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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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지난 주에 상고했던 히브리서는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왜 믿어야 하는지를 증명하였습니다.
이번 주 야고보서 또한 믿음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만 히브리서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왜 믿음을 지켜야 하는지 증거했다면
야고보서는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고난과 핍박이 심했던 후기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였다면
야고보서는 초기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방종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믿음을 갖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1) 가장 큰 위험요소 - 거짓된 믿음
당시 초대교회는 이제 막 성령님의 강림을 체험하여 구원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기존의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더이상 얽매이지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하였으며 병고침과 예언과 방언 등의 은사들이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신혼부부의 허니문 기간처럼 좋기만한 그런 날들이 계속되어가은 가운데 그런데 뭔가 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할 때는 다 천사들처럼보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는 아직 거듭나지 못해 죄가운데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신자들끼리 싸우니까 이건 서로 자기가 옳다 자기가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이다라며 서로 조금도 양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보다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그리고 거듭나서 구원받았다고 말은 하면서 구원받기 전의 죄들을 여전히 저지르고 변화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야고보서 본문이 기록될 당시 로마제국과 유대인들의 핍박과 박해보다 이러한 거짓된 믿음이라는 내부적인 위험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되기에 믿음은 초대교회에서 절대적이며 존재론적인 의미였습니다.
만약 믿음이 변질되거나 잘못된다면 초대교회는 그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의 순수성을 확립하고자 하였습니다.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으로 구분하고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강조하였습니다.
2) 두 마음 - 정욕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두 마음' 으로 표현되는 거짓된 믿음의 원인은 세상의 정욕에 있다고 합니다.
: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본문에서 살인이라는 말은 문맥상 미움을 뜻합니다.
정욕은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게합니다.
4절에 간음한 여인으로 비유함으로 세상의 유혹에 빠지는 정욕은 절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정욕과 세상의 자랑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고 결론 짓습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은 결코 정욕을 포기할 수도 내버릴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정욕을 내려놓기에는 세상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합니다.
3) 겸손한 자를 도우시는 성령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벽하게 깨끗하고 죄를 절대로 행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시지도 요구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기대하셔도 요구하셔도 어차피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욕으로 인해 수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당장 죄를 멈출 수도 없으며 그러기에는 우리 힘으로는 너무나 벅차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 한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바로 '겸손' 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당장 멈추고 기존의 못된 습관을 버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겸손' 하기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겸손' 하려는데 돈이 든다거나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마음을 낮출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방언한다고해도 마음이 교만하면 성령님은 역사하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몫은 그다지 어렵지 않는 마음을 낮추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출애굽기 20:5 의 십계명을 인용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세상의 정욕보다 더 능력있음을 말합니다.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세상의 유혹이 아무리 강하다고하여도 하나님은 더 큰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정욕 이라는 내부의 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당장 확연히 보이지는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정욕이 없어지고 세상대신 하나님을 구하게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급하고 성내고 고집스럽고 시기질투하던 사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랑과 온유와 자비 양선 충성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사람은 안 바뀐다지만 이렇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 그 어려운 일이 가능해집니다.
이 엄청난 일의 시작은 아주 쉽고 작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낮추기만 하면 됩니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무거운 짐을 올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에 반해 내리는 것은 힘이들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높이는 어려운 작업은 하나님께서 담당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낮추기만 하면 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기만 하면 됩니다.
4) 겸손한 자의 삶
야고보 사도는 교회 내의 거짓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 대표적인 예 두가지를 듭니다.
하나는 비방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입니다.
(1) 비방하는 사람들
: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서로 비방하는 이유는 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판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비방하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않아야 하며 판단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겸손하면 됩니다.
(2) 세상에 몰두하는 사람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당시 무역 중개업에 종사하던 많은 유대인들이 초대교회에 들어왔지만 참된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의 사업에 모든 삶의 초점이 맞춰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고 있었습니다.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교만하여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낮추면 이 땅에서의 육신의 날은 안개처럼 너무나 짧고 허무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오직 그 계획 하나만 바라보고 가야합니다.
오직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가는데 만약 그것 하나가 잘못되면 인생 전체가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삶이 아니라 도박에 가깝습니다.
거기에는 행복도 안식도 평안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은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만약 이것이 안된다고해도 저것이 되니까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인생은 나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도 허탄한 자랑, 즉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결론)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거짓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예를 통해 이들의 거짓된 믿음의 원인은 교만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이를 통해 참된 믿음의 비결은 '겸손' 임을 증명합니다.
오직 마음을 낮춤으로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서 일하시면 우리는 변화받고 삶이 바뀝니다.
나는 마음을 낮추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바뀌지 않던 나쁜 습관들이 없어지고
급한 성격이 온유해지고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이기적인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는 놀라운 기적이 조금씩 조금씩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사람이 확 변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것이 진짜 믿음이라고 합니다.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는 믿음, 결과를 만들어 내는 믿음입니다.
내가 일부러 행하고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다만 마음을 낮추었을 뿐인데 성령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결과를 만들어주시는 믿음,
성령님께서 열매를 맺어주시는 믿음의 비결은
우리의 마음을 낮추는 겸손입니다.
본 장 17절은 이러한 겸손없는 거짓 믿음은 행함도 열매도 없는 말뿐인 믿음이며 이는 죄라고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극히 쉬운 일을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기만 하면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참된 믿음, 겸손의 믿음을 사모합시다. 아멘.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지난 주에 상고했던 히브리서는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왜 믿어야 하는지를 증명하였습니다.
이번 주 야고보서 또한 믿음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만 히브리서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왜 믿음을 지켜야 하는지 증거했다면
야고보서는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고난과 핍박이 심했던 후기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였다면
야고보서는 초기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방종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믿음을 갖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1) 가장 큰 위험요소 - 거짓된 믿음
당시 초대교회는 이제 막 성령님의 강림을 체험하여 구원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기존의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더이상 얽매이지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하였으며 병고침과 예언과 방언 등의 은사들이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신혼부부의 허니문 기간처럼 좋기만한 그런 날들이 계속되어가은 가운데 그런데 뭔가 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할 때는 다 천사들처럼보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는 아직 거듭나지 못해 죄가운데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신자들끼리 싸우니까 이건 서로 자기가 옳다 자기가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이다라며 서로 조금도 양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보다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그리고 거듭나서 구원받았다고 말은 하면서 구원받기 전의 죄들을 여전히 저지르고 변화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야고보서 본문이 기록될 당시 로마제국과 유대인들의 핍박과 박해보다 이러한 거짓된 믿음이라는 내부적인 위험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되기에 믿음은 초대교회에서 절대적이며 존재론적인 의미였습니다.
만약 믿음이 변질되거나 잘못된다면 초대교회는 그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의 순수성을 확립하고자 하였습니다.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으로 구분하고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강조하였습니다.
2) 두 마음 - 정욕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두 마음' 으로 표현되는 거짓된 믿음의 원인은 세상의 정욕에 있다고 합니다.
: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본문에서 살인이라는 말은 문맥상 미움을 뜻합니다.
정욕은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게합니다.
4절에 간음한 여인으로 비유함으로 세상의 유혹에 빠지는 정욕은 절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정욕과 세상의 자랑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고 결론 짓습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은 결코 정욕을 포기할 수도 내버릴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정욕을 내려놓기에는 세상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합니다.
3) 겸손한 자를 도우시는 성령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벽하게 깨끗하고 죄를 절대로 행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시지도 요구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기대하셔도 요구하셔도 어차피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욕으로 인해 수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당장 죄를 멈출 수도 없으며 그러기에는 우리 힘으로는 너무나 벅차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 한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바로 '겸손' 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당장 멈추고 기존의 못된 습관을 버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겸손' 하기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겸손' 하려는데 돈이 든다거나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마음을 낮출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방언한다고해도 마음이 교만하면 성령님은 역사하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몫은 그다지 어렵지 않는 마음을 낮추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출애굽기 20:5 의 십계명을 인용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세상의 정욕보다 더 능력있음을 말합니다.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세상의 유혹이 아무리 강하다고하여도 하나님은 더 큰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정욕 이라는 내부의 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당장 확연히 보이지는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정욕이 없어지고 세상대신 하나님을 구하게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급하고 성내고 고집스럽고 시기질투하던 사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랑과 온유와 자비 양선 충성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사람은 안 바뀐다지만 이렇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 그 어려운 일이 가능해집니다.
이 엄청난 일의 시작은 아주 쉽고 작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낮추기만 하면 됩니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무거운 짐을 올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에 반해 내리는 것은 힘이들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높이는 어려운 작업은 하나님께서 담당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낮추기만 하면 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기만 하면 됩니다.
4) 겸손한 자의 삶
야고보 사도는 교회 내의 거짓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 대표적인 예 두가지를 듭니다.
하나는 비방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입니다.
(1) 비방하는 사람들
: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서로 비방하는 이유는 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판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비방하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않아야 하며 판단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겸손하면 됩니다.
(2) 세상에 몰두하는 사람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당시 무역 중개업에 종사하던 많은 유대인들이 초대교회에 들어왔지만 참된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의 사업에 모든 삶의 초점이 맞춰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고 있었습니다.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교만하여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낮추면 이 땅에서의 육신의 날은 안개처럼 너무나 짧고 허무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오직 그 계획 하나만 바라보고 가야합니다.
오직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가는데 만약 그것 하나가 잘못되면 인생 전체가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삶이 아니라 도박에 가깝습니다.
거기에는 행복도 안식도 평안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은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만약 이것이 안된다고해도 저것이 되니까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인생은 나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도 허탄한 자랑, 즉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결론)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거짓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예를 통해 이들의 거짓된 믿음의 원인은 교만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이를 통해 참된 믿음의 비결은 '겸손' 임을 증명합니다.
오직 마음을 낮춤으로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서 일하시면 우리는 변화받고 삶이 바뀝니다.
나는 마음을 낮추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바뀌지 않던 나쁜 습관들이 없어지고
급한 성격이 온유해지고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이기적인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는 놀라운 기적이 조금씩 조금씩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사람이 확 변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것이 진짜 믿음이라고 합니다.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는 믿음, 결과를 만들어 내는 믿음입니다.
내가 일부러 행하고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다만 마음을 낮추었을 뿐인데 성령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결과를 만들어주시는 믿음,
성령님께서 열매를 맺어주시는 믿음의 비결은
우리의 마음을 낮추는 겸손입니다.
본 장 17절은 이러한 겸손없는 거짓 믿음은 행함도 열매도 없는 말뿐인 믿음이며 이는 죄라고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극히 쉬운 일을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기만 하면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참된 믿음, 겸손의 믿음을 사모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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