에 무관심한 왕은 무능한 왕으로서 그 나라는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천년이 차면 사탄이 옥에서 놓인다고 합니다.

이 천년이 반드시 문자적인 의미가 아님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 이 후 천년왕국이 시작된지 이천년이 넘었습니다.

이 천년왕국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끝은 있습니다.

천년 왕국이 망하는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는 끝입니다.

그 끝 앞에 사단의 최후의 도발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단은 사망의 세력들을 형성하여 숫자적인 면에서 거룩한 성도들을 압도할 것은 바다의 모래와 같아는 표현의 본문을 통해 명백히 드러납니다.

9절에 성도들의 진과 성을 포위한 사망의 세력들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태워버린다고 합니다.

천년 왕국의 왕노릇하는 거룩한 성도들의 역할은 사망의 세력들을 각종 무기와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불이 내려올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사망의 세력을 일시에 멸망시키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왕노릇하는 제사장들로서 우리의 역할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의 몫은 더욱 자기 자신을 돌이켜 세상과 구별하고 거룩하게 자신을 지키는 자신과의 싸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골고다 길을 걸으신 예수님처럼 끝까지 참고 견디며 자신을 향해 저주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시는 진정한 왕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천년왕국은 결코 먹고 즐기고 다스리는 환상적인 왕노릇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며, 자신과의 싸움의 현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여전히 비웃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천년 왕국의 끝이 다가올 수록 잠시 풀려난 사단의 도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믿지않는 세상사람들의 세력을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증언하며 하나님의 말씀때문에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들처럼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드로서 왕노릇하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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