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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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브리서 4: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는 로마제국의 지독한 박해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던 성도들에게 믿음의 정절을 지키로독 권면하는 서신입니다.
계속되는 로마제국의 박해로 인해 당시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우려되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1)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여 환상과 신비를 추구하는 천사숭배사상
2) 진리를 바탕으로하는 믿음을 포기하고 형식적인 종교행위로 회귀
히브리서는 복음의 진리만이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나아갈 바임을 주장하며 신비주의나 형식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지말고 더욱 말씀 중심의 흔들림없는 신앙을 회복하도록 강변합니다.
1-2 장에서 예수님의 천사보다 위대하심을 증거하고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으로 연합됨을 통해 우리가 천사보다 더 위대한 자들임을 증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오 그의 복음의 탁월성을 주장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이유는 신비한 능력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죽음을 감당하는 고난임을 밝힘으로 성도의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3장에서는 모세보다 더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임으로써 과거 형식주의적 신앙으로 돌아가지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삶과 계속되는 고난이 지속적으로 길어짐으로인해 성도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믿은 진리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유대교가 강조하는 형식중심의 안식일의 전통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의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진리의 복음을 포기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런 사람들을 완고한 사람들이라고 칭합니다.
3:7-8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진리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바꾸기보다 자신의 익숙한 행위에 집착하며 진리를 거부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마음이 미혹된 자 : 하나님은 안보이고 나 밖에 안보여~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끊임없이 걷고 또 걷지만 길을 모르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잘못된 길로 가게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미혹되면 하나님의 길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장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취해 걷고 또 걷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안식에 이를 수 없다고 합니다.
걷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길을 아느냐입니다.
신앙생활의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입니다.
2) 악한 마음 :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마음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하나님의 길을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민수기 13-14장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집트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조금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불신앙의 댓가는 40일이면 갈 길을 40년이나 헤메게되는 쓰라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욱 완고해져갔습니다.
이를 본문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악해보이는 사람과 하나님을 안 믿어도 선해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선과 악은 결국엔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귀결됩니다.
3) 내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죄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본문은 또한 이러한 완고한 마음의 이유를 죄의 유혹에서 찾습니다.
죄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음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지않고 혼자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상심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죄의식없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입니다.
이러한 죄에 노예가 되면 그 마음에는 안식과 평화가 사라지고 항상 불안하고 근심에 휩싸이게 되며 그 상태가 지속될 수록 완고해지게 됩니다.
4) 귀로는 들어도 마음의 귀는 닫은 자들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자신의 믿음과 결부시켜야 하는데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이 불순종이라고 합니다.
4:8-9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금요일 오후부터 아무런 행위도 하지않는 형식적인 안식일 준수를 여호수아의 안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7절의 시편 95편을 통해 안식일은 특정한 날이 아니며 구약 이스라엘의 안식일의 전통은 참된 안식을 줄 수 없음을 밝힙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본문은 참된 안식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1) 안식의 장소 - 성전이 아닌 우리 자신
히브리서 3장은 유대교의 성전이 안식의 장소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가 그의 집, 진짜 성전임을 밝힙니다.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안식일은 특정 장소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확신하고 굳게 잡는 마음이 진정한 안식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2) 기존의 나를 멈추는 것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구약 여호수아의 형식적인 안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안식은 성도들이 마음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점점 확장되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안식은 자신을 내려놓음을 전제로 출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내가 공헌하거나 힘쓴 것이 전혀 없이 실현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참여하려면 기존의 나의 생각, 계획, 야망, 방식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3) 멈춤을 위한 노력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내가 가던 방향에서 하나님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멈추어야 하는데 이게 꽤나 힘이 듭니다.
짐이 많을수록 차가 무거울 수록 멈추는데 힘이 들 듯 그간 자신이 절대화 신성화했던 행위들이 많을 수록 그것들을 멈추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멈추려는 이 노력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4) 말씀에서 힘을 얻자!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 동안 본문을 통해 보았듯이 참된 안식의 문제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행위를 고치는 것도 어렵지만 마음을 고치는 것은 배나 더 어렵습니다.
미혹된 마음, 악한 마음, 순종하지 않는 마음을 고치고 참된 예수님의 안식에 참여하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백만번 스스로 결심하고 스스로 깨닫으려고 발버둥친들 참된 안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칠 수 있는 막대하고 거대한 능력은 오직 말씀,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을하고 위락을 찾지만 참된 안식은 결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도 말씀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이요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5) 참된 안식 : 아침저녁 말씀으로 세수 하자!
참된 안식은 형식주의가 아니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면 크나큰 오해입니다.
먼저 보았듯 참된 안식은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의 혼탁한 영혼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유일한 거울입니다.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사람은 굴뚝에 재가 없어서 얼굴이 깨끗하고 다른 한사람은 얼굴이 재로 덮혔습니다.
둘 중에 누가 세수를 했을까요?
얼굴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를 보여주고 우리 영의 때를 드러냅니다.
말씀을 읽을 수록 더욱 영적인 세수를 하게됨은 당연합니다.
말씀의 거울로 나를 돌아보는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나를 멈추는 것이지만 동시에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삶의 중심을 말씀에 놓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말씀으로 나를 살피는 거룩한 습관이 바로 참된 안식의 길입니다.
결론)
히브리서 지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흔들리는 믿음이 심화되는 로마제국의 핍박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진리의 말씀 가운데 확신있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어떠한 환난에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에서 힘을 얻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만이 참된 안식을 얻으며 어떠한 시험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를 굳게 붙드는 말씀 중심의 삶으로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에 더욱더 나아갑시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는 로마제국의 지독한 박해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던 성도들에게 믿음의 정절을 지키로독 권면하는 서신입니다.
계속되는 로마제국의 박해로 인해 당시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우려되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1)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여 환상과 신비를 추구하는 천사숭배사상
2) 진리를 바탕으로하는 믿음을 포기하고 형식적인 종교행위로 회귀
히브리서는 복음의 진리만이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나아갈 바임을 주장하며 신비주의나 형식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지말고 더욱 말씀 중심의 흔들림없는 신앙을 회복하도록 강변합니다.
1-2 장에서 예수님의 천사보다 위대하심을 증거하고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으로 연합됨을 통해 우리가 천사보다 더 위대한 자들임을 증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오 그의 복음의 탁월성을 주장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이유는 신비한 능력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죽음을 감당하는 고난임을 밝힘으로 성도의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3장에서는 모세보다 더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임으로써 과거 형식주의적 신앙으로 돌아가지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삶과 계속되는 고난이 지속적으로 길어짐으로인해 성도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믿은 진리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유대교가 강조하는 형식중심의 안식일의 전통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의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진리의 복음을 포기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런 사람들을 완고한 사람들이라고 칭합니다.
3:7-8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진리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바꾸기보다 자신의 익숙한 행위에 집착하며 진리를 거부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마음이 미혹된 자 : 하나님은 안보이고 나 밖에 안보여~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끊임없이 걷고 또 걷지만 길을 모르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잘못된 길로 가게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미혹되면 하나님의 길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장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취해 걷고 또 걷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안식에 이를 수 없다고 합니다.
걷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길을 아느냐입니다.
신앙생활의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입니다.
2) 악한 마음 :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마음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하나님의 길을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민수기 13-14장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집트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조금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불신앙의 댓가는 40일이면 갈 길을 40년이나 헤메게되는 쓰라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욱 완고해져갔습니다.
이를 본문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악해보이는 사람과 하나님을 안 믿어도 선해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선과 악은 결국엔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귀결됩니다.
3) 내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죄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본문은 또한 이러한 완고한 마음의 이유를 죄의 유혹에서 찾습니다.
죄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음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지않고 혼자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상심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죄의식없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입니다.
이러한 죄에 노예가 되면 그 마음에는 안식과 평화가 사라지고 항상 불안하고 근심에 휩싸이게 되며 그 상태가 지속될 수록 완고해지게 됩니다.
4) 귀로는 들어도 마음의 귀는 닫은 자들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자신의 믿음과 결부시켜야 하는데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이 불순종이라고 합니다.
4:8-9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금요일 오후부터 아무런 행위도 하지않는 형식적인 안식일 준수를 여호수아의 안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7절의 시편 95편을 통해 안식일은 특정한 날이 아니며 구약 이스라엘의 안식일의 전통은 참된 안식을 줄 수 없음을 밝힙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본문은 참된 안식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1) 안식의 장소 - 성전이 아닌 우리 자신
히브리서 3장은 유대교의 성전이 안식의 장소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가 그의 집, 진짜 성전임을 밝힙니다.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안식일은 특정 장소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확신하고 굳게 잡는 마음이 진정한 안식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2) 기존의 나를 멈추는 것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구약 여호수아의 형식적인 안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안식은 성도들이 마음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점점 확장되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안식은 자신을 내려놓음을 전제로 출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내가 공헌하거나 힘쓴 것이 전혀 없이 실현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참여하려면 기존의 나의 생각, 계획, 야망, 방식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3) 멈춤을 위한 노력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내가 가던 방향에서 하나님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멈추어야 하는데 이게 꽤나 힘이 듭니다.
짐이 많을수록 차가 무거울 수록 멈추는데 힘이 들 듯 그간 자신이 절대화 신성화했던 행위들이 많을 수록 그것들을 멈추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멈추려는 이 노력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4) 말씀에서 힘을 얻자!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 동안 본문을 통해 보았듯이 참된 안식의 문제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행위를 고치는 것도 어렵지만 마음을 고치는 것은 배나 더 어렵습니다.
미혹된 마음, 악한 마음, 순종하지 않는 마음을 고치고 참된 예수님의 안식에 참여하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백만번 스스로 결심하고 스스로 깨닫으려고 발버둥친들 참된 안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칠 수 있는 막대하고 거대한 능력은 오직 말씀,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을하고 위락을 찾지만 참된 안식은 결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도 말씀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이요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5) 참된 안식 : 아침저녁 말씀으로 세수 하자!
참된 안식은 형식주의가 아니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면 크나큰 오해입니다.
먼저 보았듯 참된 안식은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의 혼탁한 영혼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유일한 거울입니다.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사람은 굴뚝에 재가 없어서 얼굴이 깨끗하고 다른 한사람은 얼굴이 재로 덮혔습니다.
둘 중에 누가 세수를 했을까요?
얼굴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를 보여주고 우리 영의 때를 드러냅니다.
말씀을 읽을 수록 더욱 영적인 세수를 하게됨은 당연합니다.
말씀의 거울로 나를 돌아보는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나를 멈추는 것이지만 동시에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삶의 중심을 말씀에 놓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말씀으로 나를 살피는 거룩한 습관이 바로 참된 안식의 길입니다.
결론)
히브리서 지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흔들리는 믿음이 심화되는 로마제국의 핍박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진리의 말씀 가운데 확신있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어떠한 환난에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에서 힘을 얻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만이 참된 안식을 얻으며 어떠한 시험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를 굳게 붙드는 말씀 중심의 삶으로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에 더욱더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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