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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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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1,031회 작성일 24-06-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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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1-3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본문에 대해 들어가기 전 알아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아람제국은 지금의 시리아 지역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제국이었습니다.

문자와 언어가 발달하여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도 일상생활에서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아람제국은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혀왔던 웬수같은 이웃이었습니다.

이러니 아람제국의 군대의 수장 나아만의 위세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 그가 나병에 걸려 고통 받으며 여기 저기 백방으로 치료를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작은 나라 이스라엘 소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아람 왕이 나아만의 병을 고칠 선지자가 있다는 소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낱 작은 이웃나라의 노예 소녀의 발언에 아람의 군대 장관과 아람 왕이 즉각 반응하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공식 방문하기 위해 외교문서까지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일이 이렇게 커지기까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제일 걱정스러운 사람은 나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소녀인 것 같습니다.

왕의 재물과 공문까지 보내었는데 이스라엘 선지자가 고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소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막대한 산과 같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소녀가 나중에 빠져나갈 여지를 위해 "백 프로 고친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시도는 해봐라" 라고 말했다면 나아만과 아람 왕이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소녀가 나아만을 위해 이스라엘 선지자를 추천한 것은 목숨을 거는 각오와 고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소녀가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엘리사 선지자를 나아만에게 소개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이 때 당시 이스라엘 왕은 여호람이었습니다.

여호람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였기에 나아만을 보내니 그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아람왕의 외교문서가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2장에서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을 치러 갈 때 물이 떨어지자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려는구나"라고 죽는 소리를 했던 바로 그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오직 절망과 두려움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녀는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만큼 용감했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데 급급한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누군가 사람을 초대했으면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나와서 맞이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나을 것이라며 사자를 통해 전할 뿐 집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았습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고침받아야 할 병은 나병이 아니라 "내 생각에는" 이라는 중병입니다.

내 생각은 언제나 옳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리고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틀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틀린 말씀으로 언제나 옳은 내 생각을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은 언제나 옳은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출발부터 틀린 것입니다.

믿음 생활은 내 생각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내 생각에 대해 분석해야 합니다.

내 생각의 첫 번째 원인은 종교적 행위입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수 많은 아람제국의 림몬 신 제사장들이 나아만에게 와서 림몬 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병 부위 위에 손을 흔들어 봤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림몬 신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꿔서 해보면 혹시나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종교적 행위로 오염된 나아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경험했던 종교적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확립하였고 엘리사를 통해 이것이 부정되자 분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의해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들이 부정되었을 때 무릎꿇고 회개하는 대신 분노하고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나오고 헌금 내고 봉사 한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신에게 지성을 드리고 예물을 바쳐야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필요가 이유가 없습니다.

그 대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으로 연합하여 한 몸이 되면 됩니다.

그 뿐입니다.

너무나 쉽습니다.

그래서 믿기가 어렵습니다.

출애굽 광야에서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기만하면 나았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설마 보기만한다고 낫겠냐며 의심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종교적 행위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내 생각대로 만들고 예배하고 조종하려는 내 생각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 내 생각의 원인은 자존심입니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나아만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변방의 작은 소국일 뿐입니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이름모를 선지자에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사람을 보내 시키는 것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겁니다.

개천이나 다를 바 없는 요단강보다는 자기 나라의 큰 강들이 당연히 더 좋아보입니다.

우리는 나아만처럼 국가적, 민족적, 인종적 자존심들로 내 생각이 오염 되어 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왕을 통해 이스라엘 왕의 허락을 받아 공식적으로 엘리사 선지자에게 왔습니다.

말들과 병거들을 대거 동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엘리사에게는 초라한 나병환자일 뿐입니다.

아무리 멋진 갑옷과 외교의전으로 포장한들 나아만의 실체는 죽음을 앞둔 나병환자일 뿐입니다.

우리도 사회에서 얼만큼 성공을 했든 말든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죽을 죄인일 뿐입니다.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로 자신의 나병을 감추려고 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지위로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인 죽음을 가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포장하면 할 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 푸대접하십니다.

나아만을 푸대접한 엘리사의 행동이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병을 감추려고 말들과 병거와 외교의전으로 포장된 나아만의 자존심을 깨뜨리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병이라는 자신의 치명적인 아픔을 꿰뚫어보는 엘리사에게 나아만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분노에 굴복하면 영원히 자존심의 노예가 되어 죽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공과 지위, 돈 능력의 이름으로 포장된 자존심을 깨뜨리시고 감추고 싶은 나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그 댓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다면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하챦은 자존심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헛된 자존심과의 싸움에서 매일매일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종교적 행위와 자존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된데는 나아만의 종들의 역할도 컸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해야하는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사랑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종교적인 행위를 강조하고 세상적인 자존심을 살려주느라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잠시 덮어두는 행태가 교회들가운데 만연합니다.

나병과 같은 탐욕과 이기심을 회칠한 무덤처럼 덮어주고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다시 세상에서 6일 동안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탐욕스럽게 살지만 얼마든지 훌륭한 교회 훌륭한 성도로 포장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26-27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내 생각은 언제나 나 자신을 속입니다.

그래서 항상 내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치유와 구원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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