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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본 십자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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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980회 작성일 20-05-03 17:53

본문

누가복음 23:39-43

오늘의 본문을 읽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의 서술내용만을 가지고 이해하는 방법과

본문과 구약의 예언을 대조하며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1. 사람의 관점

먼저 본문만을 국한하여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종교지도자들의 로마법 준수

:1-2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이스라엘 대제사장들은 원래 로마제국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내는 세금 준수의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시므로 황제를 신으로 여기는 로마제국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로마 황제에게 세금준수를 부정하고 황제권에 도전하는 반역죄로 예수님을 고발하였습니다.

그토록 부정하던 로마황제의 권위와 세금준수의무를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갑자기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로마황제를 새로운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새내기 총독 빌라도의 우유부단함

당시 빌라도는 물설고 낯설은 이스라엘에 와서 자신의 통치력을 확장하는 것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들의 자치법으로 사형을 비롯한 각종 형벌집행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는 로마제국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마황제의 화상을 걸어놓고 숭배케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잔인한 자였습니다.

그런 빌라도를 무서워하였던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 로마제국의 법으로 고발함으로 빌라도를 통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머리 좋은 빌라도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또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3-4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3절의 '네 말이 옳도다' 는 헬라어 본문으로 '네가 그렇게 말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왕되심에 빌라도의 인준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정곡을 찌르는 대답에 놀란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위해 헤롯왕에게 예수님 사건을 이첩합니다.


3) 헤롯왕

:6-7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은 성씨이고 본문의 헤롯왕은 헤롯 안디바입니다.

앗시라아 제국과 바벨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시기부터 귀환하여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마케도니아에 의해 점령당하고 후에 로마제국에의해 정복당하게 됩니다.

이 암울했던 400년의 기간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사이에 위치함으로 신구약 중간기라고 합니다.

이 당시 마카비 왕조가 이스라엘을 이끌며 그리이스와 로마 세력에 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카비 왕조는 이스라엘의 정치 뿐만 아니라 종교까지 독점하여 유다족임에도 불구하고 레위족만 할 수 있는 대제사장직까지 독식하였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원리주의세력이 바리세인들이었고, 마카비 왕조를 지지하는 세력은 실용주의자들인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헤롯가문은 이두매 사람들로 에돔의 후손입니다.

그런 그들이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시이저에게 큰 도움을 준 댓가로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을 등에 업고 마카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헤롯 가문은 실상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에돔인이기에 바리세인과 사두개인 모두에게 크나큰 반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헤롯 가문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폭정으로 이스라엘을 강제통치하였습니다.

더구나 본문의 헤롯왕인 헤롯 안디바는 철저한 막장 중의 막장으로 자신의 동생의 처인 헤로디아를 취하고 이를 비판하던 세례 요한을 처형하였습니다.

이런 인간 쓰레기 헤롯 안디바를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헤롯에게 예수님의 재판을 맡기자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인간 쓰레기 헤롯에게 머리 굽히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위해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 대신 빌라도를, 그리고 하나님 대신 인간 쓰레기 헤롯을 새로운 하나님으로 의지하였습니다.

:8-9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에돔 사람으로 짝퉁 이스라엘 왕인 헤롯은 예수님을 초능력자나 마술사로 여기고 이적을 행하시도록 명하였으나 예수님은 아예 대답조차 거부하셨습니다.

:11-12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무시당했다고 여긴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하였지만 때리거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로마총독 빌라도가 무죄를 선고한 사람을 헤롯은 함부로 유죄 선고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헤롯의 조심스러움을 빌라도는 매우 흡족하게 여겼습니다.

로마제국은 그들이 정복한 여러 나라에 헤롯 같은 친로마 성향의 자치 왕권을 인정하는 간접 통치방식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으로 자치 왕권을 없애고 대신 총독을 보내는 직접 통치방식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자치 왕인 헤롯과 새로 부임한 총독 빌라도는 서로 원수 중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해 헤롯과 빌라도가 친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4) 군중 선동 - 바라바를 하나님으로

:18-19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2-25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헤롯에게도 예수님의 유죄를 인정받지 못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군중을 선동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킨 자로서 여러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바라바는 열심당의 일원으로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독립을 주장하며 무력봉기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잔인한 로마제국은 철저한 무관용 원칙으로 독립무장세력을 응징하였기에 한 명의 무장세력이 나타나면 그가 속한 마을 전체를 멸절함으로 그 피해는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럼으로인해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독립은 커녕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이러한 무력봉기 세력을 마냥 지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특히 열심당의 군중을 선동하는 행위를 가장 경계하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위해 군중의 선동을 동원하였습니다.

하나님 대신 빌라도를 택하고, 하나님 대신 헤롯을 의지해도 안되니 이제는 하나님 대신 열심당의 군중 선동을 의지한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죽이기위해 그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관점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이라면 예수님은 가장 억울한 정치적 스캔들의 희생자일 것입니다.

여러 정치적 상황이 꼬이고 꼬여 하필이면 왜 빌라도가 총독이되어서, 하필이면 왜 헤롯이, 왜 바라바가 등등 모든 조건들이 기가막히게 맞아들어감으로 예수님은 억울하게 사형당하셨습니다.

민수기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시편 22:15-16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미 민수기와 시편을 비롯한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예언되었고 본문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모든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져 갔습니다.

언약의 성취 과정에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한 악인들이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관점의 차이

그러나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사실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빌라도 아니 헤롯을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수많은 반성의 기회를 놓쳤을까요?

본문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두명의 행악자들이 나옵니다. 


: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두번째 행악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가장 천국 쉽게 간 사람으로 말입니다.

평생을 예수 믿고 신앙생활 열심히하다 천국간 사람에 반해 불과 몇 초 안되는 말 한마딕로 천국 티켓을 거머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철저한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까요?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조차 우리의 성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우리의 성과, 예수님 영접하고 회개하는 것도 우리의 성과로 여기는 것은 철저한 사람의 관점입니다.

다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로 돌아가 봅시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겠다는 목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로마 제국에 힘을 헤롯왕의 권력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중을 선동함으로써 성전의 권위 수복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표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직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한 출발부터가 잘못됐다는 반성의 여지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본문 39절의 두 행악자를 보게됩니다.

둘 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

사지가 십자가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습니다.

그와중에도 한 행악자는 예수님께 자신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십자가에 묶인 그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행악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받아들였습니다.

.
예수님께 지시하는 대신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반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한 것 뿐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무엇이든 해보려고 아둥바둥 애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예수님을 죽이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위해 뭐든지 해보았습니다.

차마 상상도 못할 짓들을 벌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 예수님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어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생즉사 사즉생, 살려고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살리라는 말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명언이지만 실은 이천년전 요한복음을 톻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살고자 하지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미 죽은 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자는 자신의 방법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 은혜를 구한다면 이런 저런 방법을 제시하면서 예수님께 명령하는 것을 기도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나의 방법을 내려놓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것만이 은혜를 구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은혜를 구하는 자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은혜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방법을 내려놓는 것조차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들의 모략과 공작을 의지하던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야 당연히 자신들의 방법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첫번째 행악자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을 방법을 앞세우며 예수님께 명령을 합니다.

단지 모든 상황이 최악이라고해서 나의 방법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선택의 은총을 베풀어주셔야 나의 방법을 내려놓고 오직 은혜만을 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큰 재산도 없고 권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 있기에 그 어느 누구보다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나의 마음에서 내 방법,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순수히 바라는 진정 복받은 자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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